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건물에 생명 불어넣은 예술품들
프랑스 파리의 시테섬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다리를 건너면 생미셀 대로(Boulevard Saint-Michel)가 나온다. 그 길을 따라 조금만 가면 작은 궁전처럼 보이는 건물을 볼 수 있다. 그곳이 ‘국립 중세 박물관’(Musée national du Moyen Âge)인데, 흔히 ‘퀼리니 박물관’(Musée de Cluny)이라 한다. 파리의 제5구역 안에 있는 이 박물관은 뛰어난 소장품으로 명성이 높다.
지금 박물관이 서있는 자리는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곳이다. 원래 이곳에는 3세기경에 만들어진 로마 시대의 화려한 공중목욕탕이 있었지만 바바리안(babarians) 침입으로 망가졌다. 또 그곳에서는 오래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주거지의 흔적도 볼 수 있다. 이곳에 사람들이 살 수 있었던 것은 식수원이었던 센(Seíne)강이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로마 시대의 목욕탕과 사람들이 살았던 유적지를 박물관 내·외부에서 볼 수 있다. 이 박물관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은 퀼리니 수도회와 깊은 연관이 있다. 1334년에 건립된 수도원 건물은 파리에 있던 퀼리니 수도원의 원장과 수사들이 머물던 곳이었다. 또한 학생들에게 종교 교육을 시키던 학교 역할도 했다. 그러나 초창기의 건물은 150여 년이 지난 후에 허물어졌다. 현재의 건물은 클레몽(Clermont)의 주교 자크 당부아즈(Jacques d‘Amboise)가 주교관으로 1485년부터 1500년에 건립했다. 이 건물은 당시에 유행하던 고딕과 르네상스의 복합 양식으로 재건축됐는데, 파리에 남아있는 중세 건축물로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 건물의 외벽에 붙어있는 팔각형 탑은 18세기까지 천문학자들의 천체 관측을 위해 사용됐다. 수도원이었던 이 건물은 시대가 흐르면서 소유주가 귀족과 왕족 등으로 여러 차례 바뀌었다. 그러던 중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프랑스 정부는 유서 깊은 이 건물을 매입해 1843년에 박물관으로 꾸며 일반인에게 공개했다. 퀼리니 박물관은 예술품의 전시 공간과 로마 시대의 목욕탕 유적지로 나눠진다. 이 박물관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그 안에 있는 유물의 가치는 매우 크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은 태피스트리(tapestry) 연작인 ‘귀부인과 일각수’(La Dame à la Licorne)이다. 일각수는 이마에 뿔이 하나 달린 전설 속의 동물로 유니콘(Unicorn)을 말한다. 여섯 장면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15세기 말에 벨기에 브뤼셀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중세 유럽의 예술 작품 가운데 높은 평가를 받는다.정웅모 신부 (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유물 담당)rn가톨릭대를 졸업하고 1987년 사제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