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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소록도의 추억

김영실(레지나·의정부교구 남양주 덕소본당)
입력일 2017-09-05 수정일 2017-09-05 발행일 2017-09-10 제 3061호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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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평일 미사 시간, 주임 신부님께서 어린 한센인과 소록도에 대하여 강론하셨습니다. 그 강론을 들으니 문득 옛날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 옛날 저의 대모님은 소록도병원에 의사로 계셨습니다. 그 인연으로 소록도를 몇 차례 다녀왔었답니다.

대모님이 계셨기에 저는 소록도에서 한센인들과 만남도 가질 수 있었죠. 어느 날 한센인병동에 회진을 가시면서 저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저는 호기심도 생기고 궁금하기도 해서 따라나섰습니다. 가서 직접 내 눈으로 본 환자들의 모습은 상상보다 더 심각했습니다. 코는 납작 내지는 문드러진 채 콧구멍만 뻥하니 뚫려 있고, 눈은 흰자위만 보이는 채 눈꺼풀이 깜박거리고, 치아는 뭉개져 차마 치아라 하기 어려웠습니다.

저는 무서웠습니다. 그러나 나의 대모님께서는 환자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며 말씀을 건네고 웃으시면서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나는 순간 우리 대모님은 사람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충격을 받았습니다. 문드러진 엉성한 손으로 대모님께 사탕을 건네주면서 잡수시라네요. 저도 두 알을 받았죠. 대모님께서 받으라 하시기에 받기는 받았지만 솔직히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나의 대모님은 그 자리에서 한 알을 까서 입에 넣고 우물거리셨습니다. 나는 너무 놀라서 대모님을 툭 치면서 “전염되면 어쩌시려고요”라고 말하고 말았답니다. 대모님은 웃으시면서 걱정 말라고만 하셨습니다. 순간 대모님의 얼굴이 정말 성모님처럼 보였습니다.

회진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대모님께 무섭지 않으시냐고 물었더니 다 같은 사람인데 무섭긴 뭐가 무섭냐고, 저분들이 외모는 문드러지고 볼품없지만 그 마음만은 천사들이라고 말씀하시며 예수님 마음을 그대로 닮은 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 어디에서 저런 천사들을 만날 수 있냐고 하시면서 소록도의 슬픈 역사와 저분들의 애환도 들려주셨죠.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에, 저는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답니다.

제가 본 것은 중증 환자변동의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상생활을 하신다는 분들도 대부분 장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농사를 짓는 분들도 손 없이 팔에다 호미를 동여매고 농사를 지으시고 그것을 이웃들과 나누고 계셨죠. 저의 대모님 댁에도 대녀인 제가 왔다고 감자를 한 바가지나 가져다주셔서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었습니다.

근 40여 년 전 소록도의 모습입니다. 들려드리는 이야기는 한 단면일 뿐, 저의 대모님은 평생 그분들을 많이 사랑하셨답니다.

헌신적인 봉사와 사랑…. 성모님을 닮으신 나의 대모님!

그렇게도 거룩하게 사셨으니 지금도 저 천국 하느님 옆에서 봉사를 하고 계시겠지요. 대모님의 삶이 그러시더니, 당신 아드님도 성직자의 길을 걸으시네요. 마산교구 배 주교님이 바로 그분의 아드님이십니다. 당신의 그 삶이 아드님 가시는 길에도 씨앗이 되었겠지요.

그리운 나의 대모님, 사랑합니다.

김영실(레지나·의정부교구 남양주 덕소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