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신유박해 순교자들 (31) 김광옥 안드레아

김길수 교수(전 대구가톨릭대학 교수)
입력일 2001-10-28 수정일 2001-10-28 발행일 2001-10-28 제 2272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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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또는 임금명 어길 수 없고 나는 하느님 배반할 수 없어”
순교앞둔 동료 보자 “천국서 다시 만나세”
온 나라를 휩쓴 박해의 매섭고 차가운 칼날이 6월에 들어서는 잠시 멈칫하는 듯 하더니, 7월에 들면서 형조에서는 또다시 사형선고를 내렸다. 1801년 7월 13일(음력) 충청도의 김광옥 안드레아와 김정득, 전라도의 한정흠 스타니슬라오, 최여겸 마티아, 김천애 안드레아 등이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제 이들 가운데 김광옥에 대해 알아보자.

김광옥 안드레아(1741~1801년)는 내포지방 예산고을 여사울의 부유한 양가에서 태어났다. 그는 훌륭한 자질을 타고나서 마을에서 오랫동안 관직을 맡아 관아에서의 직책을 수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성미가 급하고 과격한 편이고 때때로 지나친 성질을 부려 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를 무서워하였다.

그러던 그는 50세가 될 무렵 한 동네에 살던 내포의 사도 이존창(李存昌)에게서 천주교 교리를 배워 신자가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가 미관말직이나마 관직에 있고 또 과격한 성질을 아는 터라 모두 놀라워하였는데, 그는 뜻밖에도 매우 열심한 신자의 본분을 지키며 교리를 따랐다. 사순시기에는 금식과 절제로 극기하며 사랑으로 가난한 이웃들을 도왔다. 그리고 갖가지 천주교의 덕행을 부지런히 배우고 실천하며 그 자신의 성질을 꺾고 타고난 훌륭한 자질을 따라 덕행을 수행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는 집안과 동네의 친구들 앞에서 드러나게 신앙생활을 실천하며 교리를 설명하고 친절하게 가르쳐 많은 사람들을 입교시켰다. 매일 아침과 저녁에 가족들과 함께 기도하며 모든 사람들에게 겸손되게 예의를 지키는 새로운 그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양처럼 순한 어린이 같다고 하며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그러던 중 신유박해가 일어났다. 그는 마을에서 너무나 잘 알려졌기에 즉시 공주의 무성산으로 피신했다. 그러나 밀고로 예산에서 나온 포졸에게 잡히게 되었다. 그 때 그는 포졸들에게 『내가 집에 앉아 기다린다는 것은 나로서는 매우 무모한 짓이었을 것이오. 왜냐하면 내가 약한데 내 힘을 믿는 것 같았을 터이니까 말이오. 그래서 몸을 피해 위험을 모면해야 했지만 내 마음 속으로는 순교하기를 가장 큰 소원으로 삼았소. 오늘 잡힌 것은 오직 하느님의 명으로 된 것이니 매우 기쁘오』하며 참으로 천상적 기쁨에 찬 모습을 흩트리지 않아 포졸들과 보는 사람들을 크게 감탄하게 하였다.

관장은 즉시 그를 심문하여 먼저 공범자들과 천주교 서적을 내놓으라고 명했다. 그러자 김광옥은 『저와 신앙을 함께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알려드리면 저와 같이 취급하실 것이니 결코 알려드릴 수가 없습니다. 천주교에 관한 책으로 말씀드리자면 너무나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진리를 알고자 하는 뜻이 없으신 사또께는 드릴 수가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사또는 몹시 화가 나서 고문을 더욱 심하게 하였고, 김광옥은 의식을 잃고 쓰러진 후에 큰칼에 씌워져 하옥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 심문들이 이어졌다.

매가 부수어지고, 치도곤으로 뼈가 어스러졌지만 그는 더욱 용감했다. 『사또 어떤 회유도 어떤 위협도 소용이 없습니다. 다시 더 말하지 마십시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지아비를 따르지 않습니다. 사또께서는 임금의 명을 어길 생각을 하시겠습니까? 저도 하느님의 명을 거역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저는 대군대부(大君大父)이신 하느님을 배반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사람의 은밀한 생각과 감정과 의향마저 살펴보고 계시는 하느님 앞에 마음 속으로라도 감히 죄를 지을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섬기는 사람에게 주시는 놀랍고 두려운 초인적인 능력과 보호를 우리는 이 태산같이 굳은 증거자에게서 본다. 고문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관장은 당황하고 기가 막혀 다시 물었다. 『아니 도대체 너는 죽는 것이 그렇게 좋으냐? 너는 아내와 자식도 있고 재산도 있다. 네가 한마디만 하면 돌아가 그것들을 모두 누릴 수 있을 터인데, 어째서 형벌 중에 쓰러지려고 고집하느냐?』

증거자는 대답했다. 『삶과 죽음이 저에게 어찌 소중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하느님을 배반하면서 그 어느것도 가질 뜻은 없습니다. 사람은 각기 처지가 다릅니다. 임금의 녹을 받는 사또께서는 그 분의 명을 따라야 하고, 저는 사또께서 그 명을 집행하시기를 기다릴 처지일 뿐입니다. 저는 매를 맞아 죽더라도 주님의 뜻을 거역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주님의 명을 따를 뿐입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저는 준비가 다 되어 있습니다』

김광옥 안드레아는 기쁨과 평화를 지닌 채 사형언도를 받았다. 그는 조정의 명에 따라 그의 출신 고을인 예산읍에서 처형되게 되었다. 그가 그의 사형집행지인 예산으로 가는 길에서, 역시 사형언도를 받고 대흥고을로 가는 김대춘을 만났다. 순교의 길을 함께 가던 그들은 자신들의 형장으로 정해진 예산과 대흥의 갈림길에서 헤어져야 했다. 『교우여! 내일 정오에 우리 천국에서 다시 만나세!』 그들의 사형이 집행될 날 정오에 천국에서 다시 만날 약속을 하며 그렇게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이들의 감동적인 약속은 주님께서만이 완성시켜 이루어지게 해주실 수 있다. 1801년 7월 17일 주님께서는 과연 그렇게 해 주셨다.

김길수 교수(전 대구가톨릭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