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성가정을 찾아서] 서울 가정성화사도직 백낙현-유인옥 회장 부부

이진아 기자
입력일 2003-01-01 수정일 2003-01-01 발행일 2003-01-01 제 2329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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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싸움 고부갈등… 기도 봉사의 삶으로 극복”
강도만나 죽다살아나 봉사 더 열심
아이들에겐 말대신 행동으로 교육
신앙 사랑 신뢰 격려로 성가정 꾸려
본지는 신년호부터 기획시리즈 「성가정을 찾아서」를 신설, 나자렛 성가정을 본받아 복음적 활력으로 세상 안에 빛을 발하는 신자 가정을 찾아 소개한다. 사랑과 결혼, 가정의 의미가 폄하되고 신앙에 대해서도 무관심한 세상 안에서 신앙의 요람으로 성장하고자 노력하는 신자 가정의 모습들은 복음을 증거하고 생명을 살리는 또 하나의 중요한 표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생각해주시며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주십니까?」(시편 8, 4).

서울 가정성화사도직 백낙현(요셉.54.서울 봉천본당)-유인옥(마리아.51) 회장 부부네 현관을 들어서니 붓글씨로 쓰여진 성서가훈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아담하고 소박한 집에는 가족사진과 성모상, 교회 관련 책이 장식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불과 몇 년 전 만해도 아이들과 부모님, 3대가 함께 살면서 왁자지껄했던 집. 이젠 백회장 부부와 중 3짜리 막내아들만 남아 단란한 성가정을 꾸려가고 있다. 노부모님은 몸이 편치 않아 따로 모시고 있고 반듯하게 자란 두 딸은 수도자로, 한 가정을 꾸려가는 새내기 주부로 또 다른 신앙의 씨앗이 되어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별다르게 해준 게 없어요. 물질적으로 풍족히 채워주지도 못했고 그저 교회에서 배운대로 살려고 노력한 거 말고는 아무 것도 없어요. 다 하느님 덕택에 잘 자란 거 같아요』

모든 걸 하느님 공으로 돌리며 그들의 자녀 또한 하느님의 도구라고 고백하는 백회장 부부. 이들의 한결같은 믿음과 신앙은 세례를 통해, 하느님 체험을 경험하면서 20년 동안 계속 이어져오고 있다. 「성가정」이라는 말이 가당치 않다며 부끄러워하는 이들은 다만 그렇게 살려고 노력할 뿐이라고 했다.

유씨는 남편의 해외지사 발령으로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면서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혼자서 1년간 교회를 다녔다. 외국생활 중 막연히 바티칸을 찾기도 했었던 백씨는 이끄심이 있었는지 1981년 귀국 후 제일 먼저 아내와 함께 성당을 찾았다. 드디어 이듬해 세례를 받았고 이후 본당 전례분과위원을 시작으로 성당 일은 주어지는 대로 마다하지 않고 했다. 하느님께서 주신 일이겠거니 했다.

지난 86년, 이들 부부에게는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하느님을 체험했던 사건이 있었다. 늦은 밤 성당에 갈려고 나서는 길에 집에 들이닥친 강도의 칼에 찔린 것이다. 동네병원에서는 손을 쓸 수 없었고 병원을 찾아 헤매는 동안 백회장은 엄청난 피를 쏟아냈고 간신히 수술을 했다. 대수술을 하고서도 생사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던 상황. 병자성사까지 준비해야했었다. 그런 중에도 유씨는 마음을 다스리며 매일같이 성당을 찾아 기도하고 묵주알을 굴렸다. 모두가 희망을 버릴 즈음 가족과 신자들의 기도가 하늘에 닿은 탓인지 백회장은 그제서야 의식을 차렸고 기적처럼 회복됐다.

병자성사 후 덤으로 세상을 얻은 백회장. 하늘의 도우심 없이는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누구보다 몸소 깨달았고 간절했던 이웃과 가족의 기도가 감사했기에 그때부터 더 열심히 봉사활동을 했고, 가정을 위해 시작했던 기도모임이 지금의 가정성화사도직 단체로 자리매김한 것은 벌써 10여년이 다 돼간다.

하느님의 일꾼으로 봉사하기 위해 제일 먼저 한 일은 새벽미사 봉헌과 기도는 기본이요, 성서공부와 신앙서적 탐독이었다. 예비신자 교리만으로는 가톨릭 신앙에 대한 궁금증을 모두 풀 수 없었고 교회와 성인들의 가르침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성당에서 예비신자 교리를 가르치는 이들 부부는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라도 여전히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20년 봉사의 삶으로 가정과 자녀를 지켜온 백낙현-유인옥 회장 부부.

백회장 부부도 신앙을 얻기 전까지는 여느 부부들처럼 치열한 부부싸움도 했고 고부갈등으로 마음 아파하기도 했다. 아이들을 위한 교육 역시 몸소 보여주기 보다 말로써 강요하고 닥달했다. 그러나 수없이 다녔던 봉사활동, 성서공부, 가정을 위한 기도와 희생을 통해 소중한 것을 얻었다.

늘 넉넉한 형편도 아니었고 IMF 한파가 닥쳤을 때 누구보다 힘든 시기를 보냈었다. 그러면서도 기도할 수 있었고 아이들에게도 말 대신 행동으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

남편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아내를 위한 끊임없는 격려, 그리고 신앙. 이것을 주춧돌 삼아 부부를 지켜가고 봉사활동을 통해 하느님 섬기는 삶을 살아온 이들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하는지를 가르쳐주었다.

『부부간의 견고한 사랑만큼 아이들에게 더 큰 교육은 없는 거 같아요. 아이들 앞에서 엄한 부모이기 보다 허물까지 다 보이며 낮은 모습으로 살았더니 다들 하느님 안에서 건강하게 자라고 제 자리를 찾아가더라구요. 이제는 오히려 제가 아이들에게 조언을 얻고 격려의 말을 듣는답니다』

둘째 딸이 수도자의 길을 가겠다 했을 때 기뻐했던 마음은 「혹시 주어온 딸이 아니냐, 뭐 그렇게 까지 기쁘냐」는 이웃의 이상한 시선을 받기도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가문의 영광으로 여긴다는 부부는 매일같이 딸을 위해 기도하는 일을 빠트리지 않는다.

『…스물 일곱 해를 아낌없는 사랑으로 키워주시고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몸소 일깨워주신 두 분께 감사의 마음을 다 보여드리지 못함이 안타깝지만 삶으로 하나 하나 보여드리겠습니다…』(큰딸 이사벨라의 결혼식 편지 중에서)

올해 새 가정을 꾸린 큰딸. 결혼식날 부모님을 위해 쓴 편지는 하객들의 눈시울을 적시게했고 성가정을 이끌어온 부부의 삶을 딸을 통해 볼 수 있었다.

하느님께서 꾸려주신 따뜻한 가정이기에 밥 한 숟가락 먹고 살 때까지 봉사하겠다는 이들 부부의 앞으로의 소망은 가정성화사도직을 통해 가정의 소중함을 이웃에게 전하는 것이다. 서울을 시작으로 수원, 대구대교구에서 가정성화사도직 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가장 본질적인 기도와 미사, 가정상담, 성서가훈 짓기, 세미나 등 신앙인으로서 가정을 지켜가기 위한 방법을 실천하고 전하고 있다. 금방 어떤 효과를 찾아볼 수 있는 신앙모임도 아니고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세미나나 강좌가 아니다보니 벌떼처럼 사람들이 몰려드는 모임이 아니라 못내 아쉽다고 했다. 그러나 진리는 언젠가 전해지는 법. 봉사자들과 미사에 참여하는 많지 않은 신자들이 겨자씨가 돼서 사람들에게 가정성화의 필요성을 전하리라 믿는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신자들부터 가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모범적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한다면 가정의 위기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정을 이끌어가는데 언제나 좋은 일만 있을 수 있나요. 서로를 위해 기꺼운 마음으로 희생하고 봉사할 때 성가정을 꾸려가는 거죠. 마리아와 요셉 성인이라고 늘 행복했겠어요. 어쩌면 더 많은 시련을 겪으면서도 하느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셨겠죠』

20년 봉사의 삶으로 가정과 자녀를 지켜온 백씨 부부. 세상의 어려움 때문에 「가정」이라는 사랑의 요람이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들의 힘이 아니라 하느님이 이끌어주심을 믿기 때문에.

서울대교구 가정성화사도직 백낙현-유인옥 회장 부부네는 불과 몇 년 전 만해도 아이들과 부모님 3대가 함께 살면서 왁자지껄했다. 「성가정」이라는 말이 가당치 않다며 부끄러워하는 이들은 다만 그렇게 살려고 노력할 뿐이라고 했다.

이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