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최대환 신부의 인물과 영성 이야기 (6) 알프레드 델프 신부 (하)

최대환 신부 (의정부교구 정발산본당 주임)
입력일 2016-02-02 수정일 2016-02-02 발행일 2016-02-07 제 2981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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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자유는 주님께 모든 것 맡길 때 얻게 돼
알프레드 델프 신부님이 사목했던 뮌헨 보겐하우젠 성혈 성당. 출처 위키미디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알프레드 델프 신부가 옥중에서 보낸 마지막 겨울에 남긴 감동적인 묵상글들은 모두 그가 오랫동안 삶과 사유를 통하여 고민한 주제인 ‘사람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모아집니다. 그는 자유 속에서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사람다움의 참뜻으로 보았으며, 그러한 자유를 얻고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는 길은 역설적으로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데에 있다는 것을 힘있게 주장합니다. 자유는 몰아적 헌신과 은총의 체험 속에서 그 본연의 모습이 드러나며,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은 타인과의,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느님과의 만남 속에서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느님을 경배할 줄 아는 휴머니즘’, ‘하느님의 섭리와 이끄심을 신뢰하는 휴머니즘(Theonomer Humanismus)’의 길을 사람들에게 일깨우고자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가 옥중에서 남긴, 깊은 영성적 직관과 신학적 사유를 담고 있는 ‘주님의 기도’에 대한 묵상은 그의 이러한 확신을 매우 인상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묵상은 나치의 패망 이후 그가 봉직하던 예수회 잡지 ‘시대의 소리’의 복간 첫 호(1946년 10월호)에 실리면서 비로소 처음 공개되었고, 그가 옥중에서 남긴 다른 글들과 함께 델프 신부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알린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의 ‘주님의 기도’ 묵상 중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 대목을 통해 그가 말하는 참된 사람됨의 길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아버지

“하느님을 아버지로서, 원천으로서, 이끄심으로서, 자비로움으로서 깨닫고 부르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인생의 모든 격랑과 시련 안에서 인간으로서 성장하게 하는 내적인 힘이다… 모든 시련과 출구 없는 막막함과 버려짐 속에서도 믿는 이들에게는 주님의 아버지다움, 자비로움, 역경을 이겨내게 하는 힘이 고요하지만 수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아무리 버림받았다 하더라도 그 사람에게로 가는 길을 내신다. 세상의 모든 다른 것들은 오직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새롭게 만나는 것에 도움이 될 때만이 그 가치를 지니게 된다.”

우리(의)

“… 그럼에도 예전부터 알던 말씀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람이 홀로 있음은 좋지 않다. 바로 이러한 (고난의) 시간에, 더욱! 인간은 그래서 다른 사람이 매달려 있는, 사다리의 다음 계단을 향해 외쳐보고자 시도하지만, 우리가 있는 곳은 우리의 목소리로 소리를 내기엔 너무 높은 곳이다. 인간의 말은 더 이상 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아버지! (이 기도의 말 속에서) 갑자기 그 단절이 극복된다. 하느님께로 가는길, 하느님을 통해 가는 길은 언제나, 그리고 이미 인간에게 가는 가장 가까운 길이라는 진리가 분명하고 투명하게 드러난다. 인간은 경배하고 믿고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하고 일치함으로써 비로소 자기 자신을 알게 된다. 사람들 모두의 중심인, 인격적으로 다가오시며 말씀을 거시는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비로소 서로에게 인간이게 하시며 공동체를 공동체이게 하신다.”

하늘에 계신

“오직 초월과 피안의 영역만이 인간으로 하여금 참된 처신과 창조력을 주는 세상과의 거리감, 진심 어린 경외심과 열려있는 순명을 가능하게 한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근본 구조를 이룬다. 오직 우리 자신을 넘어서는 곳을 향한 시선과 결심만이 우리가 우리 자신이 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지 못하기에 오늘날 사람들은 이처럼 대중과 대상으로만 취급되며, 삶에 있어 무력하고, 인간의 근본질서와 근본인식에 있어 그토록 무능한 것이다… 사람은 분명 개인적 자아를 통해 처음으로 자기 자신이 된다. 그러나 그 자아가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대화 없이 홀로만 있다면, 어느새 얼음같이 차갑고 죽음과도 같은 고립만이 남게 될 것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열고 실재에 다가가게 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인간의 본질에 속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절대자와의 대화이다.

단지 피안과 초월의 이상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인격적 하느님은 생명의 하느님이시다. 그분과의 대화를 통해 비로소 인간은 자신의 참된 살아있는 삶의 공간으로 들어서게 된다. 그 대화 속에서 인간은 경배, 경외심, 사랑, 신뢰라는 자신의 존재를 이루는 근본 가치들을 배우게 된다. 이러한 절대자와의 대화가 결여된 모든 열성과 진지함과 투신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결국은 비인간적인 것으로 남아있게 된다. 하느님을 경배하는 것은 인간이 자기 자신이 되는 길이다. 이러한 인격적인 하느님이 계시는 곳이 하늘이다. 그러기에 여기에서 인간은 자신의 삶의 가장 큰 행복과 충만함을 감지하게 된다. 이 하늘은 결코 일차적으로 어떤 공간이나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하늘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이시며, 하느님과의 만남을 뜻한다. 하느님을 체험하는 이는 하늘에 사는 이이다.”

하느님의 섭리와 이끄심에 마지막까지 자신을 맡기며

이처럼 주님과의 만남 속에서, 타인을 향한 헌신 속에서 자유와 생명력과 참된 인간다움이 있음을 감옥에서도, 처형 당하는 순간까지도 깨닫고 증언했던 알프레드 델프 신부의 깊은 영성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섭리와 이끄심에 대한 깊은 신뢰에서 자라났습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그가 사형판결을 받은 날 적은 그의 작별의 글에서도 느끼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그의 이 유언과도 같은 이 글을 읽으며 우리 역시 올 한해 우리의 삶 속에서, 참된 자유는 주님의 손길에 대한 의탁에서 시작된다는 진리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를 희망해 봅니다.

“이제 나는 아직 생명이 붙어있는 한, 그동안 이 묶여진 손으로 자주 해왔던 ‘축복’을 더 기꺼이 더 많이 마지막 순간까지 보낼 것입니다. 이처럼 위기와 고통을 겪는 이 나라와 이 민족에 축복을. 교회에 축복을. 부디 그 안에 다시금 순수하고 투명한 샘물이 흐르기를. 수도회에 축복을. 주어진 본연의 사명에 몰아적으로 투신함으로써 올곧고 의연하며 자유로이 본연의 자기 자신에 머물 수 있기를. 나를 믿어주었고 신뢰해 줬던 모든 이들에게 축복을. 내가 옳지 못하게 대했던 이들에게도 축복을. 나에게 그토록 자주, 또 과분하게 좋은 사람이었던 모든 이들에게 축복을…. 하느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지켜주시기를 빕니다… 나의 연로하신 부모님이 이 어려운 시기를 잘 넘기시도록 도와주시고, 여러 가지로 돌봐주세요. 모든 것은 주님이신 하느님의 자애로운 보호 안에 있겠지요. 아무튼 나는 이곳에서 주님이신 하느님의 섭리와 이끄심을 진실되이 기다리기를 소망합니다. 나는 그분이 데려가실 때까지 그분을 신뢰하렵니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이 운명이 결코 작고 보잘것없는 것이 아님을 발견하도록 힘껏 애쓸 것입니다.”

최대환 신부 (의정부교구 정발산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