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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새 주교 탄생] 유경촌 주교 축하글 / 백운철 신부

백운철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성서신학 교수)
입력일 2013-12-31 수정일 2013-12-31 발행일 2014-01-05 제 2877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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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 소식 실천하는 참된 목자 되소서”
“내 아들 티모테오, 훌륭한 전투를 수행하십시오.”(1티모 1,18)

유경촌 티모테오 신부님의 주교 서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정말 오래된 미래처럼 우리들의 기대와 예상이 마침내 이루어졌네요. 신학생 시절부터 유 주교님을 가까이 지켜본 저에게는 주교님의 모습들이 파노라마처럼 뇌리를 스쳐갑니다. 1981년 대신학교에 입학하여 그해 5월 알마 축제의 핸섬 보이로 첫 선을 보이던 그때부터 주교님은 줄곧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지요. 103위 한국 순교복자들의 시성식을 집전하기 위해 1984년 5월에 한국에 오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서울 신학교를 방문하셨을 때에 주교님은 교황님의 식탁 보이로 이미 중앙 무대에 진출하신 것이었고요. 그리고 주교님이 신학과 4학년 때, 당시 부제반이었던 저는 신학생들의 쇄신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함께 토론했던 그 순수한 시절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주교님은 가난한 이들과 소외된 이들에게 관심이 많아서 당시 심상태 교수 신부님이 만드신 용문 희망의 집을 자주 찾아가 환우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고 함께 기도했지요.

주교님은 4학년을 마치고 독일로 유학을 가셨고, 저 또한 파리로 유학 가서 몇 년 만에 독일에서 뵈었을 때의 감회는 묵은 지의 깊은 맛이었답니다. 식을 줄 모르는 인기 때문에 자주 전화선을 뽑아놓고 사시던 주교님과 통화하기가 힘들었던 저로서는 주교님을 스토킹 하던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기억도 남아 있습니다.

주교님은 독일에서 1998년에 환경윤리를 주제로 윤리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시고 1999년에 사제품을 받으신 후 목5동본당에서 보좌 신부로 6개월을 지내셨지요. 가수가 되라는 권고를 받을 만큼 노래를 잘하시는 주교님은 창미사를 즐겨 하셨고, 6개월의 짧은 본당생활을 통하여 신자들에게 큰 사랑과 아쉬움을 남기신 채 서울 대신학교에 입성하셨습니다. 양업관에서 신학과 1~2학년 학생들과 함께 살면서 보여주었던 전설적인 이야기들은 그냥 넘어가기로 하겠습니다. 저는 주교님과 강학관에서 몇 년간 함께 살았던 시간을 잊을 수가 없답니다.

2005년 개교 150주년을 기념하는 150년사를 집필하기 위해 주교님은 안식년도 반납하시고 2년 반의 시간을 밤늦게까지 신학교 역사 편찬에 올인 하셨지요. 그렇게 헌신적으로 일하고 얼마 쉬지도 못한 채 2008년에는 통합사목연구소장으로 발탁되어 가셔서 많은 일을 하셨지요. 그중에서도 서울대교구 규정집을 편찬하신 것은 교구 행정을 한 단계 발전시킨 업적이었지요. 그리고 지난 9월에 명일동본당 주임 신부로 부임하여 사목자로서의 기쁨과 보람을 만끽하던 차에 이렇듯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서울대교구 보좌 주교님이 되신 것이지요.

제가 주교님을 강학관에서 떠나보낼 때 학생들에게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유경촌 신부님은 산소 같은 남자여서 옆에만 가면 시원한 바람이 분다”고. 아마도 많은 분들이 이 말에 공감할 것입니다. 나이 들어가는 현실을 다소는 거부하면서 영원한 청년이기를 자처했던 주교님이 교회의 어른이 되셨습니다. 신년 하례식 때 신학생들에게 세배를 받지 않으려고 성당 제단에 올라오지 않았던 주교님이 이제는 사람들에게 세배를 받으셔야 하는 지위가 되셨네요.

학생 때부터 입던 가죽 잠바를 여러 차례 수선하여 지금도 입으시고, 낡고 허약한 소형 승용차를 끝내 버리지 않으시며, 청소와 빨래는 직접 하시고 식사도 손수 해 드시려는 주교님은 여러 가지로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흡사한 점이 많으세요. 청빈과 부지런함 그리고 약자에 대한 배려와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과 참여 그리고 격식을 가리지 않는 소박한 성품이 서로 비슷하신 것 같네요.

재물(맘몬)과 쾌락이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하는 물질만능의 자본주의 세상에서 청년 같이 풋풋한 마음을 늘 간직하시고, 벌써 여러 차례 마라톤을 완주한 건각을 유지하셔서, 모든 이들에게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 전한 바를 실천하는 참된 목자 되시기를 합장으로 기도드리며 다시금 유 신부님의 주교 서임을 축하드립니다.

백운철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성서신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