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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늘 새땅] 타악기 연주의 대가 박동욱씨 음악인생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04-03-21 수정일 2004-03-21 발행일 2004-03-21 제 2390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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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하느님의 맑은 울림통 두드리며 그분 영광 드러내”
악기별로 음색별로, 두드리는 채의 가짓수도 수천이고 연주 방법도 다양하다. 박동욱씨는 타악기가 조화를 잘 이뤄야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소리가 타인에게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의 소박한 삶에서 자연스레 나온 철학이다.
실로폰, 마림바, 비브라폰, 첼레스타… 심벌, 벨, 공, 크로테일, 마라카스… 핸드벨, 탬버린… 장구, 북, 징, 꽹과리….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팀파니를 비롯해 타악기의 종류는 수없이 많다. 같은 악기라도 크기에 따라 각기 다른 음을 낸다. 악기별로 음색별로, 두드리는 채의 가짓수도 수천이고 연주 방법도 다양하다. 박동욱(요한.70.한국타악인회 명예회장)씨는 국내에서 이 타악기를 가장 잘 다루는 대가(大家)로 꼽힌다.

# 고희 맞은 음악인생

3월 9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는 박동욱씨의 제자들이 그의 고희를 기념해 바치는 헌정음악회가 열렸다.

『스스로 작품을 만들고 연주했었고, 또다시 음악가를 키워내고 그 음악가들이 제 작품을 연주해주는 것은 무엇보다 큰 기쁨입니다』

국내 타악계의 대부(代父)로 일컬어지는 박씨는 독주회를 통해 오케스트라 뒷줄 차지였던 타악기를 처음으로 무대 앞으로 끄집어낸 인물이다. 70~80년대 국립교향악단과 KBS교향악단 수석 팀파니스트를 지냈고 김덕수패 사물놀이를 북미 대륙에 소개, 「불가사의한 리듬」이라는 격찬을 끌어낸 것도 그다. 국내에서 활동 중인 400여명의 타악기 주자들은 거의가 그의 문하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창작한 곡은 대략 3000여곡. 연주횟수 또한 말할 나위도 없이 많다.

# 두드림의 성소

헌정음악회 다음날,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무대의 감동을 되돌아보며 음악인생의 면면을 들어보고자 했다.

뜻밖에 그는 연주나 곡에 대한 것보다 사제의 강론같기도 하고 구도자의 소회 같기도 한 이야기들을 줄줄 이어갔다.

『두드림의 성소를 받으셨군요』

한 수녀님의 인사말을 듣는 순간 박씨는 『그동안 자신이 해온, 또 앞으로 할 모든 음악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내는 하느님의 소리임을 알았다』고 한다.

이후 그는 「하느님의 맑은 울림통」이 되도록 마음의 창을 닦는 일에 혼신을 다하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사소한 작은 것에서 큰 기쁨을 발견하는 나를 봅니다』

작은 들꽃 한송이에 아름답다는 탄성을 낼 줄 알게됐고 스쳐가는 바람소리에서 성서말씀을 들었다. 하느님이 어디에나 계신다는 것을 자연스레 느끼면서 순간순간 바치는 화살기도의 횟수는 늘어만 갔다.

# 다스리는 일

이미 모든 소리는 자연 안에 있었다. 『태초의 하느님 말씀 그 자체가 소리였고 또한 소리의 시작』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 연주가는 이 소리들을, 악기들을 「다스린다」. 그래서 모든 제자들에게 강조한다. 힘을 빼야한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비워야한다고.

박씨의 손이 닿으면 윷가락도 다듬잇돌도 바가지도 녹슨 고철덩어리까지도 훌륭한 악기가 된다. 녹슨 자전거에서는 새소리를 끄집어냈고 국악기 편경 같은 효과를 내기 위해 세계 최초로 「알루미늄폰」이라는 악기도 제작했다.

해빙하는 땅의 소리, 바람의 소리, 얼음 밑에 흐르는 물의 소리…. 상상을 초월하는 도구를 활용해 미세하고도 아름다운 소리를 많이도 만들어냈다.

# 온가족이 음악 동반자

아내와 두딸, 온가족이 음악가다. 함께 모이면 달란트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기도부터 하게 된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타악기 연주가로 뛰어난 실력을 보이고 있는 큰딸 박윤(소피바라.28)씨는 여성이자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필라델피아 커티스음대에서 타악기를 전공했다. 피아노와 작곡을 공부했지만 대학입학 전 스스로 타악기의 길을 선택했다. 새롭고 다양한 음악메뉴를 제공하며 특히 젊은이들과 음악인들의 연결고리가 되겠다는 모습이 꽤나 당차다.

피아니스트인 아내 김혜자 교수(헬레나.61.추계예대)와는 음악으로 하느님께 헌신하자는 뜻이 맞아 부부가 됐다. 올해 박사과정을 밟는 막내 박현(세실리아.26)씨는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 소박과 열정

연주가, 지휘자, 교수, 작곡자 등 다양한 지위에서 명성을 날리지만 그의 일상은 늘 소박하다. 수십년째 재래시장 한 구석에 있는 이발소에서 머리를 손질하고 빈대떡 부치는 할머니와 우정을 나눈다. 세종문화회관을 한번도 가본적 없다는 고물상 주인 가족 모두를 음악회에 초대하기도 한다. 젊은 시절 성가대 지휘자로 봉사할 때도 주일마다 도시락을 싸서 성당에서 거의 살곤 했다. 혜화동본당 어머니 성가대와 청소년 성가대를 차례로 만들며 한주에 성가대 3개를 지휘할 때다.

박씨는 인성과 타악기가 조화를 이뤄야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소리가 타인에게 전달될 수 있다고. 소박한 삶에서 자연스레 나온 철학이다.

최근 연주일선에선 은퇴해 거의 매일 작곡에 몰두한다. 조만간 마련할 새 무대는 국악과 서양악을 접목한 현대적이고도 실험적인 자리가 될 듯하다.

딸 박윤씨도 대를 이어 타악기 연주가로 실력을 보이고 있다. 윷가락을 함께 연주하는 부녀.

주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