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동안 변한 것은 거의 없었다.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의 사람들은 과거의 미몽(迷夢)에 빠져 있거나, 미래를 향한 꿈을 꾸고 있지 못하는 듯하다.
모두가 함께 꿈꿀 때, 꿈은 현실이 된다. 톤즈는 꿈꾸고 있는지…. 이태석 신부가 세상을 떠난 지 6년, 그가 사랑하던 톤즈를 찾아갔다.
끊이지 않는 내전
1983년 시작된 유혈 분쟁은 190만명 이상의 희생자를 내고 2005년에 평화협정으로 끝났다. 하지만 2011년 남수단 독립 후에도 내전은 여전했다. 권력 다툼은 정치적 투쟁이라는 본질에서 벗어나, 아프리카에 흔하게 나타나듯, 종족간 갈등으로 비화됐다. 난민은 계속 양산됐고, 종족과 종교간의 증오와 폭력이 확대, 재생산됐다. 복수극은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 아래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오지인 톤즈, 그곳에서도 무의미한 싸움은 이어지고 있었다.
많은 경우, 소가 문제다. 소는 재산이다. 딸이 많으면 그것도 큰 재산이다. 소가 많은 남자는 결혼을 자꾸 한다. 25번 했다고, 27번 했다고 자랑하는 이들은 주일미사에 번듯한 차림새로 와서 그들만의 좌석에 앉지만 영성체는 하지 않는다.
가난한 부모는 소를 받고 딸을 판다. 딸의 ‘값’은 소 10마리부터 150마리까지 천차만별이다. 교육 받은 여자들은 소 값으로 팔리는 것을 못 견뎌해 자살도 빈번하다. 소 모는 아이는 노예와 같다. 소를 지키라고 그 작은 손에 총까지 쥐어준다. 거리는 더럽다. 어디든 쓰레기더미이다. 땅은 일궈지지 않고 버려져, 건기에는 황토가 날리고 우기에는 진탕이 된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굶주리고 병에 걸려 있다.
도무지 변할 조짐이 안 보인다. 그래서 ‘희망’이라는 단어는 톤즈에서 아무 울림이 없어 보인다. 이 척박하게 요지부동인 땅에서 대체 이태석 신부는 무슨 꿈을 꾸었을까? 슬픈 톤즈는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흔적들
이태석 신부의 흔적들은 쉽게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만 남아 있다. 새 진료소 옆 오래 된 진료소에 흐릿한 글씨로, 경당 제대 뒤에 직접 그린 가시관 쓰신 예수님으로, 돌기둥을 주워다가 세운 농구대로도 남았다. ‘남수단 마을학교 100개 짓기’ 프로젝트의 공민호 수사(지아코모 고미노·77·살레시오회)가 입고 있는 건빵 바지와 브라스밴드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대장암 치료차 귀국했다가 2010년 1월 세상을 떠난 이태석 신부의 죽음을 톤즈 아이들은 장례식 동영상으로 만났다. 20년이 넘게 수단에 머문 공 수사는 이렇게 말한다.
“톤즈 아이들은 원래 울음이 없습니다. 그런데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이 아이들이 우는 것을 처음 봤습니다.”
브라스밴드의 마스터격인 마구트(23)는 “그가 남긴 추억과 가르침을 잊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낡은 악기로 지금도 매일 연주를 한다”고 말했다. 7년 동안 이 신부와 함께 진료를 했던 미리암 수녀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나환자 마을들을 함께 방문했고, 그 와중에 밴드를 가르치는 등 많은 일들을 했다”고 기억했다.
그가 하던 일들은 사실 그 이전에도 선교사와 봉사자들이 하던 일들이고, 앞으로도 계속 될 일들이다. 하지만 톤즈에서, 선교사들은 많이 지친 듯하다. 도무지 나아질 기색이 안 보이기 때문이다.
희망은 있을까, 선교사들의 고뇌
톤즈는 희망이 있을까? 이태석 신부와 선교사들은 톤즈에서 무슨 꿈을 꾸는 것일까? 수난이 부활로 이어졌듯, 톤즈는 전쟁과 굶주림의 끝에 부활을 꿈꿀 수 있을까?
2명의 인도 출신, 1명의 케냐 출신 선교사들과 함께 살레시오회 톤즈 공동체에서 활동하는 이해동(라파엘) 신부는 톤즈를 ‘밑빠진 독’ 같다면서 “애를 쓰고 정성을 들여도 거둬들일 수확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친 듯 내어놓는 고백에서 선교사의 자세를 발견한다.
“아프리카에서는 노력에 비해 성과가 적거나 아예 없습니다. 투덜거리는건 제가 준비가 안된 선교사라는 고백입니다. ‘하느님, 당신께서 알아서 하시겠지요.’”
인간적인 꿈이나 희망은 접고 나머지는 하느님께 맡기지만, 힘든 하루를 지나면 숙소 앞에 주저앉아 말한다. “아무것도 없었을 때, 이태석 신부, 자네 정말 힘들었겠구만….”
홍부희 신부(한국살레시오회 관구 경리 겸 선교국장)는 “그저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고 말했다.
이해동 신부가 일구는 텃밭. 문익점처럼, 보온병에 숨겨 들여온 채소 씨앗들을 뿌렸다.
“처음에는 거의 전멸이었지요. 지금은 고추, 오이, 방울토마토도 자랍니다. 씨를 뿌리면 언젠가는 싹이 트고 결실이 있겠지요.”
인간적인 고뇌와 약한 모습은 하느님 자비와 섭리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교육이 시작하고 완성한다
주님께 대한 믿음. 선교사들은 믿음 속에서 부활을 꿈꾸며 희망을 간직한 이들이다. 이태석 신부는 그 많은 이들 중 한 사람이었다.
톤즈의 부활과 희망의 실마리는 하나뿐이다. 교육, 특히 젊은이들과 여성의 교육이다. 필요한 많은 일들이 있지만, 그 시작과 완성은 결국 교육이 할 것이다.
98%에 달하는 문맹을 깨고, 셈법을 가르치는 것만으로도 의식이 깨어나고 사회가 변화하기 시작한다. 남수단 인구 70% 이상이 25세 이하 젊은이, 결국 교육은 미래를 결정한다.
교회가 운영하는 초등학교에는 600명, 중고등학교에는 300여명의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다. 여학생 기숙사에는 60여명이 있다. 낡은 초등학교를 대신할 새 건물과 다목적 홀도 축복식을 가졌고, 열악한 기숙사도 새 부지에 세워진다.
느리지만 변화는 시작됐다
현실의 한계로 고뇌하는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과 젊은 선생님들은 희망과 열정이 가득하다.
돈보스코 라디오 방송국 책임자인 레오 신부는 톤즈의 변화는 느리지만 분명하게 오고 있다고 말한다.
“아직은 교육의 혜택이 일부에 주어질 뿐이지만, 이들이 자기 부족으로 돌아가 교육자로서 활동할 것이고, 그렇게 모든 사람과 마을 깊숙이 교육의 효과는 불처럼 번져갈 것입니다.”
‘남수단 마을학교 100개 짓기’는 교육의 힘에 기대는 야심찬 프로젝트였다. 밥촉(Bobcok), 카파라(Kapara) 등 외곽에 지어진 마을학교의 아이들은 교실 안에서, 나무 밑에서 불 켜진 눈으로 수업을 듣고 있었다. 교육을 받고 어른이 되어가는 청년들은 좀 더 고등교육을 원한다. 23살 동갑내기인 마구트와 볼은 각각 대학에 진학해 변호사와 의사를 꿈꾼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사가 된 마리오 마차(21)는 “이태석 신부뿐만 아니라 모든 선교사와 봉사자들이 톤즈에 꿈을 선물했다”며 “꿈이 현실이 되려면 많은 노력을 해야겠지만 분명히 우리는 꿈을 꾸고 있다”고 말했다.
꿈은 전염되는가? 아이들은 선교사들의 꿈을 꾸기 시작했고, 이제 톤즈는 아이들의 꿈을 꿀 것이다. 그 꿈은 십자가 위 예수가 꿈꾸던, 모든 이들의 영원한 생명과 부활의 꿈이다. 가난한 이들이 주리지 않고, 여성이 사람으로 대접받으며, 서로를 형제로 받아들이는, 그런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