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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부터 다시] 1부 - 신앙고백 (14) 땅도 구원 받는다?

김상재 기자
입력일 2002-04-28 수정일 2002-04-28 발행일 2002-04-28 제 2296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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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인류' 뗄 수 없는 공생관계
4월 22일은 지구의 날이었다.

보통 이 날이 되면 환경단체들은 각종 행사를 펼치며 인간에 의한 지구 약탈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킨다.

하지만 아직까지 사람들로부터 그리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공감은 하면서도 나와는 무관한 느낌, 뭐 그런 상태다.

아마도 산업문명을 거치는 오랜 기간 동안 길들여진 인간중심적 세계관과 경제 우선의 개발 정책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세계관은 교회 안에서도 팽배해 있다.

개발론자들은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는 창세기(1, 28)의 구절을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운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에서는 세상은 하느님의 창조물이요 그 주인은 하느님이시라는 창조 영성의 첫마디가 간과되고 있다.

주인이 관리인에게 무언가를 맡겼다면 어떻게 해야 유능한 관리인일까?

두 말 할 나위도 없이 주인의 뜻, 주인의 방식대로 관리하는 것이 관리인의 처신이다. 결국 땅의 지배도 창조주의 뜻에 맞게 이뤄질 때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

성서 상에서 땅은 인간이 관리하는 정원과 같다(창세 2, 8. 15 집회 17, 1~4).

인간은 이 땅에서 노동을 통해 흔적을 남기는 행위로써 주인의 뜻에 합당한 착한 관리인이 되느냐 아니면 주인 모르게 착취를 일삼는 못된 관리인이 될지가 결정된다. 그래서 하느님은 『정의의 씨앗을 심어라 그러면 사랑의 열매를 거두리라 … 그런데 너희는 밭을 갈아 악을 심었으니 거둘 것이 악독밖에 더 있겠느냐』(호세 10, 12~13)며 한탄하신다.

인간은 땅에서 자신의 노동을 통해 거둔 모든 열매들을 가지고 전례를 통하여 하느님께 찬미 드리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적인 정복의 개념이다.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모든 만물은 하느님의 권세와 신성을 드러내는(지혜 13, 3~5) 성사요 표징이며 만물 구석구석 하느님의 은총이 깃들어 있다. 그래서 인간은 우주를 관찰할 때 찬탄을 금치 못하며 자연에 대한 경외감은 하느님에 대한 「거룩한 두려움」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유익과 행복을 위해 만들어진 세상을 인간이 잘못 다루면 하느님은 세상을 통해 벌하신다. 노아의 대홍수가 그렇고 이집트의 열가지 재앙과 소돔과 고모라의 화산이 그러하다.

오늘날의 지구도 별반 다르지 않다. 땅은 농약 범벅이고 숲은 갈아엎어지고 강물은 폐수로 썩어가며 인간 생명은 조작되고 복제된다.

여기에 대한 경고의 징후도 갈수록 두드러지는데 하늘(오존층)은 뚫리고 빙하는 녹고 화산은 분출하고 이상기온이 계속되고 윤리 도덕이 갈수록 문란해지며 세계 도처에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인류의 위기다. 지구를 함부로 다뤄온 인간에 대한 경고다.

과학자들은 우주의 나이를 150억년 정도라고 계산하고 인류의 발생을 400만년 전이라고 본다. 스티븐 호킹박사의 우주 시계 이론대로 하면 23시 59분 58초에 태어난 인간이 0.1초도 안되는 우주 시간 안에서 그 오래 지탱해 온 우주의 생명력을 다 갉아먹고 있는 셈이다.

인간이 창조되기 이전에 세상이 창조되었다는 사실은 지구 없이 인류도 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고 인류와 세상은 유기적으로 연결된 공동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과 마찬가지로 땅도 구원의 대상이 된다. 현재의 땅은 사라지고(마태 24, 35) 새로운 땅(묵시 21, 1)이 이루어 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땅은 더 이상 인간의 탐욕에 물들지 않고 정의가 깃들인(2베드 3, 13) 인간과 세상이 공존하는 땅이 될 것이다.

김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