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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 은퇴 사제의 삶과 신앙] 서울대교구 정의채 신부 (3) 신학교 교수시절

정의채 신부(서울대교구·서강대 석좌교수),정리=박영호 기자
입력일 2003-11-30 수정일 2003-11-30 발행일 2003-11-30 제 2375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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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신학교 분위기 만들기 앞장
신학생 영성,지성 교육 주력 
1957년에 로마로 유학을 떠나 우르바노 대학교 대학원과 그레고리안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1961년 박사학위를 취득한 나는 라테라노대학교에서 강의를 맡으면서 더 깊은 연구를 하라는 권유를 뒤로 하고 귀국을 서둘렀다.

전후 피폐한 조국, 그리고 사제양성을 위한 교수진이 부족했던 한국교회의 현실을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나라의 앞날에 미국이 미치게 될 영향을 예상했던 나는 미국으로 가서 잠시 더 연구 활동을 하다가 귀국했다. 신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면서 나는 학생들이 영성에 많이 목말라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80여명의 영적 지도를 맡게 된 나는 매일 밤 늦게까지 영적 지도를 하는 바쁜 시간을 보냈다.

1967년 부학장으로 선출된 뒤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보다 인격적인 교육을 위한 몇 가지 조치들을 시도했다. 우선 우편물의 발송 및 접수 시의 검열을 폐지했다. 그리고 전화 한 통 할 때마다 윗사람의 허락을 받아야 했던 것도 개선해 전체 학생들을 위해 공중전화를 놓아주었다. 지금이야 그런 조치들이 당연한 것이지만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일이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변화는 성적이 80점 이상인 학생은 야간대학원에서 학위를 받게 한 것이다. 이것은 신학교가 종합대학 안에 있지 않았기에 미래 사회에서의 사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이 결정은 매우 어렵고 고뇌에 찬 것이었다. 신학생들에게 자유를 주어 저녁에 밖에서 공부하게 할 경우 당연히 부작용이 있을 것이 예견됐다. 처음에는 약 20% 정도가 자유를 남용할 것으로 예상했고 그로 인해 나타나게 될 교회내의 반발도 각오해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교구청으로 투서들이 날아들었다. 신학생들이 야간에 시내에서 영화를 보거나 맥주를 마시는 모습을 보았다는 신자들의 비난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선의의 응답을 보내왔다. 처음에는 5% 정도의 남용이 나타났다. 그리고 학기가 끝날 무렵에는 불과 2%의 남용에 그쳤다. 자기들에게 부여된 자유를 보다 성숙하게 활용하는 지혜를 터득하게 된 것이다.

1972년 나는 독일 뮌헨대학교와 뮌헨 S?J. 철학대학에서 연구활동을 하기 위해 학교를 떠났다. 이후 명동본당 주임 등을 거쳐 1988년 신학대학장으로 다시 돌아온 나는 무엇보다 먼저 영성 지도단을 강화했다.

다음으로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신학 교육장을 개방하고 평신도와 사제, 수도자가 함께 신학 교육을 받도록 했다. 가장 먼저 현석호 선생, 양한모 선생을 포함해 여러 젊은이들이 신학교에 입학했다.

이러한 사고와 실천에 따라 1990년 로마에서 열린 세계주교시노드 제8차 정기총회에서 「가톨릭 종합대학 안에서의 신학생 양성」에 대해 발표했다.

이 발표는 큰 반향을 불러와 많은 나라 교구들과 수도회들에 영향을 미쳤다. 발표 며칠 후 로마에 있는 남자 수도회 장상협의회의 회장 신부가 찾아와 성 베네딕도회, 성 프란치스코회, 성 도미니코회, 예수회, 살레시오회 등의 수도회 장상들이 모여 그 발표에 대해 회의를 했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신학생 양성을 평신도와 같이 종합대학 안에서 해야 한다는 것이고 추후 5년 동안의 연구를 거쳐 전세계 지역 수도회들에 종합대학 안에서의 수도자 양성 지침을 시달할 것을 결의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내용이 로마 본부로부터 예수회에 시달되어 서강대학교 안에서 「신학대학원」을 운영하게 됐다.

신학교육의 근본은 영성과 지성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모든 교육들은 시대적 환경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 시대의 아픔과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알고 봉사하는 자세를 키워나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매주 토요일 실시됐던 「애덕의 날」 실천은 봉사자로서의 사제로 성숙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매주 토요일마다 신학과 5~7학년 학생들은 밖에 나가서 가난한 사람,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돌아왔다.

신분을 노출하지 않고 경험한 순수한 봉사자로서의 체험들을 통해서 신학생들은 내어주는 것의 기쁨을 알게 되고 그것은 곧 사제생활로 이어지게 된다.

1990년 세계주교시노드 제8차 정기총회에서 「가톨릭 종합대학 안에서의 신학생 양성」에 대해 발표했다(맨 오른쪽이 필자).

정의채 신부(서울대교구·서강대 석좌교수),정리=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