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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특별기획] ‘가정사목과 복음화’ 7. 생명의 전달과 출산율 감소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15-05-04 수정일 2015-05-04 발행일 2015-05-10 제 2943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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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이유와 개인 편의로 만든 저출산의 늪
혼인, 가정과 관련해서 ‘생명에 대한 개방성’은 결코 양보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교회의 가르침이다. 생명의 출산에 대해서 열려 있는 자세는 ‘부부애의 내재적 요구’, 다시 말해서 부부 사랑이 근본적으로 담고 있는 요청이라는 것이다.

생명에 대한 무조건적 개방성

혼인과 가정에 대한 교리를 더욱 심화시키고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장엄하게 선언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회칙 「인간 생명」(Humanae Vitae)은 분명하게 “부부애와 생명의 출산이 긴밀한 관계에 있음”을 밝혔다.

지난해 열린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3차 임시총회 보고서는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과, 특별히 회칙 「인간 생명」이 강조한 이같은 선언을 재차 확인하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58항)

“이 영역에서도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생명에 대한 무조건적 개방의 아름다움과 진리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인간적 사랑을 충만하게 살기 위해서는 그 개방이 필요한 것입니다.”

보고서는 그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오늘날의 세태를 심각하게 우려한다.

“생명의 출산을 개인 또는 부부의 변경할 수 있는 계획으로 축소시키는 사고방식이 확산되는 것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 요인들이 때로는 결정적 영향을 미치며 출산율을 크게 감소시키고, 이는 사회 조직을 약화하고 세대 간의 관계를 위협하며 미래에 대한 전망을 불확실하게 만듭니다. 생명에 대한 개방성은 부부애의 내재적 요구입니다.”(57항)

받아들여지지 않는 가르침들

생명의 전달에 대한 교회의 분명한 가르침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한국교회의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임시총회 예비문서 설문에 답변한 문서에서도 가장 먼저, 교회의 가르침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엇나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도덕적 가치관 문제를 우려했다.

혼인의 단일성과 불가해소성, 자녀 출산, 생명과 성(性)에 대한 한국민들의 인식은 교회의 가르침, 전통적인 가치관과는 다르게 급속한 변화를 겪어왔다. 전통적 가치와 규범들이 상대화되고, 상황과 편리에 따라 선별적이고 편의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문제로 전락했다.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최종 보고서는 이 점을 염두에 두면서, 출산 문제까지도 ‘변경할 수 있는 계획으로 축소시키는 사고방식’을 우려한 것이다.

사회 경제적인 요인들과 변화된 사회 구조는 이러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고착시킨다.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한국 답변서는 신자들 조차 교회의 가르침을 거의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상황을 크게 우려하면서, 신자들이 교회의 가르침을 실천하는데 있어서 현실적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는, 자녀 출산과 양육의 비용 문제가 자녀 출산을 어렵게 만든다는 점이다. 실제로 많은 젊은이들이 취업난에 시달리는 가운데, 주택 마련, 자녀 교육비 등 안정적인 가정 경제를 꾸려나가기가 어려운 오늘날의 우리 사회 현실은 출산과 양육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둘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출산 조절을 위해 쉬운 방법을 선택한다는 점이다. 출산 조절에 있어서 인간 존엄과 생명 존중을 고려하기보다는 실제로 이행하기 쉬운 방법을 선택하며, 특히 외짝 교우의 경우에는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지적한다.

셋째는, 교회가 출산 조절의 윤리적이고 신앙적인 방법으로 가르치는 자연주기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실천 방법을 잘 몰라서 이에 접근하는 것을 어려워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한국 사회에서는, 2000년 이후 출산 장려 정책으로 전환하긴 했지만, 1960년대 이후 오랫동안 정부 주도의 강력한 산아 제한 정책을 펼치면서, 인공 피임을 적극 권장해왔다. 그 때문에 인공 피임 자체에 대한 도덕적 인식도 부족하고, 피임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나 문제 의식 없이 지내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은 가톨릭 신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발견된다. 2003년 서울대교구 시노드 본당 신자 토론 결과에서는 교회가 권장하는 자연주기법 자체가 현실성이 없으며, 낙태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인공 피임을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했다. 2004년 ‘생명과 가정에 관한 설문조사’나 가장 최근인 2013년 의정부교구 신자들의 ‘신앙의식과 신앙생활’ 조사에서도 교회의 ‘인공 피임 금지’는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가르침이고, 따라서 ‘인공 피임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무려 64.6%에 달했다.

출산율 감소, 사회 존립 위협

사회적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뿌리내린 산아제한 정책과 의식, 자녀 출산 기피 경향, 이를 더욱 악화시키는 만혼의 최근 경향, 경제 침체로 인한 출산과 양육의 부담 등 전방위적인 요인들로 인해 한국 사회는 이제 세계에서 으뜸가는 저출산국이 됐다. 저출산은 사회 구성원의 규모를 축소시킬 뿐만 아니라, 의학과 과학의 발달로 평균 수명이 늘고 고령층이 증가함에 따라서 사회 자체의 역량을 취약하게 만든다.

지난해 한국의 출산율은 겨우 1.19명,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국가 중 꼴찌다. 최근의 인구학적 연구 중에는 이런 식의 저출산 고령화가 지속될 경우 2750년에는 아예 한국 사회 자체가 사라진다는 종말론적인 예측도 있다. 줄어드는 인구에 정부가 2000년부터 위기감을 느끼고,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총 123조원을 쏟아부으며 실시했던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대책’도 아무런 효과를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결국 가정과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고려 없이는 사회 자체의 존속까지도 위협 받는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음을 우리는 분명히 배우고 있는 것이다.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최종 보고서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출산을 원치 않는 사고방식과 전세계적인 출산 정책으로 인한 인구 감소 역시, 세대들의 교체가 더 이상 보장되지 않는 상황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경제적인 빈곤과 미래에 대한 희망의 상실을 가져올 위험이 있습니다.”(10항)

생명의 전달, 출산과 양육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과 입장은 분명하다. 물론 교회는 신자들이 모두 겪고 있는 현실적인 어려움들에 대한 공감과 고려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월 필리핀 방문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오면서 비행기 안에서 한 기자 간담회는 흥미롭다. 교황은 “좋은 가톨릭 신자가 되기 위해서 토끼처럼 (출산을 많이)해야 할 필요는 없다”며 안전하고 책임있게 낳고 양육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출산하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황은 낙태나 인공 피임 외에 교회가 권고하는 출산 조절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며 편리함이 책임있는 출산과 양육의 선택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 참석한 강우일 주교(제주교구장)는 교회가 ‘자연법’에 입각해 잉태와 출산에 대해 가르치지만 현대인들은 이에 대한 이해가 극히 없는 현실을 지적했다. 강 주교는 따라서 “혼인과 성생활, 출산과 가족계획 등 생명과 관련한 가르침을 전할 때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새로운 언어와 논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윤리와 도덕에 관한 가르침 역시 현대인들의 언어와 사고에 적응해야 함을 지적했다.

역으로, 신자들은 단지 자신의 편의만으로 교회의 가르침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아서는 안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가 마련하는 다양한 교육의 기회들에 충실하게 참여함으로써 교회의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래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답변서는 “혼인의 의미와 가치, 생명의 존엄성과 고귀함, 성과 사랑, 자녀 출산, 부모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올바른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지속적인 교육과 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