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한국순교자 103위 시성 25주년 기획-이 땅에 빛을] (7) 오직 하느님의 배필, 동정녀들

오혜민 기자
입력일 2009-03-24 수정일 2009-03-24 발행일 2009-03-29 제 2641호 11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오직 주님만 섬기기 위함입니다”
이영희…혼담 피해 호랑이에 물려간 것처럼 꾸며
이영덕…혼인 강요받자 어머니·동생과 함께 가출
김효임·효주…덕행·극기로 혹독한 형벌 견뎌
김루치아…심문 중 논리적 대답으로 형관 감동시켜
자수하기 전까지 실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했던 이영희 성인(탁희성 작).
부친이 강제로 혼인시키려하자 혈서를 써 동정의 뜻을 구하려 한 이영덕 성인(탁희성 작).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13군데나 지져대는 혹형을 받은 성 김효임·성 김효주 동정자매(탁희성 작).
‘동정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리에 대한 특별한 이해가 필요하다. 당시 ‘동정’을 지켰던 순교자들을 보면 얼마나 많은 교리지식을 통해 그러한 신념을 가질 수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신념을 지키기 위한 ‘동정’의 극기가 당시로서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우리는 순교자 중에서도 동정순교자를 따로 분류하기도 한다. 순명한 그리스도를 본받아 동정 생활을 지키고자 했던 여인들, 그들은 오직 ‘하느님의 배필’이다.

유교가 깊게 뿌리 내렸던 조선 사회에서 처녀가 혼인을 하지 않고 신념을 지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이었다. 혼기가 차오면 부모는 다른 가문의 자손과 혼담을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그것 또한 거절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 천주교 103위 성인 중 동정녀들은 어떻게 자신의 신념을 지킬 수 있었을까.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한 시점 또한 그들이 10살도 채 되지 않은 때였다. 동정을 지키기 위한 그들의 사연은 지금도 눈물겹기만 하다.

▧ 동정 지키기 위한 사연들

동정을 지키기 위한 사연은 여러 가지다.

▲동정 순교자 이영희는 성장하면서 동정을 지킬 것을 결심한다. 혼기에 이르자 이영희 집안 역시 혼담이 오갔는데, 혼담을 피해 그는 호랑이에게 물려간 것처럼 꾸미고 상경한다.

과부가 돼 친정에 돌아온 고모 이매임과 함께 살며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1839년 김성임, 김 루치아, 어머니, 언니와 함께 자수한 뒤 포청과 형조에서 일곱 번 형문을 받고 7월 20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31세의 나이로 순교한다.

▲자신의 강한 신념을 부모에게 당당히 밝힌 사례도 있다. 동정 순교자 이영덕은 외교인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 혼기에 이르자 아버지에게 외교인과 혼인할 것을 강요받게 된다.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한 그는 꾀병을 앓기도 하고 여러 가지 수를 써 혼담을 피했는데 후에는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써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완고한 아버지의 고집을 꺾을 수 없어 범 라우렌시오 주교에게 가출할 수 있도록 청원한다.

그러나 주교가 허락하지 않았으므로 어머니, 동생과 함께 집을 나와 교우들의 집에서 숨어 살았다. 당시 조선 풍습으로 가출한 부녀자는 집으로 절대 돌아갈 수 없었으므로 주교는 세 모녀가 살 수 있도록 집 한 채를 마련해 주었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체포돼 12월 29일 6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28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아 순교했다.

▲어린 순조의 유혹을 용기와 덕으로 물리쳐 그 명성이 세간에 널리 퍼졌던 동정궁녀도 있다. 어려서부터 뛰어난 미모와 재주 때문에 궁녀로 뽑혀 궁궐에 들어간 동정 순교자 박희순은 이후에도 동정을 지키다 병을 핑계로 궁궐을 나왔다.

당시 궁녀의 신분으로는 신앙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후 조카의 집에 살다 기해박해 때 체포됐다. 다리가 부러지고 골수가 흐르는 만신창이의 몸으로 교우들에게 권면의 편지를 써 보냈던 그는 5월 24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39세의 나이로 순교한다.

▧ 동정녀이기에 받았던 수모

▲동정 자매로 잘 알려진 김효임·김효주 순교자는 동정녀이기에 갖은 수모를 당해야만 했다. 어려서부터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하고는 덕행과 극기로써 모범적 신앙생활을 했던 그들은 기해박해 때 체포돼 매우 혹독한 형벌을 받았다.

자매는 포청에서 이른바 학춤이라는 혹형과 달군 쇠붙이로 열세 군데나 지져대는 혹형을 받았고, 옷 벗긴 채 남자 죄수 방에 넣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갑자기 자매의 몸에 신비스러운 힘이 생겼고 남자 죄수들은 자매를 감히 범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후 서소문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는다.

이외에도 ▲22세의 꽃다운 나이로 순교한 이인덕, ▲김대건 신부의 집에 하녀로 들어가 일했던 김임이, ▲교리에 대한 심문 중 기막힌 비유와 논리정연한 대답으로 형관을 감동시킨 김 루치아, ▲혼담을 피해 서울로 가서 5, 6년을 지냈던 조 막달레나 등도 모두 동정 순교자들이다.

또 “내 영혼을 이미 하느님께 맡긴 지 오래니 더 이상 묻지 마십시오. 오직 죽을 뿐입니다”하며 배교를 거부한 원귀임, 동정 순교자로 잘 알려진 정약종의 딸 정정혜 모두 당시 ‘여성’으로서 교우들에게 도움을 주고 끝까지 신념을 잃지 않았던 순교자들이었다.

이외에도 이광헌과 권희의 딸 이 아가타는 17살의 어린 나이로 순교했으며, ‘어린 것이 요물’이라 할 정도로 혹독한 형벌에도 배교하지 않았던 이 바르바라 또한 15살의 나이에 순교했다.

◆ 동정성이란?

영육으로 신성하기 위한 것

구약에서 하느님은 어떤 특수한 목적으로 한 인간을 선택할 때 스스로가 짝이 되겠다고 선언한다. 또한 요한계 문헌은 ‘모든 선택된 자들이 천상 예루살렘에서 동정자라고 불린다’고 밝히고 있다.

신약에서 동정의 참 의미를 보여준 사람은 세례자 요한과 성모 마리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다. 코린토 전서 7장은 동정 생활의 의미에 관해 언급하는 유일한 장이다. ‘오직 주님만을 섬기기’ 위해서 동정 생활을 권하는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야기되던 ‘정결’을 ‘동정’으로 표현하게 한다. ‘정결’이야말로 미혼자나 기혼자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덕이기 때문이다.

육체적 동정보다 마음의 순결, 깨끗한 사랑을 마음에 간직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결혼 생활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닌, 동정의 목적은 ‘영육으로 신성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오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