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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헌호 신부의 환경칼럼 (96) 원칙과 변칙 그리고 반칙 9

입력일 2005-06-26 수정일 2005-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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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과 분배의 문제

의식주를 해결하는 기초적인 경제생활에서부터 첨단산업, 각종 회사, 학교, 국가 등 조직들을 경영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기본 의식구조가 깊이 작용한다. 원칙과 변칙 그리고 반칙은 채집과 수렵생활을 하는 데에 깊이 적용되고 밭을 경작하고 짐승을 키우며 물고기를 잡는 일에 깊이 개입하는 것을 앞에서 살펴보았다. 이것은 또한 공장을 지어 물건을 생산하고 판매하며 다시 재투자하는 전 과정에도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오디오나 비디오 또는 텔레비전과 같은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는 원칙이 정확하게 적용되어야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상품이 된다. 그러나 흥정이 오가는 시장에서는 생산원가를 그대로 밝혀서는 회사를 키우는 데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어 변칙이 쉽게 개입된다. 생산원가를 높게 잡고 상품의 효능을 실제보다 부풀려 선전하여 좀 더 높은 이익을 남기며 대량으로 판매하기를 원한다. 회사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실제 사정보다 더 우량회사로 선전하고 주가를 조작하는 반칙을 감행하는 경우도 있다.

건설업계의 중진인 지인 한 사람은 계약을 하거나 대금을 독촉할 때에 서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 줄 뻔히 알면서도 상대의 수를 읽고 여러 단계의 수를 동원하여 계약을 성사시키기도 하고 미루기도 하며, 빚 독촉을 하기도 하고 빚 갚기를 미루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사석에서 웃음과 함께 진지하게 토로했다. 은행지점장을 하고 있는 친구 한 사람은 사업을 벌린 사람 중 80%는 망하고 20%는 성공하는데, 성공하는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그에게 『세상 돌아가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사업을 어떻게 시작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나 다름없으니 은퇴하면 어떤 사업을 하면 되겠다』고 했더니, 은퇴하여 사업을 하면 자신은 망하는 측에 속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적은 돈이라도 받을 수 있는 직장을 구하겠다고 응수했다. 마음이 순수하고 여린 그에게는 필요할 경우에 변칙과 반칙 그리고 억지를 구사해야 하는 것이 정신적으로 큰 부담이 되는 것인가 보다.

어느 한 사립대학교 총장을 지낸 은사 한 분은 재단이사장이 한 번 더 해달라는 것을 기어코 뿌리치고 재임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오래지 않아 그분의 인품을 잘 아는 어느 한 국립대학교 교수들이 선거를 통해 그분을 총장으로 모시고 가는 일이 발생했다. 이전 직장이던 그 사립대학교 재단이사장이 찾아와서 『다시는 총장을 하지 않겠다더니…』라는 불만의 여운을 남기는 말을 해 온 것에 대해 그분은 『사립대학교 총장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을 뿐입니다』는 말로 대답했다고 한다.

어떤 형태이든 생산을 하는 작업은 언제나 힘들고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는 것이기에, 생산한 것을 나누는 과정에 갈등이 없을 수 없고 쉽게 변칙이 개입되며 때로는 반칙까지 등장하여 신뢰를 무너뜨리고 고통을 증가시킨다. 그래서 인류는 모든 것을 모두 함께 소유하고 함께 일하여 똑같이 나누며 살자는 좋은 의도로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해 보기도 했지만 그리 오래 가지 못하고 해체되고 말았다. 생산의 고통을 감내하려는 사람들이 줄어들어 점차 생산량이 떨어지고 분배에 문제가 생겨 모두가 궁핍에 허덕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생산과 분배에 언제나 투명한 원칙이 통하기에는 인류가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고 수련의 덕을 많이 쌓아야 하는가 보다.

전헌호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