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신앙으로 현대 문화 읽기] 연극 ‘밤으로의 긴 여로’

유승원 신부(서울대교구 청소년국 문화사목부 차장)
입력일 2014-03-04 수정일 2014-03-04 발행일 2014-03-09 제 2885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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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져 가는 가정, ‘사랑’이 답이다
세수를 하다 가만히 거울을 들여다본다. 얼굴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코에서부터 그 아래를 채우고 있는 앙다문 입. 그리고 양 뺨과 턱에 자리한 거무스름한 수염자국과 그 언제인가 고양이인지 강아지인지 아무튼, 털 달린 동물의 발톱에 의해 생긴 생채기. 여전히 거울을 마주한 두 눈은 그 무엇인가를 찾고 있다. 가만히 보니 반반쯤 섞어 놓은 듯하다. 그 반은 아버지로부터, 또 나머지 반은 어머니로부터 왔다지만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그 어떤 것이 얼굴 위에 고스란히 남는다.

한 가족의 ‘지랄같이 우스운 인생’ 이야기를 담고 있는 ‘밤으로의 긴 여로’. 제목이 말해주듯, 밤을 향한 그들의 행보는 어둠의 심연에 묻혀 그 형체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어도 좋을 듯하다. 그래서 아프다. 그래서 더 깊숙이 찌르고 할퀴고 파고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아픔의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는 깊은 사랑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저것이 ‘지랄 맞은 인생’이라는 것의 벌거벗겨진 정체일런지 모르겠다. 아무려나, 모두들 도망치려고만 한다. 하지만 그들이 다시 돌아오는 곳은 같은 울타리 속의 뒤바뀐 자리일 뿐.

이 가족의 단편을 계속해서 들여다보는 것은 일종의 고문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어떤 문장들은 마음에 담기지 못한 채 하염없이 날아가 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하나하나의 모습을 따라 갈수록 마음 속 무늬는 더욱 선명해진다. 가시 돋힌 말로 덮여있어 희미하지만 그 마음 속 무늬는 분명 사랑이다. 아직 다 채워지지 않고 어느 만큼은 결핍되어 있는, 그래서 앞으로 채워야 할 빈 자리가 남아있는 미완의 그것.

그렇다. 아버지 티론, 어머니 메리와 큰 아들 제이미 그리고 둘째 에드먼드, 저들 모두는 일종의 결핍을 안고 있다. 그것은 일종의 장애와 같은 것으로 그려지는데, 온전히 채워져 있지 않기에 서로 기대고 보듬어야 할 이유는 더욱 분명해진다. 저 사실을 모두가 알고는 있지만 서로에게 내미는 호의로운 손길은 묘하게 엇나갈 뿐이다. 그리하여 서로를 향한 말은 서로를 베고 찌르고 상처 입힌다. 그 남겨진 상처를 다시 동여매고 행여 덧날까 약을 발라야 하는 것 또한 그들 외의 다른 이들이 아니다. 아니, 다른 이의 노력으로는 성난 상처에 결코 새 살이 돋아나지 않을 것이다. 묘하디 묘한 관계이다. 진짜 지랄같이 우스운 인생이다.

한 공동체가 온전히 유지되기 위해서는 각자 가지고 있는 사랑을 내어 놓아야 한다. 놓여있는 사랑만을 탐하여 저마다 얻으려고만 한다면 분명 그 사랑은 오래지 않아 고갈되고 말 뿐이다. 그리하여 서로 내어 놓아 비워진 곳에 하느님으로부터 거저 받은 사랑으로 채워 다시금 살아갈 힘을 얻어야 하는 이유이다.

가만히 들여다 본 얼굴에는 반반쯤 섞어 놓은 이상의 것이 남겨져 있다. 그것은 마치 티론과 제이미, 메리와 에드먼드가 어딘가 닮아 있지만 서로를 포개어 놓았을 때에 느껴지는 낯섬과 묘하게 일치한다. 이렇게 보니 알겠다. 저 얼굴에 남겨져 있는 유사함은 그간 받은 사랑의 자국이요, 여전히 채워지지 않은 채 남겨진 낯섬은 내놓아야 할 사랑이 아직 남은 탓이다.

그들에게 이제 필요한 것은 딱 하루만큼의 사랑뿐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남겨진 누군가는 내어 놓아야 할 딱 하루만 버틸 만큼의 사랑. 그 변변치 못하고 별 볼일 없는 사랑이 결국 모두를 살려 낼 것이다. 이것이 내 믿음이자 희망이다.

서울대교구 소속 사제로, 2004년 서품을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예술학협동과정 재학 중이다.

유승원 신부(서울대교구 청소년국 문화사목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