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성가정을 찾아서] 아홉 자녀 둔 유성본당 송남섭씨 가정

마승열 기자
입력일 2003-02-09 수정일 2003-02-09 발행일 2003-02-09 제 2334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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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남매 서로서로 엄마아빠 되어주죠”
어떤 이익이나 비난에도 아이를 우선 선택
매일 함께 기도…든든한 가족 주심에 감사
대전교구 제1회 성가정 생명장학금을 받은 송남섭씨 가족들이 교구장 경갑룡 주교 등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유리야, 남희야 어서 일어나』

『유미야 동생들 깨워라. 빨리 아침 먹고 학교가야지』

아침 7시. 학부모들이라면 어느 집이나 아침마다 이같은 광경이 통과의례처럼 벌어진다. 대전교구 유성본당 송남섭(50·요한)-조용례(44·안토니아)씨 가정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이 가정은 더욱 치열하다. 지금이야 겨울 방학 때라서 괜찮지만 송씨 가정은 아침마다 한바탕 전쟁(?)을 치르다 아이들이 모두 등교한 8시쯤에야 겨우 진정된다. 이 가정이 다른 집보다 등교시간에 더 분주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바로 자녀수 때문. 요즘같이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송씨네 부부는 무려 아홉 자녀를 두고 있다.

현재 대전시 유성구 복룡동에서 1000만원 전세에 살고 있는 이들 가족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이다. 송씨가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며 받는 월급이 수입의 전부. 대부분 서민들의 경우 학비와 경제적인 부담 등으로 자녀를 많아야 둘 내지 셋정도 낳는 시대에 송씨 부부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던 것.

『생명은 모두 하느님의 크신 은총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주저 없이 낳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아이들을 모두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실 것이란 믿음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며 살고 있습니다』

한번도 자녀를 많이 낳은 것에 대해 후회해본 적이 없다고 설명한 부인 조씨는 그동안 경제적인 어려움보다 주위의 따가운 눈총 때문에 맘고생이 심했다고 밝혔다. 『경제적 형편도 안되면서 무슨 아이를 그렇게 많이 낳느냐?』 『이 아이들을 다 어떻게 키우려고 그렇게 무책임한 행동을 할 수 있느냐』 등등 많은 비난과 질책이 쏟아지기도 했다.

더욱이 친정식구들이나 친척들까지 넷째부터는 적극적으로 출산을 반대하고 나섰다. 그래서 넷째 아이 낳을 때부터는 아예 알리지도 못했다고. 하지만 송씨 부부의 생각은 확고했다. 특히 부인 조씨는 주위의 시선에 가끔 마음 흔들린 남편을 다잡으며 『하느님께서 주신 소중한 생명 기쁘게 받아들이자』며 서로를 격려했다.

한때 용접 기술자로 일하던 송씨는 산소가스가 터지는 사고로 인해 혼수 상태에 빠지는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그 때의 후유증으로 아직도 언어구사에 조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는 이후 단순 노동일을 하다가 8년전부터 이곳에서 환경미화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유성에서도 변두리 지역에서 어렵게 살림을 꾸려나가고 있는 송씨네 가족. 그의 박봉으로 사실 아홉명 자녀를 제대로 키우기란 불가능한 실정이다. 다른 아이들이 학교 외에 학원이다 해서 다니지만 이런 일은 꿈도 꾸지 못해 늘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큰 자녀들이 동생들을 공부 가르치며 함께 놀아주기도 해 학원가는 것 이상의 효과를 보고 있다고.

더욱이 그동안 본당 사제와 수녀, 신자들이 조금씩 이 가정을 후원하고 격려해오며 경제적인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도와주고 있어 송씨 가족은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왔다.

송씨는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신기하게도 늘 채워주시는 분들이 계셔 남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큰 어려움은 겪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이러한 모든 것이 하느님께서 우리 가족에게 베푸시는 은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하지만 송씨네 가정은 예외다. 아홉이나 되는 자식들이 있지만 그동안 별다른 속썩이지 않고 잘 성장해주었다. 첫째 정미(안나·22)에서부터 유미(데레사·21), 계남(미카엘라·19), 유리(마리아·15), 남희(요세피나·12), 치재(필립보·10), 유림(로사리아·8), 유진(글라라·5), 치민(요셉·2)까지 2남7녀. 첫째와 막내와의 나이 터울은 무려 20살.

고등학교 때부터 제빵에 관심을 가져온 첫째는 현재 제빵 기술자로 제과점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둘째는 충남대학교에 재학 중이다. 그 밑으로는 중학생에서 초등학생까지 있다.

『아이들이 많다보니 집안이 온종일 시끄럽고 정신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의외로 집안 분위기가 평화롭다. 그동안 큰 자녀들이 알아서 동생들을 잘 챙기고 보살피며 어머니의 수고를 덜어주어왔기 때문이다.

특히 온순한 성격의 자녀들 중 둘째 유미는 주일학교 교사로, 넷째 유리와 다섯째 남희는 성당에서 복사 활동을, 여섯째 치재도 조만간 복사를 서는 등 본당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여기에 부인 조씨도 본당 6구역 1반장으로 봉사하며 모범적인 신자 가정의 표본을 보여주고 있다.

송씨 가정은 아이들과 함께 매일 묵주기도와 저녁 기도를 바치며 자녀들에게 기도하는 습관을 길러주고 있다. 부인 조씨는 자녀들에게 『우리 가족만큼 하느님께 큰 은총을 받은 사람들도 없다』고 일깨우며 주님께서 가족들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인지 자녀들 모두가 부모에게 순종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깊으며 본당에서도 열심히 활동하면서 훌륭하게 성장하고 있다. 둘째 유미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우리 가족만큼 축복을 많이 받고 화목하게 사는 곳이 드물다고 자부해왔다』면서 『형제들이 많다보니 조금 불편한 점도 있지만 서로가 든든한 힘이 되어주며 의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대부분 가족들이 집에 들어온 저녁 8시. 식사를 마치고 둘러 앉은 가족들은 모처럼 저마다의 새해 소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부인 조씨는 『우리 가족 항상 지금처럼 화목하게 살았으면 한다』면서 『특히 우리 자녀들 중 사제나 수도자가 나와 하느님께 받은 은총을 다른 이들에게 나눴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여섯째 치재가 『나도 앞으로 어머니가 바라는 신부님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고 이야기를 받았다. 이어 대부분 자녀들은 한결같이 현재의 자신들 처지에 대한 만족감을 표시하며, 오래도록 부모 공경하고 형제간의 우애를 다지며 화목한 생활을 할 수 있기를 기원했다.

『그동안 가족 전원이 함께 여행가거나 외출한 적이 없었어요. 함께 모이는 기회가 힘들었을 뿐 아니라 작은 아이들의 경우 우리 식구가 많은 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신기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기 때문이지요. 저는 앞으로 온 가족이 함께 여행을 가는 기회가 한 번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갖고 있습니다』

남편 송씨는 이처럼 소박한 새해 소망을 밝혔다. 자신들의 가족들간에는 아무런 걱정없이 잘 살고 있는데, 주위의 시선이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는 것. 그는 또한 낙태 등 죽음의 문화가 사라지고 주님께서 주신 소중한 생명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사회 풍조가 조성 됐으면 하는 바람도 피력했다.

지난해 12월 29일 성가정 축일을 맞아 교구장 경갑룡 주교로부터 제1회 성가정 생명장학금을 받은 송남섭씨 가정. 이들 가족은 주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모범적인 성가정을 이루며 훌륭한 주님의 자녀들로 살고 있었다. 모든 것을 주님께 의탁하고 부족한 것은 항상 채워줄 것이란 믿음속에 생활하고 있는 이 가족 안에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어느 가정보다 진정한 사랑과 평화가 흘러넘쳤다.

성가정 생명 장학금 시상식 후 온가족이 경갑룡 주교로부터 축하의 인사를 받고 있다.

마승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