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주바 대주교님의 주례로 야외에서 집전된 미사에는 정말 많은 신자들이 모였습니다. 지역 공무원과 정치인들도 따로 마련된 자리를 가득 채웠습니다. 영성체 후 기도가 끝나자 정치인들이 차례로 제대에 올라와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그냥 인사말만 하고 내려가면 될 일인데, 정치인들마다 교황 대사님의 강론보다 두세 배는 더 길게 말을 늘어놓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듣기 거북했던 것은, 마이크를 잡는 사람들마다 하나같이 ‘딩카 사람이 주교가 되길 원하니 누구를 주교로 지명해주길 바란다’라는 말로 신자들을 선동하는 것이었습니다. 박수가 터져 나왔고, 미사 중임에도 불구하고 전당대회를 하는듯한 분위기가 이어지자 대주교님께서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제대 앞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자리는 대통령을 뽑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리고 주교는 대통령이 아닙니다. 정치적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님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주교가 된다는 것은 여기 보이는 십자가를 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기도하고 하느님의 응답을 기다리십시오.” 대주교님의 이 말씀에, 한층 들떠 있던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은 듯했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에게 왕을 뽑아 세워달라고 졸라대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마치 철없는 아이처럼 단순하게 생각하고 고집스럽게 행동하는 신자들을 부드러운 어조로 따끔하게 지적해주시는 대주교님의 모습을 보니, 역시 집안에 큰 어른이 계셔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는 2박3일의 모임을 마치고 각자의 선교지로 돌아왔습니다. 안타깝게도 교황 대사님, 그리고 대주교님과의 만남에서 내심 기대했었던 새로운 소식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룸벡교구의 사제들과 수도자들을 진심으로 염려하고 격려해주시는 두 분의 큰 어른에게서 모두가 어버이의 사랑을 느꼈고, 새로운 힘을 얻고 돌아왔습니다.이상협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