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채 술집으로 꾸미고 안채에선 신자들에게 교리 교육 1790년 최필공 통해 입교 후 수차례 체포 배교해 석방되고도 이내 신앙생활 재개 회장직 수행하다 밀고돼 새남터에서 참수
1801년 신유박해가 시작되자 복자는 ‘천주교의 우두머리’로 밀고됐다. 복자는 이 사실을 알고 경기도 양근으로 피신해 신앙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자신 대신 가족들이 체포됐다는 소식을 듣고는 자진해서 포도청을 찾아갔다.
복자는 갖은 형벌과 문초 속에서 마음이 약해지기도 했지만, 다시 잘못을 뉘우치고 신앙으로 시련을 극복했다. 복자는 사형 선고를 앞둔 최후 진술에서 “천주교 때문에 여러 번 체포된 후에도 나라의 금령을 무시하고 마음을 바꿀 줄 몰랐다”면서 “신자들과 같이 모여 교리를 공부했고, 널리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했다”고 증언했다. 복자는 42세의 나이로 1802년 1월 29일 새남터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복자의 신앙은 자녀들에게도 이어져 복자의 딸 손(막달레나)과 사위 장사광도 1839년 기해박해 때 양근 감옥에서 순교했다.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