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새해기획 / 희망을 일구는 사람들] 장애인 콜택시 운전사 김홍근 씨

서상덕 기자
입력일 2003-01-12 수정일 2003-01-12 발행일 2003-01-12 제 2331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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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들 미소에 큰 기쁨 누려”
수익 거의 없지만 나누는 마음으로 전업
선교에도 한몫 … 신자 모임도 꾸릴 계획
1.2급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운행하는 콜택시 운전사 김홍근씨. 늘 성심 성의껏 장애인을 배려한 덕분인지 단골손님도 꽤 늘었다.
오전 5시30분, 내려앉은 하늘에서는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김홍근(안드레아,53)씨는 요즘 새벽밥을 먹고 집을 나선다.

『저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잠시도 머뭇거릴 수가 없습니다』

어둠 속에서 얼굴 가득히 미소를 머금은 김씨가 새벽부터 서둘러 도착한 곳은 여의도 선착장 근처의 「서울시 장애인 콜택시」 차고지. 지난해 12월부터 김씨의 새로운 일터가 된 곳이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임원으로 일하다 5년 전 퇴직한 김씨의 이런 뜻밖의 전업은 가족 외엔 가까운 친구들 가운데서도 아는 이가 거의 없을 정도다. 주위에서 쏟아질 법한 숱한 시선과 말로 자신의 일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굳이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김씨의 아내조차도 그가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야 새벽 일찌감치 집을 나서는 이유를 묻고 알 정도였다.

김씨가 택시 운전사로 나서기로 마음먹은 것은 지난해 11월 서울시가 장애인 콜택시 운전사를 뽑는다는 소식을 접하면서였다. 평소에도 크고 작은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온 그는 장애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든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거리낌없이 응모했다. 100명의 운전사를 뽑는 이 길은 출발부터 만만치 않았다. 5.5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씨는 그 100명 가운데 당당히 얼굴을 내밀 수 있었다. 그간 꾸준히 쌓아온 봉사활동이 선정에 큰 몫을 한 셈이다.

『하느님께 받았던 은총의 체험을, 그리고 감사의 마음을 나누고 싶었을 따름입니다』

퇴직금과 몇년 전 문을 연 부동산중개소 수입만으로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는 터라 그의 전업은 언뜻 뚱딴지같이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마음이 흐트러질지도 모른다는 염려에서일까, 중개소마저 문을 닫고 이 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1, 2급 장애인을 대상으로 운행하는 콜택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이라고 해야 한달에 10만원도 넘기 힘들다. 서울시로부터 매달 95만원을 지원받지만 요금이 일반 택시의 40% 수준인데다 연료비 차량정비비 등 차량유지관리비로 들어가는 돈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김씨는 서울 지도를 펴놓고 길을 익히느라 여념이 없다. 잠시라도 멈춰 서있을 때면 지도책과 도로변의 이정표를 오가는 그의 눈길은 또 한번 바빠진다. 차고지에서 대기할 때도 주위 동료들에게 물어가며 길을 익히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장애인들을 도우려다 오히려 불편을 끼치는 건 아닌지…』

직장생활을 하며 오랫동안 자동차를 몰았지만 고작 집과 회사를 오가는 정도였기에 택시 운전대를 잡은 그의 마음은 늘 장애인에 대한 미안함부터 앞서고 만다. 자신의 택시를 탄 장애인에게 물어물어 목적지를 찾아가지만 처음 가보는 곳이 태반이라 길을 잘 몰라 헤매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물며 언어장애를 지닌 이를 태울 땐 모든 게 자신의 탓인 양 미안함이 커지고 만다.

지체장애인을 태우고 목적지를 향하다 보면 의외로 신경이 많이 쓰인다. 수시로 장애인의 안전을 점검하고 불편해하지 않을까 뒤를 돌아다보게 되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성심성의껏 장애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통해서일까 그를 찾는 단골고객도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눈이나 비가 오는 궂은 날이면 그를 찾는 전화도 늘어난다.

김씨는 얼마 전부터 자신의 자리 옆에 천주교를 알리는 선교책자를 비치해 다니고 있다. 비신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신앙을 전하기 위해서다. 그가 이런 조그만 부분에까지 세심하게 신경 쓰는 것은 일터를 선교현장으로 여기고 열성적으로 나서고 있는 타종교 신자들의 모습이 적잖은 자극이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개신교의 경우 전도사 출신의 목사가 몸소 택시 운전사로 나서 선교에 열을 올리고 있기도 하다.

『신자 기사로서 책임감마저 듭니다.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제 몫을 꾸준히 찾아 나갈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에 그는 장애인 콜택시 운전기사 가운데 신자들을 발굴해 신자모임도 꾸려 나갈 계획이다. 벌써 5, 6명의 신자들이 함께 할 마음을 모아 가고 있다.

나흘 일한 후 찾아오는 하루의 쉬는 날도 그에게는 쉬는 날이 아니다. 몇 년 전부터 해오던 호스피스 봉사활동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 호스피스 봉사자가 부족한 관계로 그의 손길을 기다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제 몸이 움직일 수 있는 동안은 하느님께 받은 것을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목적지까지 태워다 준 장애인이 환한 미소로 감사의 뜻을 전해올 때가 가장 기쁘다는 김씨, 그는 오늘도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전령으로 장애인의 애마를 몰아 장애인을 찾아가고 있을 것이다.

서상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