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이 땅에 빛을] 200주년 사목회의를 재조명한다 (22) 청소년사목 의안 (상)

서상덕 기자
입력일 2004-10-31 수정일 2004-10-31 발행일 2004-10-31 제 2421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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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고민중…상황은 악화
선교·사목의 대상으로 볼 뿐
교회 주체라는 인식은 미흡
주입식 교육의 한계 시인
사회교리·교회쇄신 강조
『교회는 흔히 청소년들에 대한 교리교육으로 청소년들에 대한 교회의 관심을 대치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교리교육 그 자체도 그리스도교적 생활풍토를 조성토록 하는 것이어야지, 단순히 형식적 관념적인 것으로 끝나서는 안될 것이다.…교회가 명실상부하게 믿는 이들의 공동체, 형제적 사랑의 공동체가 되지 못할 때라면 맑은 시선을 가진 청소년들의 마음으로부터 떠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청소년(학생)사목 의안 제8항).

꼭 20년 전 사목회의 당시 청소년사목 의안에 담겨진 이러한 고민은 오늘날 청소년사목에 대한 평가와 대치해도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볼 수 있다.

다만 그 때와 현재를 비교할 때 달라진 점이라면 청소년들이 「마음으로부터 떠나고」 있는 상황이 실제 교회에서 청소년이 「비고 있는」 현실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청소년사목 의안 제8항에서 이런 현실에 대해 「교회 자체의 복음화」라는 표현을 통해 교회가 먼저 가르침에 걸맞은 모범을 젊은이들에게 보여야 한다고 내세운 사목 방안마저도 오늘날 교회가 내놓을 수 있는 대안과 등치시킬 수 있음을 보게 된다. 이는 달리 말해 20년 전과 현재의 청소년사목에 대한 인식은 물론 대안마저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반증이 될 수 있다. 또한 청소년을 둘러싼 사목 여건이 20년 전보다 크게 나아지지 못하고 오히려 사목 대상의 감소 등으로 곳곳에서 악화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은 뒷걸음치고 있는 청소년사목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런 면에서 청소년사목 의안은 청소년을 둘러싼 사회 현실과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 없이는 하느님나라를 향한 교회의 여정이 굴곡을 겪을 수밖에 없으며, 청소년 없이는 교회의 미래도 보장받을 수 없다는 현대 교회를 향한 메시지를 새롭게 확인시켜 주고 있다.

- 주요 구성과 내용

「청년·학생 사도직」에 대한 정의를 비롯해 6개의 주제를 중심으로 총 30개 항목으로 구성된 「청소년(학생)사목 의안」은 청소년, 나아가 대학생을 사목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사목회의가 특수사목을 ▲특수사목Ⅰ: 청소년 노동 농촌 이향 ▲특수사목Ⅱ: 관광 해양 교도 병원 군종 이주자 등 크게 두 부분으로 대분류하고 그 아래 10개 분야 가운데 처음에 청소년사목을 놓은 것은 교회의 특수사목 영역은 물론 일반사목 영역에서도 청소년사목이 중요한 분야로 인식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해주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청소년에 대한 기대는 의안 곳곳에서 나타난다.

『청소년들은 부모들과 스승들의 최선의 모범과 가르침을 종합하여 내일의 인류사회를 건설할 준비를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다』(의안 제3항), 『한국의 청년·학생은 다른 나라에 비하여 보다 특별한 정치적·사회적 위치를 지니고 있다. 이들이 갖는 정의감과 열정은 어두움에 눌린 우리 민족에게 거의 유일한 등불인 적도 있었다』(의안 제4항)는 등의 표현이 그것이다.

「청소년사목 의안」은 이같은 취지를 반영해 교회 내 다른 지체들과 함께 독자적이며 아울러 독특한 영역을 지닐 수밖에 없는 청소년에 대한 선교 대책 수립에 방향성을 두고 작성되었음을 볼 수 있다. 바로 이 점에 청소년사목 의안의 긍정성과 한계가 함께 녹아 있다. 이 의안이 지니는 긍정성은 청소년 등 젊은 세대를 교회 내 하나의 뚜렷한 사목 영역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며, 한계는 여전히 청소년을 교회의 주체로 뚜렷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선교의 대상 내지 사목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한 의안의 한계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우선 모두 5개항으로 구성된 제1장 「청년.학생 사도직」에서는 평신도들의 사명이 청년과 학생들에게도 똑같이 부여된다고 밝히고, 청소년들이 바로 자신들과 같은 세대의 「또래들에게」 가장 적합한 복음 전파자들임이 강조된다.

여기서 의안은 청소년들 스스로가 『청소년들을 위한 제일선의 사도로서,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사회 환경을 고려해서, 자기들 사이에서 자기들을 통해서 사도직을 수행해야 할 것』(제2항)을 역설하고 있는데, 이같은 바람직한 문제의식에도 불구하고 이를 위한 교회 차원의 노력과 투자에 대한 고민은 담아내지 못하는 한계를 발견하게 된다.

특히 3항에서 『오늘 사목회의가 밝게 켜놓으려는 불빛은 바로 청소년을 위한 것』이라며 미래 교회의 주체가 청소년이라는 인식을 비치고 있지만 청소년이 바로 교회의 현재이자 일주체라는 의식으로까지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로 인해 『교회는 청년·학생들의 정의롭고 헌신적인 활동을 적극 권장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며 『복음의 빛으로 그리스도적 사랑이 충만한 올바른 길을 밝혀주기 위해 노력할 것』(4항)이라는 약속은 두고두고 아쉬움을 더하게 하는 부분이다.

제2장 「교회와 청소년」은 청소년들에게 하느님 뜻에 맞는 가치관을 고취시켜 주려면, 무엇보다도 그들이 자라난 문화적 배경과 연계시켜야 한다는 교회의 임무와 토착화를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의안은 『교회는 자신이 복음 선포자이지만 흔히 교회 자체가 복음화되지 못하고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다』(8항)는 문제의식과 함께 당시의 교회가 청소년들에게 기울이는 노력이 이론적으로 행해지는 주입식 「교리 교육」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시인한다. 나아가 『사회교리에서 이미 명백하게 밝혀진 사회원리는 다만 선언될 것만이 아니라 현실에 맞게 구체화되어야 할 것』(9항)이라며 온전한 청소년 교육을 위해서는 사회교리가 청소년교육에 포함되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제3장 「청년.학생과 사회 현실」은 청소년들이 처한 그릇된 사회 상황과 아울러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교회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의안은 『교회는 청소년들이 세계에, 인류의 미래에 있어서 자신들의 역할을 확신할 수 없도록 하고 있는 잘못된 현실의 개선을 위해 노력하면서, 또한 청소년들을 위한 영적 안식처요 사도직 활동의 요람이 되도록 교회를 개방해야 한다』(10항)고 천명함과 아울러 『그리스도의 사랑과 진실을 바탕으로 이웃과 만나 인간관계를 넓힐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해주어야 한다』(13항)고 제안하고 있는데 이는 지금도 유효한 언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의안은 『청소년으로 하여금 규격품이기를 강요하는 모든 제도와 정치적 요구에 의한 통제와 획일성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모독이며, 이는 마땅히 지양되어야 한다』(12항)고 밝히면서도 이런 문제의식을 낳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어떠한 대안이나 구체적 대응 지침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제4장 「가톨릭 학생」은 가톨릭 학생에 대한 정의와 함께 「젊은 대학생들의 의지와 이상을 수용하지 못하는 교회」는 자동적으로 「많은 대학생들」을 포용하지 못하게 돼 결국 그들을 그리스도의 품에서 쫓아내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17항). 아울러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을 비롯한 교회의 가르침과 교회의 현실 사이에 실재하는 괴리감에 실망하여 신앙생활을 포기하는 학생들의 존재가 비쳐지고 있어 오늘날 교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를 통해 의안은 직.간접적으로 교회의 자기 쇄신의 긴박성을 강조하고 있다.

제5장 「가톨릭 청년·학생 운동」에서 의안은 가톨릭 청년은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25항)에 동참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자칫 이론에만 치우치기 쉬운 젊은이들에게 지역사회 활동과 사회에 대한 봉사 등 사랑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의안을 종합해주는 6장 「청년.학생 사목의 방향」에서는 청소년들을 위한 교회의 책임이 강조된다. 의안은 「젊은이들의 경험과 포부를 사회에까지 연결시킬 수 없도록 하는 구조적 장벽」(26항)과 「그들을 고립, 폐쇄시키려는 사회와 교회 내의 장벽」(27항)을 타개하기 위해 교회의 사목적 연구와 대응이 항상 새롭고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함을 밝힌다. 아울러 가톨릭 정신을 바탕으로 젊은이들을 교육.훈련하고 또 젊은이들이 홍보수단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이끌어줄 책임이 교회에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서상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