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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토착화를 향해] (10) 한국교회 토착화와 부문별 성과와 과제 - 200주년 사목회의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03-06-22 수정일 2003-06-22 발행일 2003-06-22 제 2353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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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 의안 - 고유 문화 풍습 연구를
수도자 의안 - 창립자 정신 쇄신 요청
평신도 의안 - 전례 음악 새롭게 표현
교회운영 의안 - 기초 공동체 운영 제안
12개 의안에 토착화 정수 담아
1984년 한국교회는 200주년을 맞아 사상 처음으로 하느님의 백성 전체, 즉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함께 참여하는 사목회의를 소집했다. 안으로는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의 쇄신을 지향하고 밖으로는 민족을 향해 그리스도의 참 빛과 생명을 전함으로써 역사적이고 시대적인 소명을 완수하려는 것이었으며 그것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현대 교회와 세계에 보여준 가톨릭 교회의 모습을 방불케하는 것이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복음과 전통 문화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한국 교회에 큰 자각을 주었다. 공의회가 강조한 토착화의 중요성과 정신에 바탕을 두고 한국교회는 사목회의를 통해 토착화의 필요성과 의지를 강하게 표명했으며 1984년 11월 폐막과 함께 발표된 사목회의 12개 의안은 각 의안마다 이 땅위에서 전개되어야 할 토착화의 정수들을 담고 있었다.

의안에서 제기되고 제안된 과제와 토착화 방안들은 이후 한국 교회 안에서 부분적으로 수용되고 실천됐으나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충실하게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들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사목회의 의안의 토착화와 관련된 부분들을 되짚어 보면서 한국 교회 토착화 작업의 활성화를 모색해보는 것은 새 천년을 시작한 지금에도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사목회의는 특별히 다음의 세 가지 사항에 유의했다.

첫째는 이미 알려진 신앙의 원리 원칙에 충실하면서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목표와 방법을 연구 검토해 한국교회의 참된 성숙에 이바지하도록 한다. 둘째, 보편교회 안에 자리하면서도 한국 민족의 고유한 문화 유산을 계시의 빛으로 조명, 수용하고 신앙 생활 전반에 걸쳐 토착화의 가능성을 탐구해 적극 추진한다. 그리고 셋째, 200년 교회사를 회고하면서 온고지신의 지혜를 터득하고 민족 복음화의 목표를 위해 오늘의 현상을 분석 검토하고 미래 지향적인 선교 대책을 수립한다.

이처럼 사목회의는 「이 땅에 빛을」, 즉 민족의 문화와 삶 속에서 꽃피울 하느님 나라와 교회 상을 모색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지속적으로 전개돼야 할 토착화 작업의 전망을 종합적으로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의안별 토착화 모색

성직자 의안은 『우리 민족의 전승 문화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며 선교에 적응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 생명력 있고 경건한 전례 집행을 위해서는 우리 고유 문화와 풍습을 깊이 연구하고 적용해야 하며 좀더 구체적으로는 각 교구마다 시범본당을 두어 살아있는 모범과 규범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사목활동에 있어서는 지배자가 아닌 봉사자, 종으로서 본당은 사목위원회와 함께, 교구는 사목협의회와 함께 형제적 관심과 배려로 운영돼야 한다. 이웃 종교에 대한 관계에서도 보다 수용적이고 협력적인 자세를 권장한다.

성직자 의안은 보다 민주적인 바탕 위에서의 사목협의회를 요청한다. 특히 주교회의의 경우, 『주교회의 의제에 대한 깊은 연구와 사제들과 평신도들 및 수도자들 중에서 적격자를 선발해 회의에 참관할 수 있도록 하며 그들로 구성되는 전문위원회나 자문위원회를 두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수도자 의안은 민족복음화, 토착화, 참다운 쇄신 등 시대적 요청에 부응해 새롭게 출발하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다며 특히 뿌리의식을 강조, 창립자의 정신으로 돌아가려는 노력과 창립자의 정신을 시대와 교회의 필요에 따라 쇄신하려는 노력이야말로 토착화의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의안은 시대의 징표에 민감할 것을 강조하고 이 땅의 문화와 전통, 역사와 환경, 한국인의 심성과 종교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쇄신은 선조들의 순교정신을 본받고 민족 문화와 전통의 토양 위에 그리스도의 정신을 뿌리내리는 민족복음화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평신도 의안은 한국교회 토착화를 위한 사목적 방안에 대해 네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는 토착화의 바탕으로 동양의 종교 전통을 배우고 그리스도교적으로 평가할 교육의 필요성, 둘째는 전례음악과 미술을 한국 전통 안에서 새롭게 표현하는 전례의 토착화, 셋째는 서구신학에 일방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신학의 토착화, 마지막으로 수도자만이 아니라 모든 신자들의 영성의 토착화이다. 의안은 교회 토착화를 위한 전문 연구기관을 설치할 것도 제안하고 있다.

전례 의안은 전세계 교회와의 통일성을 유지하면서도 한국의 전통 문화 풍습과 현실을 고려하고 부단히 발전시켜야 하는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나아가 각 성사를 미사와 결부시켜서만 거행할 것이 아니라 한국의 고유 축제 예식으로 이끌 수 있도록 토착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준성사와 거룩한 신심 행사에서도 한국적 전통과 풍습을 활용할 수 있는 토착화가 요망되며 성음악, 교회건축과 성미술에 있어서도 신자들의 참여를 실현하고 독창성을 발휘하도록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심운동 의안은 모든 신심운동이 한국적으로 토착화될 수 있도록 연구가 요청된다며 특별히 한국 순교자 신심을 언급한다. 아울러 신심 운동에 대한 용어와 명칭들이 모국어로 토착화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사목 의안은 토착화를 위한 문화적 사목활동에 대해 언급하고 교회의 고유 진리를 유지하면서도 그 문화에 육화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회가 전통 문화와 만날 때, 전통 문화를 배제하거나 또는 무조건 수용하는 두 가지 극단적 태도를 버리고 그리스도의 빛으로 문화를 정화, 쇄신시켜 문화를 더욱 풍요롭게 한다고 말했다.

교리교육 의안은 주입식 교육에 치우치거나 전통 교리를 현대의 토착화된 언어로 들려주지 못하는 문제를 지적하고 전통 종교, 현대적 사조가 모두 교리교육에 영향을 미치므로 시대와 장소에 적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교리교육의 토착화는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한국의 전통, 관습, 문화, 정서에 적응시켜 가르치는 일이며 실정에 맞는 지침서를 마련하고 통일된 시행 지침을 준수할 것을 요망한다.

교회운영 의안은 기초 공동체를 제안한다. 신자수 증가와 사제 부족으로 신자들끼리의 친교가 어려워짐에 따라 지역적 조직으로서 이웃에 사는 신자들이 참여하는 기초 공동체는 전례와 사랑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선교 의안은 면밀한 선교 정책을 수립해 선교활동을 추진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문화, 사회, 학문과 타종교 및 비가톨릭 그리스도인들과의 대화를 꾸준히 시도함으로써 복음이 뿌려질 토양과 토질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 사회의 변화를 잘 파악하고 오늘의 한국 사회가 필요로 하는 구원을 말씀과 행동으로 증거해야 하며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특유의 문제들에 대해서도 해답을 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회정의 의안은 불평등과 불공정을 시정하고 화해와 일치를 통한 평등의 실현을 강조하면서 노동 문제에 대해서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사회 정의 실현과 관련된 교회의 활동과 노력들은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검증돼야 하며 따라서 교회는 참으로 민족과 사회 안에서 빛의 역할을 하는가를 냉철히 뒤돌아보고 끊임없이 자기 쇄신을 해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근 20년 전에 개최된 사목회의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현대화와 적응의 정신들이 한국 교회에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가 하는 현실적인 제안들을 담고 있다. 특별히 12개 의안은 거의 모든 의안에서 한국 교회가 제대로 토착화되어 있지 못함을 지적하면서 토착화 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명하고 있다.

그러한 진단과 문제 제기는 사실 2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다소간의 진전은 있었다 할지라도 전체적으로 볼 때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도교가 한국 사회와 민족 안에서 이질적인 외래 종교로 간주되지 않고 참으로 민족 안에 육화되기 위해서 토착화 작업은 필수적인 과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사목회의 의안이 제기한 많은 토착화의 요청들을 다시 한 번 검토하고 되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