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새하늘 새땅] 전인미답 경마 1000승 달성 박태종 기수

곽승한 기자
입력일 2004-02-29 수정일 2004-02-29 발행일 2004-02-29 제 2387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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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럽고 야속했던 ‘작은 키’ 나중에야 선물임을 알았죠”
박태종 기수가 1월 31일 과천 서울경마공원에서 열린 1400m 레이스에서 1위로 골인하며, 1000승 기록을 달성하고 있다.
스물한 살 되던 해 처음으로 말을 탔다. 그리고 열 여덟 해가 지난 39세 때, 정확히 16년 10개월여 만에 전인미답의 개인 통산 1000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한국경마의 역사를 새로 쓰던 날 푸르디푸른 하늘을 향해 나지막이 기도를 바쳤다. 언제나 큰 박수로 응원해 주시던 하늘에 계신 그분께.

■ 1m 50cm 작은 거인

1m 50cm, 47㎏의 단구(短軀). 하지만 그는 우리 나라 경마 사회의 「작은 거인」이라 불린다. 명실공히 우리 나라 최고의 기수인 박태종(요한.39.수원교구 평촌본당)씨. 야구에 이승엽, 골프에 박세리가 있다면 경마에는 박태종이 있다. 경마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그의 이름은 들어봤을 정도다.

박태종씨의 경마 인생은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충북 진천 태생인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로 상경, 식료품점을 경영하는 이모부와 함께 배달일을 하며 지냈다. 작은 키 때문에 상심했던 그에게 이모부는 어느날 「경마기수」라는 직업을 권했다. 이유는 단 하나. 응시 자격이 「키 160cm 이하, 체중 48kg 이하」였기 때문이었다. 당시 150cm에 47kg이던 그에게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은 없었다. 그날로 당장 응시원서를 냈고, 이듬해인 1986년 제13기 기수 시험에 합격했다.

『기수후보생 시험에 합격하던 날, 그때서야 왜 하느님께서 저한테 작은 키를 주셨는지 알게됐습니다. 서럽고 야속했던 지난 10여년의 세월을 모두 보상받는 듯 했죠. 말 타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받아들였습니다』

우승을 하겠다는, 최고의 기수가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무작정 덤벼들었다. 새벽에 일어나 매일 마포대교를 달리며 체력을 키웠고, 하루 종일 말과 씨름했다. 집에 돌아오면 모형 목마에 올라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87년 4월 처음 경주로에 나선 후 6개월 동안 단 한번도 우승을 못했고, 뒤따른 경제적 궁핍은 그를 더욱 힘들게 했다.

『처음엔 말들도 제가 촌놈이라고 무시하는줄 알았죠. 하루에도 수십번씩 다시 시골로 내려갈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오기가 생기더군요. 그날부터 두 눈 딱 감고, 밥 먹는 시간 외에는 말과 함께 살았습니다』

스무살에 처음 말을 탄 후, 16여년만에 전인미답의 개인 통산 1000승이란 금자탑을 쌓았다.

■ 낙마로 부상…아내 도움으로 재기

마침내 그해 10월. 감격스런 첫승을 올렸다. 첫승을 올리고 나니 실력과 자신감이 눈덩이 처럼 불어났다. 그가 말에 오르면, 두 번에 한번 꼴은 우승이었다. 94년에는 최우수 기수로 뽑혔으며, 그 이듬해에는 한국기수로는 최초로 인도에서 열린 ARC(아시아경마대회)에서 2관왕에 올랐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96년 경기 도중 낙마사고로 오른쪽 무릎 인대가 끊어지는 큰 부상을 입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그를 다시 한번 일으켜 준 사람은 승마교관 출신의 아내 이은주(엘리사벳.35)씨였다.

『너무 힘든 날들이었죠. 붕대를 감고 병원 침대에 누워 있으면, 승부조작을 부탁한다는 검은 봉투가 수 없이 유혹해왔습니다. 그때 아내가 저를 다잡아주었죠. 정직하게 살면 하느님께서 순리대로 이끌어 주실 거라면서…』

타고난 성실성과 끈질긴 승부 근성 덕분이었을까. 박기수는 하루도 연습을 거르지 않는 혹독한 자기 관리를 밑거름으로 마침내 재활에 성공, 2000년 10월 종전 국내 최다승 기록을 갈아치운 뒤 하루하루 다승 기록을 새로 수립했다.

한 해 최다승(102승), 한 해 최다 출전(580전), 개인통산 최다승(1000승)…. 이제 약관을 바라보는 나이. 그러나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들은 아직 화려하기만 하다. 돈도 벌만큼 벌었다. 그는 지난 한해에만 약 4억3300만원의 상금을 벌어들였다. 고향 진천의 명예홍보대사로 임명되는 명예도 얻었다. 이젠 경마장이 아니더라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알아볼 정도로 유명세를 탄다. 더 이상 이루고 싶은 꿈이 남았을까.

『가진 것도 욕심도 없었던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 하느님께 두 가지를 약속했습니다. 하나는 평생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겠다고, 또 하나는 나 보다 못한 이를 도우며 살겠다고…』

아내 이은주씨와 함께 두손을 꼭잡고 기도하고 있다.

■ 이웃 도우며 하느님과의 약속 지켜

박씨의 약속은 조금씩 이뤄지고 있는 중이다. 그는 지난 2월 8일 1000승 포상금으로 받은 천만원 중, 500만원은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투병 중인 후배 기수 강종헌의 치료비로, 나머지 500만원은 충북 진천군의 불우 청소년을 위한 장학금으로 기탁했다. 또 1004승을 달성할 경우 이날을 「천사데이」로 삼아 한국어린이보호재단에 「사랑의 기부금」을 전달할 예정이다.

『소망이요? 없습니다. 더 욕심 부리면 나쁜 사람이죠. 그저 아버지(박장백.요셉.69) 만수무강 하시고, 우리 딸 수정(마리아.7)이가 예쁘게 커 준다면 더 이상 뭘 바라겠습니까. 이렇게 멋진 인생을 허락해주신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체력이 다하는 순간까지 말을 타겠다는 박태종씨. 숱한 어려움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오늘에 이를 수 있기까지는 언제나 그의 곁에 하느님이 계셨다. 화려하거나 존경받는 직업은 아니지만,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간다. 그가 만들어가는 한국경마의 새로운 역사는 오늘도 계속된다.

곽승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