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강복을 하고 다시 행렬을 시작하는데, 다시 성가대는 저 멀리 떨어지고 성가 소리는 희미해집니다. 대신 제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신자 그룹이 성가대와 상관없이 흥에 겨워 성가를 부릅니다. 결국 성가대와 신자들의 노랫소리가 ‘따로 국밥’이 됐습니다. 모든 것이 예상대로 흐르지 않자 성체를 모신 성광의 무게마저 더 크게 다가오며 제 마음을 더 힘들게 했습니다. 순간 짜증이 밀려오며 제 자신을 탓하기 시작했습니다. 더 준비를 잘하고 통제를 잘 했어야 했나, 공지가 부족했나 생각했습니다.
성체를 모시고 행렬을 하면서 이런 짜증과 화를 참지 못하는 제 자신의 모습이 더 힘들고 괴로웠습니다. 강복을 주면서 마음을 추스르고 마음을 편하게 먹었습니다. 질서에 대한 강박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신자들의 모습을 보니 모든 것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성가대의 노랫소리는 흐릿하지만 성체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노랫소리는 우렁찹니다. 강복을 줄 때 성호를 그으며 강복을 받는 이들이 모습이 사뭇 진지하고 경건합니다. 평상시 풀이 우거지고 물웅덩이도 있는 길인데 아이들이 미리 풀을 베고 길을 청소한 것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강복을 주려 멈추어서니 바닥에 마람(남수단 현지의 붉은 흙)과 재 그리고 흙을 이용해서 성작을 그려놓고, 예수 성심을 그려놓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강복이 이뤄지는 자리에 미리 멋진 그림으로 표시를 해 둔 것입니다. 저에게 아강그리알에서의 성체 행렬은 무질서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그 무질서 안에서 신자분들의 경건한 마음과 전례에 참여하는 열정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저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질서를 강조하며 변화시키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는 않을 것이고, 신자들의 마음을 폄하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번 성체 행렬을 통해, 무질서한 듯 하지만 그 안에서도 열정과 사랑으로 함께하는 신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이상권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