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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기 새교황의 사목적 과제들 / 2. 주교단 단체성(collegiality)과 교회 통치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05-05-08 수정일 2005-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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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교회의 폭넓은 자율성 필요

교계적 친교·일치 안에서

보다 깊은 논의 이뤄져야

가톨릭신문사가 최근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한국의 가톨릭 신학자들 중에서 「주교단의 단체성(collegiality)과 교회 통치」 문제를 새 교황의 가장 중요한 사목적 과제로 꼽은 응답자가 10명 중 1명이었다.

이는 「서구 문화와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가치의 충돌」(20%), 「대화와 증거를 통한 선교」(20%) 외에 보기로 제시된 6개의 문항들 중에서 가장 낮은 수치로 나타났지만, 실상 보편교회 안에서는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로 꼽히는 것이기도 하다.

「주교단의 단체성」이라는 개념은 주교 직무의 본성과 성격이 종합적으로 드러나고, 교계적 친교에 의해 하나의 단체를 이룬 주교단의 신학적이고 법적인 성격을 이르는 말이다. 바로 여기에서 가톨릭 교회의 본질인 하느님 백성의 다양성과 보편성, 단일성이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교회론과 교회 규범에서 자주 등장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즉 하느님 백성이 여러 민족과 국가로 이뤄졌고, 다양한 성령의 은사를 받는다는 점에서 「고유성과 다양성」이, 그 백성의 중요하고 포기할 수 없는 임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제시한 복음 선포라는 점에서 「보편성」이, 그리고 그 백성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하나의 지체라는 점에서 「단일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본성은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단 안에서 명확하게 드러나며, 또 주교단을 통해서 가시적인 일치의 표징으로 세말까지 계속된다. 이러한 단체성은 「단장을 머리로 하는 주교단」, 「교계적 친교 안에서 일치된 주교단」 그리고 그 속에서 행사되는 주교단의 「합의체적 행위, 혹은 권한」 등에서 보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때문에 주교단의 단체성이라는 이 개념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로서, 보편교회와 지역교회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현재 이와 관련해서 좀 더 구체적이고 노골적으로 말하면, 로마?바티칸?교황청 중심의 중앙집권적인 통치가 지나치지는 않은가, 따라서 통치의 최종적인 권한은 교황에게 있지만 그 구체적인 행사의 과정에서 지역교회에 대한 좀 더 열린 자세가 필요하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있어서는 가장 어려운 문제이기도 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동료 주교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경향이 있었다. 세계주교대의원회의 등의 기회를 통해서 자주 주교들의 의견을 청취했고, 주요한 문제들에 있어서 동료 주교들과 함께 의견을 나눴다.

하지만 실상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등 제3세계 주교들의 경우, 각 지역교회의 보다 폭넓은 자율성을 끊임없이 요구해왔다. 교황청에 주교 임명과 교황청 문헌 작성, 전례문 번역 등에 있어서 좀 더 많은 자율성을 지역교회에 부여해달라고 요청했다.

많은 추기경들을 포함한 신학자들은 이러한 단체성의 실현에 교회가 좀 더 폭넓은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지적해온 것도 사실이다.

지난 2002년 이탈리아 밀라노 대교구장직을 은퇴한 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 추기경은 1999년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유럽 특별총회에서 공의회에 준하는 새로운 교회 회의를 제안하면서, 『주교단의 단체성을 좀더 폭넓게 구현함으로써 교회는 더 많은 혜택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마르티니 추기경은 교회 구성원의 일부에 의해 주도되는 주교대의원회의 형태에 실망하고, 주요한 교회 문제들을 다루기 위해 보편교회 전체 차원의 교회 회의를 제안한 것이다. 이러한 제안은 비록 공식적으로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사적으로 논의됐고, 찬반이 엇갈렸다.

미국 네쉬빌에 있는 밴더빌트 대학교 페르난도 세고비아 교수는 각 교구와 지역 주교회의에, 자신들의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좀더 폭넓은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단체성에 대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가르침이 더욱 강조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날 교회가 비서구 지역으로 놀라울 만큼 확장됐기에, 신앙에 대한 이해는 좀더 다른 방식으로 다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여기에는 특히 전례, 여성의 역할, 타종교에 대한 교회의 관계 등이 포함된다고 말했다.

포르투갈의 호세 사라비아 마르틴 추기경에 따르면 이번 콘클라베가 열리기 앞서 추기경단 회의에서도 단체성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의견 교환이 추기경들 사이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지역 주교들이 어떻게 교황, 교황청과 책임을 나눠 갖는지, 그리고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 함께 어떻게 참여할 것인지의 문제를 논의했다.

미국 필라델피아 대교구장 저스틴 리갈리 추기경은 새 교황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과 가르침을 실현하는데 각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을 기대하면서, 특히 교회 통치에 있어서 주교단의 단체성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의 가톨릭계 주간지인 「아메리카」는 새 교황이 선출되기 전인 4월 13일자 신문에서 사제 부족, 국제 분쟁과 테러, 경제적 불평등과 세계화 문제 등을 새 교황이 대처해야 할 주요한 사목적 과제로 제시하면서, 지역교회의 주교들을 단순히 교황청의 각종 선언을 받아 되뇌이는 존재 이상으로 간주할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이는 보다 충실한 단체성의 실현으로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 잡지는 전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재임 기간 동안, 너무나 많은 문제들에 있어서 토론의 장을 박탈당했다고 지적했다. 즉 산아 제한, 이혼, 여성 사제, 사제 독신제, 동성애, 주교단 임명, 교황청의 중앙집권적 권위 구조, 전례의 토착화, 교리교육, 평신도의 역할 등에 대해서 좀 더 많은 논의의 장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의 권위 행사가 일반 언론이 단순하게 말하듯, 「중앙집권」 「권력의 분산」 등의 용어와 개념으로 규정될 수는 없다. 따라서 이 문제에 있어서도 교황청은 중앙집권적인 권력 행사에서 벗어나, 권력을 각 지역교회로 분산시킴으로써 민주적인 면모를 갖춰야 한다라든가의 주장으로 단순화하는 것만으로 해결될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제3세계의 지역교회들을 중심으로 지나치게 중앙집권화된 교회 통치 구조에 대한 비판이 꾸준하게 제기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며, 앞으로 이러한 지적들은 더욱 심화되고 빈번해질 것은 분명하다. 특히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 교회의 교세와 성장 가능성이 서구 교회를 훨씬 압도해가고 있는 가운데, 그리고 애당초 그것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가르치고 있는 중요한 내용 중의 하나라는 점에서 교회 통치에 있어서 주교단의 단체성 문제는 더 깊은 논의가 이뤄질 것이 분명하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