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 수도회 탐방] 한국 성모의 자애 수녀회 (상) 설립과 영성

박경희 기자
입력일 2004-06-20 수정일 2004-06-20 발행일 2004-06-20 제 2403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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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 순명과 겸손 본받아
소외된 어르신들 위해 봉사
첫 서원자들이 대구대교구장 이문희 대주교로부터 머리수건과 회칙서를 받고 있다.
경북 칠곡군 동명서 동명성당을 지나 팔공산으로 향하다보면 「한국 성모의 자애수녀회」라고 새겨진 큰돌이 눈에 들어온다.

그 입구에서 울창한 숲속 길을 따라 조금만 들어가면 「성가양로원」과 「성가요양원」 건물이 보인다. 그리고 산책하거나 나무와 꽃을 가꾸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모습이 한없이 평화롭다.

이곳 양로원에 뿌리를 둔 한국 성모의 자애수녀회(Sister of Mercy of the Holy Mother of Koea, 원장=백명자 수녀)는 2002년 2월 26일 대구대교구 설립으로 탄생됐다. 2년 남짓된 신생수도회지만, 자애수녀회는 좀 특이한 설립배경을 갖는다.

평복수도회로 시작해 30여년만에 정식 수녀회로 승격했기 때문이다. 많게는 70대가 넘는 이곳 수도자들의 나이는 공동체를 이뤄 함께 해온 긴 세월을 말해준다.

1961년 대구대교구 고 서정길 대주교는 한국전쟁 후 어려운 처지에서 부양받지 못하는 노인들을 돌보기 위해 지금의 수녀원 자리에 성가양로원을 마련했다.

양로원에서 봉사할 동정녀들이 하나 둘 모여들게 되었고, 서대주교는 그들에게 사도직을 수행하는 평신도 공동체를 이루길 원했다. 당시 제2차 바티간 공의회 후, 평신도들의 역할이 중요시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70년 8월 이 평신도 공동체는 「한국순교여자사도회」로 정식인가를 받았다. 양성의 어려움으로 한때 해산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회원들은 꾸준히 성가양로원에서 봉사하면서 공동체 생활을 해왔다.

그후, 87년 12월 대구대교구장 이문희 대주교는 선임자의 뜻을 따라 회칙을 수정해 교구승인 평복수도회로 인준했다.

처음 평신도 재속수도회로 시작했지만, 시대적 흐름에 따라 2002년 2월 수도회로 정식 출범하게 됐다.

같은 해 9월 15일 7명의 수녀가 첫서원한 후, 현재 내년 9월 종신서원을 앞두고 수련생활을 하고 있다. 보통 법정기간 등을 합쳐 6년의 수련기간을 거쳐야하지만, 공동체 설립 때부터 수도자로서의 삶을 살아왔기에 절반 정도로 줄여 3년과정으로 준비하고 있다. 현재 예수성심시녀회에서 양성지도를 위해 파견된 원장?수련장 수녀를 비롯해 14명이 생활하고 있다.

백명자 원장수녀는 『수녀회가 잘 알려지지 않아 성소문의도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하며 『성소자 하나가 들어오는 것이 마치 기다리던 아기가 태어났을 때처럼 기쁘고 소중하다』고 말한다.

수녀회는 명칭에서도 드러나듯 성모님의 영성을 닮아가고자 노력한다. 모토는 「성모님과 함께 하느님께로」.

교회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의 순명과 겸손을 본받아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 특히 소외된 어르신들을 위해 기도하며 봉사하는 삶을 영성으로 한다.

그래서 수녀원 옆 풀밭에는 가난한 자들의 어머니인 「바뇌의 성모상」이 세워져있다. 10여명의 회원들은 성모님의 말씀에 따라 주님의 종으로 살아가기 위해 하루 하루를 봉헌한다.

긴 세월 평신도 공동체로 겸손하게 소명을 다해온 이들의 삶은 오늘날 한국 성모의 자애수녀회를 이루는 밑거름이 됐다.

박경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