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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빛을] 200주년 사목회의를 재조명한다 (32)사목회의의 토착화 모색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05-01-30 수정일 2005-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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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심성 맞는 전례 개발해야”

‘아시아인의 신학’ 정립 필요

동양적 기도법 시도해 볼 때

문화 사목 활동 적극적으로

200주년 사목회의 의안에서 드러나는 가장 큰 특징은 의안 전체에 걸쳐 한국 천주교회의의 토착화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토착화를 향한 사목회의의 관심과 열의는 그 개최 의도와 목표에서부터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강조되어온 바와 같이, 사목회의는 그 의도 자체에서부터 이 땅에서, 이 민족의 문화와 삶 속에 도래하고 피어나야 할 하느님의 나라와 교회상을 모색한 것이기에 한국 교회 토착화를 향한 모색의 정수들을 담고 있다. 각 의안별로 토착화에 대한 지향에 바탕을 두고 모색하고 있는 방안들을 살펴보자.

성직자의안

우선 성직자 의안에서는 성직자의 신원과 관련해, 성직자들이 『우리 전승 문화와 현대 지식을 함양하고 홍보매체를 통해서 시대적 징표를 알아내는 지혜를 길러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성직자들은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해야 하며,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도록 노력할 것을 당부한다. 신학생들의 교육에 있어서는, 동양의 문화와 사상을 이해하고 현대 사회의 이해를 돕도록 교육돼야 한다고 말한다.

전례와 관련해서, 생명력 있게 전례를 집행하기 위해서는 우리 고유 문화와 풍습을 깊이 연구, 적용할 것을 지적하고 특별히 미사에 있어서 한국인의 심성에 적합한 전례 예절을 연구 적용하되, 특별히 시범 본당을 두어 산 모범과 규범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사목직 수행에 있어서는 작은 공동체의 활성화를 강조하며, 협동적인 사목활동을 중시하고, 비가톨릭인과 비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도 열린 자세를 가질 것을 권고했다. 나아가 민족의 과제로서 분단 상황을 극복할 자세를 강조하고 보다 민주적인 교회 운영을 제안한다.

수도자의안

수도자 의안은 순교의 역사를 지닌 한국 교회 안에서 수도자의 뿌리의식을 강조하면서, 그러한 든든한 뿌리의식을 바탕으로 자기 수도회의 은사를 재발견하고 창립자의 정신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함을 지적한다.

여기에 창립자의 정신을 현시대와 교회의 필요에 민감하게 응답하려는 노력이 더해질 때 그것이야말로 토착화의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수도자 의안은 이러한 바탕 위에서 양성의 방향을 제시하는데, 각 수도회의 고유 은사에 충실하면서 오늘의 한국 교회와 사회에 알맞은 수도자를 양성할 것을 권고하면서 선교사의 양성을 강조했다.

평신도의안

평신도 의안은 한국교회의 토착화를 위한 사목적 방안을 별도의 장으로 마련해 집중적인 토착화 노력을 제안한다. 의안은 첫째,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해 신앙 교육과 함께, 토착화의 바탕이 될 동양의 전통 종교를 배우고 이를 그리스도교적 안목에서 평가하도록 할 것을 제안한다.

둘째, 전례의 토착화로서 전례에 사용되는 음악과 미술을 한국 고유 전통 안에서 새롭게 표현하도록 권장한다.

셋째, 신학의 토착화로서 서구 신학에 일방적으로 의존하지 말고 전통 종교 학자들과 신학자들의 협력을 위해 체계적인 비교 연구와 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재래의 서구신학 외에 아시아인의 신학이 개발돼야 한다.

넷째, 영성의 토착화로서 기도하는 법, 명상과 묵상을 통해 신앙을 체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동양적 기도법의 도입을 시도할 필요성이 지적된다.

평신도 의안은 사회와의 관계에 주목하는데, 권위주의가 사라지고 민주화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회변동의 양상을 고려해 평신도의 더욱 폭넓은 자율과 참여를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례의안

전례의안에서 지적하는 토착화의 노력은 전례의 근본적이고 불변적 요소들을 유지하면서도 한국의 전통 문화 풍습과 현실 상황을 고려하고 부단히 발전시켜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미사 뿐만 아니라 각 성사 예식들을 나름대로 발전시키고 한국의 고유 축제 예식으로 이끌 수 있도록 토착화시켜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신자들을 전례에 이르도록 교량 역할을 하는 준성사와 평신도 예식서들에 대해서 한국적 전통과 풍습을 충분히 활용 발전시키도록 토착화를 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음악과 교회건축 및 성미술에 있어서도 토착화는 긴요하다.

신심운동의안

신심운동의안은, 모든 신심운동과 교회 운동이 각 시대의 문화적 조건 아래 표현되는 신앙의 내용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운동들이 신앙의 내용과 일치하는지를 계속해서 검토하고 또한 적극적으로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별히 현재 우리 한국 천주교회 안에서 이뤄지고 있는 대부분의 신심운동과 교회 운동들이 서구 사회와 교회의 심성과 사회 조건을 바탕으로 발생돼 전래된 것임을 성찰하고 이를 토착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함을 강조한다.

지역사목의안

지역사목의안은 제2장에서 「한국 문화와 사목: 토착화」라는 제목으로 토착화를 논한다. 여기에서 특별히 주목되는 부분은 바로 「문화」이다. 문화적 사목 활동을 꾀하는 것이 바로 한국 천주교회의 토착화를 이루는 길이라는 것이다.

문화적 접근에 있어서 최근 한국교회 안에서 많은 논의가 이뤄지고 있음을 볼 때, 사목회의 의안의 이러한 접근 필요성의 지적은 실로 선각자적인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의안은 여기에서도 신중한 자세를 잃지 않고, 교회가 자신의 보편적 사명 수행을 위해서 여러 문화에 토착화돼야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고유성을 잃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교회의 토착화는 교회의 고유 진리를 유지하면서 고유한 전통 문화에 탄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가 전통 문화와 만날 때 배제해야 할 두 가지 극단적인 태도가 있다. 하나는 교회와 문화를 별개로 보고 전통 문화를 죄악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가 전통 문화를 아무 갈등 없이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는 태도이다.

교리교육

교리교육은 토착화와 관련해 교리교육의 당면과제를 두 가지로 지적한다.

첫째, 교리교육의 쇄신을 이루려는 결의와 노력이 부족한데, 특히 한국인의 종교 심성을 바탕으로 한 교리교육 방법론이 개발되지 못한채, 신학적 명제의 요약과 같은 주입식 교육에 치중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전통 교리를 현대의 토착화된 언어로 들려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교리교육에 있어서 한국의 전통 종교의 영향들이 고려돼야 한다는 점이 강조된다. 기복적 신앙, 현세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경향이 존재함을 유념해야 하며, 가족주의적 성향에 대해서도 그 요인을 분석해야 한다. 아울러 물질주의, 과학지상주의, 세속주의적인 현대 사조들의 무종교성을 극복하고 타종교들과 대화와 협력을 모색해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꽃피워야 하는 것이 한국교회의 과제이다.

선교의안

선교의안은 다른 여러 의안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말씀이 오늘 이곳에 강생하도록 준비해야 한다는 점에서 문화, 사회, 학문과 타종교 및 비가톨릭 그리스도인들과의 대화를 꾸준하게 시도해야 함을 지적한다. 이를 통해 복음이 뿌려질 땅의 토양과 토질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뚜렷한 선교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급속한 변화의 시대에 한국교회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구원을 말씀과 행동으로 증거해야 한다고 지적된다. 즉 현대사회의 공통적인 문제와 함께 한국 사회가 가진 고유한 문제점들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해답을 모색하며 진리를 증거하는 노력을 통해서 선교가 이뤄져야 한다.

사회정의 의안

사회정의 의안에서는 모든 인간의 평등성, 부의 공정한 분배, 공동선의 실현이 주목되며, 특별히 사회정의의 척도인 노동문제에 대해서도 길게 언급하면서 교회의 적절한 대응을 권고한다.

토착화 전망

자발적 신앙 수용의 전통을 지닌 한국교회는 초창기부터 놀라울 만큼 토착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는 한국 민족과 사회 안에서 그리스도교가 뿌리를 내리고 참된 한국인의 종교가 될 수 있는 훌륭한 전통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이후 한국교회의 이러한 독창적인 면모는 퇴색했고 이후 한국교회는 공의회 개최 이후에야 본격적인 토착화의 노력이 재개된다. 특별히 사목회의 이후 일각에서나마 꾸준하게 이어져온 토착화 노력은 적지 않은 연구 성과를 축적했다.

전례, 영성, 교회 구조, 복음선교, 신학, 교리교육 등 영역별로 이뤄져온 토착화 노력은 그러나 여전히 적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목회의의 토착화 모색과 전망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의의가 있으며, 더욱이 2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에까지도 유효한 현실적 제안들을 담고 있음은 놀라운 일이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발전과 쇠퇴의 기로에 서 있다. 엄청난 성장 후에 이제 한국 천주교회는 그러한 양적 성장에 걸맞는 내적 성장을 기해야 할 과업을 안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제의 돌파구는 성공적인 토착화에 있다는 것이 사목회의가 지금 우리에게 주는, 미래 교회를 향한 실마리라고 할 수 있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