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박물관 문화 순례]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 - 복자 윤봉문 사료

하신혜(마리아·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 학예사)
입력일 2015-04-14 수정일 2015-04-14 발행일 2015-04-19 제 2940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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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 믿음 변치 말자” 혈서로 맹세한 신앙
윤봉문 4대손 윤의도씨가 1978년경 기증
관헌 단속 피하려 교리서를 ‘소학’으로 위장
교리문답서 숨긴 붓 대롱과 십자가 등 눈길
복자 윤봉문이 거제도에서 교리를 가르칠 때 관헌의 눈을 속이기 위해 만든 교리서.
“부모처자 다 변해도 우리 천주 믿는 마음 변치 말자.” 박해시대를 살았던 복자 윤봉문(요셉, 1852~1888)이 피로 쓴 고백이다.

1784년 조선에 천주교가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박해가 시작돼 한 세기 가까이 계속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다른 곳으로 이주해 교우촌을 형성하거나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이렇게 형성되기 시작한 교우촌은 박해시기 내내 교회와 신앙을 지탱해 주는 바탕이자 요람이었다.

박해시대 교우촌은 곧 순교의 터전이요, 그 지역 교회 중심지였다. 그러나 신자들의 재물을 노린 사람들의 밀고와 약탈로 어려움을 겪어야만 하였다. 오직 주님을 향한 열정으로 진리의 길을 따른 교우들은 목숨을 바치면서 신앙을 고백하고 ‘순교자는 피의 증거자’로 ‘순교자의 피는 교우들의 씨앗’이 돼 한국 천주교회는 풍성한 열매를 맺으면서 성장했다.

복자 윤봉문은 ‘거제도의 복음 사도이며 첫 순교자’로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1852년 10월 16일(음) 부산 동래에서 윤사우(스타니슬라오)와 막달레나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병인박해의 여파가 동래에까지 미치자 1883년 박해를 피해 윤사우와 윤성우 형제 일가는 교리책만 가지고 낯선 거제도로 건너가 진목정(현 통영시 이운면)에 정착했다.

거제도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윤사우는 당시 필묵 장사를 했는데, 이때 그는 붓 대롱 속에 교리문답서를 감추고 다니면서 비밀리에 전교했다. 복자 윤봉문은 아버지를 이어 대바구니에 필묵과 함께 붓 대롱 속에 교리문답서를 숨겨 넣고 다녔다. 「약 처방문」은 복자 윤봉문이 휴대용으로 만든 약 처방전이다. 전교를 하면서 가난하고 병든 이웃들을 돕기 위해 병명에 따라 약 처방을 적어 놓은 것이다. 그리고 소학(小學)과 교리를 함께 적은 「위장교리서」(僞裝敎理書)는 복자 윤봉문이 천주교 교리를 가르칠 때 관헌의 눈을 속이기 위해 만들었다. 앞면에는 소학을, 뒷면에는 교리를 적어 교리를 가르치다가 수상한 인기척이 나면 소학을 펴서 공부하는 척 했다고 한다.

「위장교리서」는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에서 ‘하느님의 종 124위 시복’을 추진할 때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이 자료로 제출한 중요한 문헌이다. 복자 윤봉문은 경상도에서 사목하던 로베르 신부로부터 1886년에 거제도 초대 회장으로 임명됐다. 더욱 더 전교에 열정을 쏟아 1887년에 성인 15명이 천주교에 입교해 세례를 받는데 기여했다.

그러나 박해가 끝난 1888년 4월에 통영 포졸들이 개인적인 탐욕을 채우려고 같은 부락에 사는 주민의 밀고로 천주교 신자들을 체포했다. 복자 윤봉문은 모든 것을 각오하고 잡혀가기 전에 손가락을 물어 가족이 보는 앞에서 방 벽에다 “부모처자 다 변해도 우리 천주 믿는 마음 변치 말자”는 혈서를 써서 배교하지 않도록 당부했다. 포졸들은 다른 교우들을 모두 풀어주고 복자 윤봉문만 체포했다. 복자 윤봉문이 진주감영으로 가는 도중에 잘 걷지 못하자 발뒤꿈치에 구멍을 내 칡넝쿨로 묶어 끌고 갔다고 한다. 고 탁희성(비오) 화백이 그린 순교화에 이 모습이 묘사돼 있다.

박해를 피해 거제도에서 신앙의 맥을 이어온 부친 윤사우와 복자 윤봉문의 일괄 유물들은 ‘윤봉문 요셉 순교 90주년 기념 행사’(1978. 9. 24) 후 순교자현양에 힘쓰고 있던 한국순교복자수녀회의 창립자 윤병현 수녀에게 윤봉문의 4대손 윤의도(스타니슬라오)가 기증한 것이다.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에서는 1979년과 1987년 순교자성월에 ‘순교자 윤봉문 사료 특별전’을 두 차례 개최했다. 이제 하느님의 크신 섭리 안에서 오래 전에 생명을 바친 순교자가 피의 결실로 복자품에 오름으로써 더욱 중요한 교회문화유산이 됐다.

오늘 우리는 신앙 선조들의 혼이 담긴 다양한 자료에서 믿음의 길을 배우며 순교자의 후손으로서 ‘지금 여기에서’, ‘빛과 소금’이 돼 그 길을 이어가야 한다.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에서는 특별한 은총의 해였던 지난해 순교자 현양을 위해 ‘103위 시성 30주년과 124위 시복’ 기념으로 ‘우리 복자 우리 성인’ 특별전을 개최했고 ‘우리 복자 우리 성인’ 도록도 발간했다.

※ 문의 : 051-583-2923

전교하러 다닐 때 붓 장사로 위장하고, 붓 대롱 속에 교리문답서를 숨겨 넣어 다니던 대나무 상자.
휴대용으로 만든 약 처방전. 전교활동을 하면서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약 처방을 적어 놓은 것이다.
복자 윤봉문이 간직했던 십자가.

하신혜(마리아·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 학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