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공산치하의 베트남 교회 - 신앙 따위는 불살라 버려라] 구엔 신부의 폭로기 3

입력일 2020-03-16 수정일 2020-03-16 발행일 1977-12-04 제 1083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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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성직 수도자·신자들 투옥
주 함께 계신다는 믿음 갖고 각자 할 일 찾아 
그러나 신심 약한 자는 적화 후 곧 신앙 포기
공산주의자들이 남부「베트남」을 너무나 빨리 갑작스럽게 점령함으로써 신자들은 일반 국민과 마찬가지로 초기에는 불안에 쌓였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모든 신자들은 특히 지방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압력, 개인에 대한 보복, 종교 탄압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던 것입니다. 야만적이며 인간의 자유를 존중할 줄 모르는 공산주의 제도에 참지 못하는 불굴의 정신력을 가진 수많은 국민들과 함께 몇몇 신부 및 수도자들과 신자들은 공산주의에 항거하다 투옥되었으며, 이들과 관련이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조사를 받고 공산주의자들로부터 감시를 받아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순식간에 모든 사람들은 곧 공산주의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대항하는 것은「마치 계란을 돌에다 찍는 것」과 다름이 없는 어리석고 위험한 짓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신자들은 공산주의자들의 가톨릭교에 대한 정책 방향을 면밀히 분석하여 모욕을 참아가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교회가 일어서고 또 교회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 천주교 신자인 개개인과 단체가 규합해서 하느님 나라의 문을 더욱더 넓게 열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우리들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마음속으로 우리들의 나라는 이 세상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 깊이 믿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어려움을 참아가면서 잠시 동안의 이 세상의 행복을 이룩하는 일에 일반 국민들과 어깨를 나란히 겨누어가면서 생활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하느님에게로 향하는 길에서 낙오되지 않고 이 세상 사람들을 구제하여야 한다는 사명을 잊지 않고 있으므로 우리들 신자들은 공산 간부들의 방해와 위협들을 이겨내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찾아내가면서 노력하여야 했습니다. 무신론의 붉은 무리들의 거센 파도 앞에 그 누구가 무서워 떨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베트남이 공산화된 지 채 몇 달도되기 전에 신앙심이 약한, 믿은 지 얼마 되지 않는 신자들은 천주교를 포기하였으며, 레지오마리에 단원들은 좌절감에 사로잡혀 자포자기 상태에 빠졌고 몇몇 신부들과 수도자들은 이와 같은 야만적인 무신론의 제도하에서의 종교생활을 위한 적합한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고 슬픔에만 잠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희들 천주교인들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음과 같이 깊이 생각했던 것입니다.『어떠한 역경을 만나든지 참고 견디면서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 설교하여야 한다』-.

우리들은 우리들 모두의 사명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으며 여러 사도들의 모범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아버지가 저희들을 사나운 이리떼들 속으로 가라고 명령하셨다』는 성경 구절을 기억하고 우리들은 더욱 더 신자들의 대열을 가다듬고『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 속 깊이 믿음으로써 날이 갈수록 모든 신자들은 새로운 전교활동 분야에서 자신이 해야 할 임무를 다 갖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공산주의 당국에 의해서 수많은 동포들이 농촌으로 혹은 산간지역으로 혹은 신경제개발지역으로 쫓겨남에 따라 그들과 함께 가톨릭 전사(戰社)들과 수도자들은 여장을 꾸려 가지고 이들의 발뒤꿈치를 따라 심심산중 독수(毒水) 지역이나 삭막한 시골에 가서 고행의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이곳에서 고생하고 있는 수많은 동포들은 신자들의 뜨거운 신앙에 깊이 감동되었으며 그들이 도시에서 보아온 바와 같이 천주교인은 지식인이나 혹은 부유층이라는 선입견이나 좋지 않은 감정들은 사라져 버리게 되었습니다. 비신자나 천주교 신자들은 똑같은 운명에서 같은 고통을 겪음으로써 하느님의 말씀과 하느님에 의지하는 새로운 생명력을 함께 나누고 눈물과 고통뿐인 산간벽지에서 하느님 말씀이 전파되게 되었던 것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