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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가톨릭교회의 보고(寶庫)-부활신앙(2)

입력일 2005-04-10 수정일 2005-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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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신앙만은 흔들리지 말자

소설 ‘다빈치코드’의 왜곡 거짓

곳곳에서 드러나 현혹돼선 안돼

교황청의 딜레마

소설 「다 빈치 코드」의 악의적인 왜곡과 거짓에 대하여 애써 맞대응을 자제해 왔던 교황청이 드디어 「공식 대응」에 나섰다는 보도가 최근에 있었다. 거룩한 권위를 지닌 교황청이 저속한 상업주의에 맞붙어 괜히 「진흙탕 싸움」에 말려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마음 한 구석에 생기면서도, 한편 옳은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모르긴 모르되 품위유지와 진실규명, 열린 대화와 호교적 공세 사이에서 「이래야 하는가 저래야 하는가」를 저울질해야 하는 것이 교황청의 딜레마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출간 2년만에 44개국어로 번역돼 2000만부가 팔려나간 「다 빈치 코드」의 파급효과는 이제 고민할 경지를 넘어서고 말았던 것이다.

여기서 결코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는 안 될 문제는 헐리우드에서 톰 행크스 주연으로 영화를 제작 중에 있고 2006년 5월을 기해 전세계적으로 개봉할 계획으로 있다는 사실이다. 그 타격은 엄청날 것이다. 아무리 새빨간 거짓이라고 하더라도 속아 넘어가는 어리숙한 사람들이 있으니, 철저히 예방교육을 해 둘 일이다. 이미 곳곳에서 젊은층 희생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그 부모들에게서 『어떻게 답해야 옳으냐』고 물어오는 질문을 숱하게 듣고 있는 형편이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은 예방교육(豫防敎育)만 못하다. 그래서 필자는 월간 「참 소중한 당신」이 이미 2005년 1월호부터 「다 빈치 코드」의 허구를 지적하는 전문가들의 글을 계속 연재하도록 발의하였다. 필자는 확신한다. 그 때가 되면 많은 이들이 동의하게 될 것이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예수는 부활하지 않았다?

「다 빈치 코드」는 이미 1990년대에 큰 파문을 일으켰던 책 「성혈과 성배」(마이클 베이전트.리처드 레이.헨리 링컨 공저)가 주장하는 예수 결혼설을 표절한 것으로 기소상태에 있다. 그런데 예수결혼설은 예수의 부활을 부인하는 주장과 맞물려 있다. 그 논지를 요약하면 이렇다.

『예수는 자신의 처남인 아리마태아의 요셉을 통해 많은 뇌물을 받은 로마의 유다 총독 빌라도와 짜고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연극을 한 다음 로마 병사들의 호위 속에 프랑스로 망명을 하였다. 막달라 마리아와 자녀들을 데리고 프랑스 골(gaul)지방에 정착한 예수는 은둔 생활을 하며 84세까지 살다 죽었다』

곧 예수의 부활사건은 처음부터 예수와 유다까지 포함된 그의 제자들이 조작한 시나리오라는 것이다. 그 근거로 원래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이 죽기까지 최소 일주일은 걸리는데 예수는 6시간 만에 죽었다는 점을 든다. 이 모든 과정이 예수의 신화를 연출하기 위한 연극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비밀이 성전기사단과 그 모체인 시온수도회에 의해 간직되어 왔다고 소설은 적고 있다.

사실, 누가 악의로 「거짓」을 유포하고 다닐 때 그것이 「거짓」이라고 일일이 반박하고 다니는 것은 대단히 피곤한 일이며 심지어는 같이 유치해지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소한 밝힐 것은 밝혀두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러므로 이런 주장들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그리스도교의 진실을 알리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하나하나 짚어보자.

우선, 모든 과정이 가리옷 사람 유다와 공모한 연극이라는 주장은 그 이후 유다의 「자살」 사건 하나로 거짓임이 드러난다. 만일 이 주장대로 연극이었다면, 그리고 예수가 죽지 않고 망명했다면, 유다가 그렇게 비참하게 죽을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마태27, 5; 사도1, 18).

또한 의학적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십자가에 못 박힌 지 6시간 만에 죽은 이유도 극심한 고문과 태형(笞刑) 때문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이것은 멜 깁슨의 영화 「패션 오브 더 크라이스트」에서도 잘 나와 있다.

예수는 부활했다!

『선으로써 악을 이겨내라』(로마12, 21)는 말씀이 있듯이, 부활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극복하는 최선의 길은 부활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다. 우리는 부활 사건의 확실한 역사적 정황 증거를 다음과 같이 제시할 수 있다. (졸저 「이것이 가톨릭이다」참조)

첫째, 제자들 대부분이 부활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하여는 지난 번에 언급한 바 있다. 누구고 자신의 목숨과 관계된 일 앞에서는 「진실」을 드러내게 되어 있다. 만일 이들이 예수의 부활신앙을 거짓으로 공모했다고 하더라도, 자신들의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이 되면 이실직고하게 되어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제자들은 대부분 부활신앙을 증거하다 용감하게 목숨을 바쳤다. 피할 수 있었지만 자진해서 바쳤다. 이것 하나로 「부활」은 사실이라는 것이 입증되고도 남는다.

둘째, 박해자가 부활 체험을 통해 회심했다는 사실이다. 사울의 경우가 그렇다. 상식이나 자신의 학문적 종교적 배경에서 죽은 자가 다시 살아 난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울은 예수의 부활을 주장하는 자를 색출하여 처단하러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다. 그 일로 인해 그는 그리스도교의 가장 열정적인 증거자로 돌변하였다(갈라 1, 13~16).

셋째, 유다인의 핵심적인 신앙적.사회적 규범이 부활신앙으로 인해 완전히 새롭게 바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예수가 죽은 지 5주 후에 만 명이 넘는 유다인들이 예수의 부활에 대한 신앙 때문에 그토록 목숨처럼 여기던 신앙적?사회적 규범을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바꾸는 일이 발생했다. 그리고 이일 때문에 순교까지 감수해야 했다. 그 변화의 주요 내용은 다음의 다섯 가지이다. 곧 「희생제」를 「성찬례」로 대체했고, 「율법」에서 「복음」으로, 토요일 「안식일」에서 일요일 「주일」로, 「유일신」 신앙에서 「삼위일체」 신앙에로, 「승리」의 메시아관에서 「십자가」 메시아관에로 획기적인 변화를 죽음도 불사하고 이뤄냈다. 당시 동시대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 단지 허위로 조작된 주장에 저렇게 목숨을 걸었을 확률은 제로(0)였다고 보아야 옳다.

넷째,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사건이 지금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도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 부자와 가난한 자, 사색적인 사람과 감정적인 사람, 남자와 여자 등등 세계 각국의 다양한 문화 속에 살고 있는 다양한 배경과 다양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있다. 그들은 그 만남을 통하여 절망에서 희망을, 죽음에서 생명을, 불행에서 행복을 보게 되었다. 말 그대로 죽었던 삶이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었다. 그들 모두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삶을 변화시킨 사건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이렇듯 예수의 부활은 자명하다.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다. 다른 것은 흔들려도 절대 부활신앙만은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예수는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또 하느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로마 10,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