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안성 미리내는 200년 교우촌의 역사를 지닌 마을이다. 미리내가 은하수의 순 우리말이기에 아름다운 이름에 걸맞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즉 날이 어두워져 가난한 교우촌 신자들이 호롱불을 켜면 그 불빛이 마을 가운데를 흐르는 개울물에 비쳐 은하수와 같았다거나, 또는 공중에서 바라볼 때 밤하늘 은하수처럼 별들이 반짝이는 것 같아 미리내라고 했다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산으로 둘러싸이고 호수를 품은 청정한 마을 이미지와 그 안에서 오직 하느님만을 갈구하며 살아가는 신앙 깊은 사람들의 삶이 별빛처럼 빛난다는 이야기는 우리 마을의 은근한 자부심이다.
우리 마을에는 하루 세 번 종소리가 울린다. 아침 6시, 정오, 저녁 6시에 각각 울리는 이 세 번의 종소리는 마을 동쪽 쌍령산 중턱에 자리한 ‘오로지복지법인’에서 나오는 소리다. 오로지복지법인은 교구가 운영하는 사회복지기관이다. 따라서 하루 세 번의 종치기는 오랜 천주교 전통에 따른 것이다. 산골짜기이므로 그 소리는 메아리 되어 크고 길게 마을을 휘돈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미리내본당 성요셉성당의 종탑에서 울리는 종소리가 미리내 골짜기에 울려 퍼졌었다.
국내 도심에서 하루 세 번 종소리를 듣는 경험이란 생소하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슬람국가를 여행할 때 듣게 되는 하루 다섯 차례 예배 알림 ‘아잔’과 같다. 다양한 종교를 수용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특정 종교의 성무 행위가 소리로 울려 퍼지는 것은 용납되지 않을 것이고 가능하지도 않다. 그래서 우리 미리내 마을의 종소리는 더욱 독특하고 상징적이다.
미리내 마을은 200년 전통의 오래된 교우촌이고, 주민의 대부분이 천주교인이므로 이러한 종소리는 익숙한 소리이고 일상적 문화이다. 종소리를 듣는 우리 마을의 천주교인들은 그 종소리에 맞춰 하루 세 차례 삼종기도를 드린다. 오래된 교우촌 신앙의 전통을 이어받은 나이든 교우들의 자연스러운 신앙생활 방식이다.
1820년대 중후반에 형성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미리내 교우촌이 곧 200년을 맞게 된다. 천주교 교우촌은 전국에 산재하고 그 깊고 아름다운 신앙의 역사는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으나, 현실적으로 미리내 마을처럼 그 뚜렷한 천주교 문화적 전통의 명맥을 이어가는 교우촌 마을은 거의 없다. 더욱이 하루 세 번의 성당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그 종소리에 맞춰 삼종기도를 드리는 신자들의 마을 이야기를 다른 곳에서는 들어 본 적이 없다. 교구 차원에서 기억하고 지켜 전승하며 기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 내 귀에 그 종소리는 그처럼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