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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기 새교황의 사목적 과제들 / 1. 새로운, 그러나 해묵은 도전들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05-05-01 수정일 2005-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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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베네딕토 16세가 4월 24일 즉위식 미사 후, 성 베드로 광장을 돌며 환호하는 신자들에게 답례하고 있다.
현대의 ‘사막’에서 ‘주님의 빛’으로 인도

진보-보수 갈등 구도 넘어서

정통신앙 수호자로 이해돼야

제삼천년기 첫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즉위식을 마치고 11억 가톨릭 신자를 포함한 인류의 스승으로서 본격적인 교황직 수행을 시작했다. 오늘날 세계와 인류 속에서 교황직의 수행은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즉위 당시와 비교해 볼 때, 오히려 더 많은 도전과 과제에 직면해 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풀어나가야 할 오늘날의 사목적 과제들은, 26년 전보다도, 더 깊은 영성과 더 풍부한 지혜를 요구한다. 교황의 과제는 곧 보편교회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새 천년기 새로운 복음화의 여정을 시작하는 새 교황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자신의 교황직을 훌륭하게 수행해나가기 위해서 요구되는 사목적 과제들을 살펴봄으로써 가톨릭교회가 직면한 시대의 도전들을 함께 성찰해나가고자 한다.

길잃은 양떼 이끌터

『오늘날 인류는 더 이상 길을 알지 못하는, 사막에서 길을 잃은 양떼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우리를 이처럼 비참한 처지에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사목자들 역시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사막에서 그대로 살아가도록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4월 24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된 즉위식에서 미사 강론을 통해 이같이 말했다. 교황은 오늘날 현대 사회와 세계의 상황을 일러 「사막」이라 불렀다. 사람들이 가치의 부재와 소외, 그리고 불의를 경험할 때, 그것은 곧 현대 세계와 사회의 「사막」이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사막에서 사람들을 이끌어내 「그리스도의 빛」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바로 자신의 가장 중요한 소명이라고, 교황으로서 처음으로 행한 강론에서 강조했다.

교황이 「사막」으로 언급한 현대 사회와 세계의 상황 속에서, 가톨릭교회는 참 빛과 진리를 제시하고 직접 증거해야 하는 소명을 안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종종 만연한 세속주의에 대한 단호한 대응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대응의 과정을 통해, 콘클라베를 전후해 새 교황을 비판할 때 종종 사용되던 「보수주의자」라는 비판은 이제 「정통신앙의 수호자」로 설득력 있게 제시돼야 한다. 새 교황의 사목 과제들에 대해 논할 때, 자주 이러한 과제들은 진보-보수의 입장으로 보여진다. 교황청의 중앙집권적 권위 행사와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지역교회의 요구들, 생명과학의 발달로 새롭게 대두되는 윤리 문제 뿐만 아니라, 낙태와 안락사 등 기존의 생명윤리 문제에 대한 입장 차이들로 인한 논란은 교회 가르침의 경계선상을 위태롭게 오간다.

또한 구원에 있어서 그리스도교의 유일성에 대한 교황청의 명백한 입장은 교회 일치나 종교간 대화의 한계를 규정짓지만,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그리스도교가 소수인 지역은 대화와 증거를 통한 선교를 더욱 강조하며, 교회 일치와 종교간 대화에 좀더 개방적인 입장과 자세를 요구한다.

특별히 사제 독신제 규정의 완화나 여성 사제의 가능성을 둘러싼 요구, 그리고 아프리카 지역의 현실적인 필요성에 바탕을 둔 피임 문제는 진보-보수의 대표적인 갈등 구도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교황청은 이러한 문제들을 진보-보수로 도식화하는 것 자체를 어불성설인 것으로 파악한다. 이러한 문제들이 진보대 보수의 갈등으로 파악됨으로써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교리, 윤리적인 면에서 보수주의자로 간주됐고, 새 교황은 전임 교황을 넘어서는 극단적인 보수주의자로 보여진다. 새 교황에 대해 환영과 함께 우려의 반응이 보도됐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이다.

따라서 이제 산적한 사목적 과제들을 풀어나감에 있어서, 새 교황의 교황직 수행이 보수주의의 행보로 여전히 여겨져서는 안될 것으로 보인다. 변화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철저하되, 그것이 왜 변화될 수 없는 것인지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설득력을 얻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과감한 변화를 시도함으로써, 보수주의가 아니라 정통신앙의 수호자로서 이해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산적한 사목 과제들

본지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종에 즈음해 신학자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긴급 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목 과제로 꼽힌 것은 『서구 문화와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가치의 충돌』과 『대화와 증거를 통한 선교』의 2가지로 각각 20%의 응답자가 지적했다.

새 교황의 선출에 대한 보도에서, 일부 언론은 베네딕토 16세 교황 선출의 가장 큰 요인으로서, 유럽의 세속주의에 대한 대응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유럽과 북아메리카 등 이른바 서구 선진 사회에서 가톨릭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이 힘을 상실했다는 현실 판단이고, 그에 대한 대응으로서 가톨릭교회는 보다 강력하고 단호한 입장을 취해야 하기 때문에 엄격한 보수주의자 교황을 선택했다는 것이 이들 보도의 요지이다.

해결 방법은 차후의 문제로 열어두더라도 그같은 현실 인식은 매우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즉, 그리스도교 신앙과 윤리는 서구 사회에서 더 이상 수용되지 않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여러 조사를 통해서 드러났듯이, 낙태와 피임 등 생명윤리 문제에 대한 신자들의 인식은 일반인들에 비해서 오히려 더욱 심각한 지경이다. 생명과학의 발달로 인해 새롭게 나타나는 인간 배아 복제 등의 문제는 더욱 어려운 문제이다. 해결의 실마리는 타협이 아니라, 강화에서 찾을 것으로 보인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윤리적인 면 외에 교리적인 면에서 새 교황의 입장은 더욱 엄격하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재임한 24년 동안 제삼세계 신학자들로부터 신랄한 비난을 받을 정도로 교리 수호에 있어서 엄격한 자세를 보였다. 하지만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신학자들은 좀더 넓은 포용력을 요구하며, 이는 대단히 현실적인 요구에서 비롯된다. 여기에서 「대화와 증거를 통한 선교」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특별히 아시아 대륙은 그리스도교가 여전히 극소수 집단으로서, 타종교와 문화전통과의 열린 대화가 절실하게 요구된다. 그러한 상황에서, 그리스도교의 유일성을 강조하는 「주님이신 예수님」 등의 문헌들은 자칫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 구현

엇나간 신학과 신학자들을 정통 신앙으로 이끌기 위한 노력과 함께 복음화에 있어서 대화와 증거가 요구되는 지역교회의 상황에 대한 고려 역시 소홀히 취급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 과제는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다. 지역교회의 요구와 관련해서, 보편교회의 통치에 있어서 주교단의 단체성(collegiality) 문제는 또 다른 어려운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곧 보편교회와 지역교회의 관계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지역교회에서 종종 요구하는 과도한 중앙집권적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로 나타난다. 특히 일부 지역교회 주교들은, 세계주교대의원회의 등의 기회를 통해서 지역교회에 좀더 많은 자율성을 부여해달라는 요구를 교황청에 하고 있다.

직무 사제직을 둘러싼 몇 가지 사안들은, 그 특성상, 집중적인 언론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즉, 사제 독신제와 여성 사제직의 가능성이 그것이다. 이 두 가지 문제는 다른 과제들에 비해 그 중요도가 필요 이상으로 과장되고 있다. 교황청의 설명에 의하면, 이 문제들은 결코 교회가 인위적으로 좌지우지할 수 없는, 변화될 수 없는 사안들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아직도 미완성이다. 전임 교황이 수없이 지적하고 끊임없이 추구해왔듯이 공의회 정신의 구현은 새 교황에 있어서도 가장 큰 과제 중의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 중 하나로서 평신도의 소명과 과제는 새 교황의 통치 아래에서도 가톨릭교회의 사목적 과제이다.

교회 안팎의 세계화(Globalization)에 대한 대처도 중요한 과제이다. 특히 경제적 세계화, 그로 인해 나타나는 부작용으로서의 빈부 격차의 심화는 교황청이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온 문제로서, 새 교황 역시 국제 무대에서 이와 관련한 움직임이 강화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새 천년기 첫 교황으로서, 격변의 20세기말을 지나온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못지 않은 많은 사목적 과제를 안고 있다. 교황의 사목적 과제는 지역교회를 넘어서는 보편교회의 과제이며,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인류 전체에 대한 소명이다. 세속주의가 만연한 세계에서 상대주의의 도전에 직면해서,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성령에 의존해서 세상과 인류를 그리스도의 빛으로 이끌어갈 것이다.

◎글 싣는 순서

2. 주교단 정체성(collegiality)과 교회 통치

3. 세속 문화와 전통적 교회 가르침 충돌

4. 대화와 증거 통한 선교의 중요성

5. 사제직의 문제들

6. 생명윤리 수호

7. 평신도 소명과 책임

8.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 실현

9. 세계화(Globalization) 도전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