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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부터 다시] 1부 - 신앙고백 (9) 기도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02-03-24 수정일 2002-03-24 발행일 2002-03-24 제 2291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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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뜻 아닌 하느님 위한 기도여야"
예리고의 소경, 백부장, 가나안 여인, 야이로, 하혈하는 여인, 라자로의 동생 마르타, 아들의 죽음 때문에 울고 있는 과부, 간질병에 걸린 아이 아버지, 가나의 혼인잔치에서의 마리아.

성서안에 등장하는 이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믿음으로 청하는 것이라면 하느님께서 항상 들어주심을 보여준 주인공들이라는 점이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믿음으로 부르짖으며 도움을 구하는 사람에게 항상 대답하셨고 나아가 기적으로도 대답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기도의 능력」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신앙인의 화두라 할 수 있는 「기도」. 이는 신앙의 핵심적 요소가 되면서 또한 신앙인과 비신앙인을 구별해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가톨릭에서는 전통적으로 기도를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하느님께로 향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기도는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하느님께로 돌리고 그분을 흠숭하고 감사하며 은혜나 용서를 청하는 것으로 그 구성은 「나와 너」의 형식으로 인간에게 말씀을 건네는 하느님과 그 말씀을 듣고 하느님께 신앙으로 응답하는 인간 사이의 대화로 설명되고 있다.

성서에서의 다양한 기도 모습에서 참고할 수 있듯이 결국 기도의 본질은 하느님 앞에 있을 때 느껴지는 그 필요성에 따라 가장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형식으로 하느님과 통교하는 것이다.

그러면 기도는 왜 필요한 것인가. 기도는 자기의 존재와 생명이 하느님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고백하는 신앙인들이 그 하느님과 매일 만나고 말씀을 듣고 사랑을 체험하며 그분 자녀로서 친분을 두텁게 하는 끈이 되기 때문이다.

작은 형제 자매 전교회 창립자 안드레아 가스파리노 신부는 기도와 관련한 저서를 통해 「그리스도인이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고 밝힌다.

아무도 기도없이 자신의 능력만으로 「서로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계명을 실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서안에서 예수님 역시 기도에 대해 자주 말씀하시고 중요성을 강조하신다. 특히 8억5000만의 가톨릭신자 4억5000만의 개신교신자 2억의 정교회 신자들이 매일 드리고 있는 「주님의 기도」는 예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시대를 초월하여 기도의 모범이 되고 있는 하나의 표준이다.

예수께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명백히 가르치기를 원하셨고 또 친히 만드신 기도문을 우리를 위해 주셨다는 것은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드러내는 확실한 표지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편 많은 신앙인들이 기도를 마치 무거운 짐이나 의무처럼 생각하는 경향은 왜 일까. 힘겹고 애착이 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교회내 영성가들은 사람들이 깊은 기도에 도달하지 못하고 충분히 기도하지 않는 까닭은 기도가 「의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기도를 마치 무거운 짐이나 의무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기도에 대한 애착이 없어진다는 것. 이같은 고정관념이 계속되면 기도의 깊이는 절대 맛볼 수 없다고 영성가들은 조언한다.

생각하는 것 묵상하는 것 공부하는 것이 힘든 것처럼 기도 역시 영적 행위이기 때문에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깊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기도가 기쁨이라는 것을 발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기도의 자세는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께 흠숭을 드리고 감사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자기 만족을 추구하기 위해 바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만족시켜 드리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기도할 때 흔히 범하는 착오처럼 「내 뜻을 이루기 위해 하느님을 움직이려는 기도」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움직이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기도를 잘하기 위해서는 규칙적으로 봉헌하고 생활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