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한국교회 토착화를 향해] (12) 신학 토착화의 전개와 과제 (2) 인간관의 토착화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03-07-27 수정일 2003-07-27 발행일 2003-07-27 제 2358호 10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다종교 사회’ 다양한 시각으로 고찰해야
성인 보살 군자 등 각 종교마다 완성된 인물 제시
‘제2의 그리스도’될때 그리스도교의 인간상 실현
정약용, ‘천주교 사상을 유가사상과 접목’ 새 인간관 창출
신학에서 본질적으로 관건이 되는 사안은 인간의 구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다종교 사회인 한국 사회 안에서 인간관에 대한 전통 사상과 제 종교의 관점에 대해 이해하고 그리스도교의 인간관을 토착화된 언어로 제시하는 것은 한국교회의 토착화 작업에서 매우 중요한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인격 이해

그리스도교에서 하나의 인격체로서의 인간은 탄생으로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즉 영혼과 육신의 합일체로서 세계 실재와 관계를 맺는 가운데 완성되어가는 존재이다. 인격으로서의 인간은 실재 일반, 즉 자연세계, 타인, 자신과 하느님과의 현실적 관계 속에서만 인격체로 현존한다. 특히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만 인격의 완전한 성취를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이상적 인간상은 따라서 사도 바오로가 지적한 대로 「제2의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다. 하느님이 원래 원하신 온전한 인격자로서의 인간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돼 있다.

이처럼 인간의 인격으로서의 완성이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됐듯이 하느님을 인간이 자신 안에 받아들이는 것을 통해 인간과 하느님의 인격적인 관계가 온전히 실현될 때 인격 완성으로서의 하느님과의 일치가 지고의 단계로 실현된다.

그리스도처럼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순명하고 그 뜻을 실천하며 타인의 구원을 위해 온전한 희생과 봉사를 하는 헌신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목표이다. 그리하여 세례 받은 신자들 안에 그리스도가 형성되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이상적 인간상을 이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 사상에서 이상적 인간상

동아시아와 한국 종교들 안에서 이상적 인격체에 대한 개념을 살펴보면 그들 나름대로 절대자라고 할 수 있는 무한한 실재를 지향하고 그 가르침을 따르거나 이룩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인물이 있다.

유교에서는 대개 군자(君子)가 이상적 인간상으로 제시되는데, 공자는 수기안인(修己安人)을 실현하는 군자와 성인으로서의 인격자 배출을 지향했다. 맹자는 공자의 수기안인의 인간론에 기초가 되는 성선설을 확립하고 진심(盡心)의 수양론을 통해 도덕적 내면화를 이룩했다. 순자는 공자의 수기안인의 수양론을 예(禮) 사상으로 확립해 이상적 인간의 면모를 제시했다.

불교에서는 진리와 자비를 깨달아 지혜와 자비를 누리게 되는 것이 인격의 완성으로 정의되는데 소승불교에서는 엄격한 계율 준수를 통해 고도의 윤리적, 지적 수준을 지니는 사람을 지칭하고 대승불교에서는 참된 깨달음에 입각해 지혜와 자비로 중생을 제도하는 자를 말한다.

도교에서는 은둔 사상을 바탕으로 도를 따라 자연스러이 처신하는 도인으로 나타난다. 도인은 만물의 원리인 도를 따르고 덕을 함양하며 무위(無爲)로 돌아가 자연스럽게 도와 덕을 베푸는 자이다.

노자는 유가적 도덕 규범의 한계를 지적하고 도의 본래적인 자연스러움을 인간이 추구할 이상으로 제시한다. 인위를 버리고 무위로 돌아감으로써 삶을 자연스럽게 영위하고 만물을 본래의 소박함에로 돌리는 것이 성인이다.

장자는 정치에 기여해 사회를 편안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도와 하나가 된 인격 그 자체를 더 중시해 도의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의 입장을 취한다. 포박자는 도교의 생명주의를 체계화하고 도교적 인격론을 신선사상과 연결해 최고의 경지에 오른 신선은 천지인을 조화롭게 하는 최고의 인격자로 간주한다.

토착화된 인격 이해

다산 정약용은 천주교 사상을 수용해 전통적 유가 사상과의 접목을 시도함으로써 새로운 인간관을 창출했다. 유교 안에 토착화된 그리스도교 인간관의 모습을 제시한 그는 유교적 군자나 성인의 성격을 지닌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이상적 인격으로 파악했다.

이는 인간관의 토착화의 한 실례로써그리스도를 닮은 인간, 즉 제2의 그리스도인이라는 그리스도교의 이상적 인물이 한국의 유교 사회에서 어떻게 토착화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고민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산은 우주 주재자로서의 천의 초월성을 강조해 인간 존재와의 동일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인간이 천으로부터 부여받은 성품에 의거, 여타 만물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의 존재임을 제시했다. 특히 그는 인격적인 면모를 지니는 주재천(主宰天)의 개념에 주목하고 그리스도교의 하느님과 유교의 상제를 동일시하며 그 주재자적인 성격을 받아들여 인격적 천-상제에 대한 섬김의 자세를 제시했다.

그리하여 그는 유교적 인간이 갖춰야 할 자세인 신독(愼獨), 서(恕), 중용(中庸), 인(仁)의 실천, 지천(知天)으로 자신을 닦고(修身), 하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格天知人)이 되는 것을 유교적 그리스도인의 이상으로 강조했다.

한편 동학은 우리 민족 종교 사상을 바탕으로 주로 「하늘」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동학의 창시자인 수운 최제우는 이상적 인간을 「시천주」(侍天主)하는 사람, 즉 말 그대로 하느님을 모시는 사람이다. 여기서 천주는 형이상학적 원리로서가 아니라 인격적 실재로서 기도의 대상이고 인격적 하느님이다.

이는 후대에 와서 삼경(三敬)과 사인여천(事人如天) 사상으로 발전된다. 사인여천 사상은 후에 이르러 사람이 곧 하늘(人乃天)이라는 사상으로 발전된다.

이러한 동학 사상에는 유불도교의 사상이 혼합되어있는데, 동학의 하느님을 천주로 지칭하고 인격성을 부여하며 그 대상에 기도하고 받드는데서 그리스도교와의 연관성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동학에서 천주는 우주의 근원적 실재이면서도 인간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리스도교와는 거리가 있고 「사인여천」은 「이웃사랑」의 계명과도 통하지만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리스도교와는 견해가 다르다.

인간관 토착화의 과제

그리스도교는 물론 동아시아와 한국 종교 전통들은 모두 그들 종교 나름대로 이상적 인간상을 제시한다. 그리스도교의 성인이나 불교의 아라한이나 보살, 유교의 군자나 성인, 도교의 선인, 동학의 지상 신선 등은 모두 나름대로 완성의 경지에 도달한 인간상을 나타낸다.

그리스도교가 인간을 하느님의 모상으로 파악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참 인간이며 참 하느님으로 대하며 인간이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제2의 그리스도가 됨으로써 인격적 완성에 이르는 것처럼, 이들 종교들은 인간을 유한하면서도 무한한 경지에 나아갈 수 있는 신비로운 존재로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무한한 실재와 온전히 일치할 때에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는 인격체로 파악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국적 그리스도인의 이상적 인간상을 추구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그것이 바로 인간관의 토착화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한국 사회는 다종교 사회이다. 수많은 고금의 종교들이 혼재하는 다원 종교 사회로서의 조건은 수많은 종교들과 그리스도교의 상관 관계가 관건이 됨에 따라 토착화의 작업을 더욱 지난하게 하는 측면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다종교 상황은 인간관의 토착화에 있어서 오히려 나름대로의 장점을 지닌다. 이상적 인간의 면모를 단면적으로가 아니라 다양한 시각에서 포괄적으로 탐구하고 제시함으로써 한국적 그리스도인의 고유한 인격관, 이상적 인간관을 창출하고 이러한 인격자들의 출현이 실현된다면 그것은 민족의 복음화는 물론 아시아, 세계 교회의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믿어진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