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신앙의 해 · 창간 86주년 기획 - 현대 가톨릭 신학의 흐름] (33) 아시아신학의 흐름과 전망 ① 오늘날 지구적 생태위기에 대한 아시아신학적 성찰

박준양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의신학 교수)
입력일 2013-11-26 수정일 2013-11-26 발행일 2013-12-01 제 2872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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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앞선 이윤추구 우위 풍조가 주범
아시아 대륙서 더욱 광범위하게 진행
자연파괴는 가난한 이들 고통으로 연결
공감과 연대, 전인류적 회심 이뤄져야
오늘은 대림 제1주일이다. 이번 대림 시기는 아시아의 이웃 필리핀에 발생한 태풍으로 인해 사망하고 고통받는 사람들 소식을 들으며 깊은 애도와 연대의 마음으로 시작하게 된다. 그래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간절한 희망의 빛에 비추어,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환경 문제를 성찰해보고자 한다. 과거 지구를 파멸시키지 않을까 걱정하게 만들던 그 어떤 것보다 더 심각하게 지금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것은 바로 생태위기이기 때문이다. 우주와 세상은 하느님에 의해 아름답게 창조되었건만, 오늘 우리는 미래에 대한 어둡고 불확실한 전망 속에 살아간다. 과학기술은 계속 발전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우리는 지구의 위기에 관한 소식을 끊임없이 듣게 된다. 과연 이것이 진정한 발전인지, 아니면 파멸을 향한 겁 없는 질주인지를 이제는 의심하게 된다.

인간과 자연의 갈등과 대립

지구 온난화로 인해 인류의 미래 생존이 불투명하다는 경고를 자주 접하게 된다. 극지대와 고지대의 빙하가 빠른 속도로 계속 녹아 해수면이 상승함으로써 언젠가는 점차 땅들을 잠기게 할 것이라는 장기적 예견은 뒤로하더라도, 세계 곳곳에서 이미 많은 기상이변을 겪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시아 지역에서도 여러 자연재해들이 발생하고 있는데, 어떤 면에서 이들은 ‘비(非)자연적인’ 자연재해라 할 수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로 인해 마치 하나의 괴물처럼 커져 버린 슈퍼 태풍과 슈퍼 사이클론이 계속 출현할 것이라고 예보되기 때문이다. 최근 필리핀에 상륙한 것도 슈퍼 태풍 ‘하이옌’이었고, 그로 인해 많은 사상자와 이재민이 발생하였다. 이 역시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 온도의 상승으로 태풍의 강도가 매우 심하게 커진 경우란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방재 준비의 부족까지 겹쳐 그 피해가 극심해진 상태라고 한다.

그런데 오늘날 지구의 생태적 위기는 기후변화의 차원뿐 아니라 생물학적 차원에서도 발생한다. 극단적 이윤을 추구하는 생산구조가 효율성과 경제성의 논리만을 앞세워 본래 자연스럽게 자라나야 할 동물들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집단사육하자, 이를 견디어내지 못한 생명체의 세포 속에서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이루어진 결과로, 예전에는 없던 새로운 동물 관련 질병들이 계속 생겨나고, 마침내 이것이 인간에게까지 전염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어쩌면 이는 인간에게 무참히 수탈당한 자연의 복수인지도 모른다. 내일은 무슨 기후 재앙이, 또 어떤 신종 질병이 우리를 기다리는지 알 수 없다.

이렇듯 시대적 혼란과 인류의 파국에 대한 불안감이 교차되는 가운데,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이러한 위기가 찾아왔는가? 과연 무엇이 인간과 자연을 이토록 갈라놓고, 그 조화로운 공존의 관계를 상호 적대적인 갈등과 대립으로 바꾸어 놓았는가? 그것은 바로 인간의 탐욕과 교만이다. 과학기술의 힘을 맹신하며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생명보다 이윤추구를 더 우위에 놓는 물신사상과 황금만능주의가 그 주범인 것이다. 오늘날 인간 생명의 가치가 경시되고 있으며, 대자연의 경고 앞에서도 무분별한 개발을 추진하는 인간의 욕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특히 아시아 대륙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광범위하게 발생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재위 1978-2005)는 오늘날의 이러한 환경 문제에 대한 우려를 여러 차례 표명한 바 있다. 요한 바오로 2세가 거듭 강조하는 것은, 자연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서 기술적 차원과 경제적 추구만 강조될 때, 자연 파괴가 먼저 이루어지고 마침내 인간 파괴에까지 이르게 된다는 점이다. 이미 1979년의 첫 회칙 ‘인간의 구원자’에서 이렇게 말한다. “장기적이고 진정 인본주의적인 계획의 범위를 이탈한 기술공학의 통제 불가능한 발전이 인간의 자연환경을 흔히 위협하고, 인간과 자연의 상호관계에서 인간을 소외시키며,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이탈시키고 있다.”(15항) 그리고 1999년 교황 권고 ‘아시아 교회’에서도 이 시대의 생태위기에 대해 지적한다. “경제적, 기술적 발전에 대한 관심이 생태계의 균형에 대한 관심을 수반하지 않을 때, 우리의 땅은 심각한 환경 훼손과 그에 따르는 인간 훼손에 불가피하게 노출됩니다. 자연환경에 대한 노골적인 경시는, 지구와 그 잠재력을 단순히 즉흥적인 사용과 소비의 대상물로 여기는 한, 계속해서 이익을 위한 욕망으로 조작되고 그 욕망을 더욱더 노골적으로 만들 것입니다. 하느님의 창조물 전체에 대한 존중심을 복구함으로써 환경을 보호하는 것은 하느님을 창조주로 여기는 모든 사람과 그리스도인의 의무입니다.”(41항)

모든 피조물이 함께 탄식하며 겪는 진통

이러한 인류 공동의 문제에 대하여, 이미 과학기술적, 정치경제적, 그리고 사회문화적 차원의 여러 각성과 국제적 대응이 논의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모든 실제적 대책들의 필요성을 당연히 전제하면서,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문제에 대한 보다 깊고 근원적인 성찰을 하고자 한다. 그리스도교 신학적 차원에서 본다면, 마치 ‘부메랑 효과’와도 같은 인간과 자연 간의 상호 파괴 구조를 긍정적 방향으로 전환하기 위해 거시적 안목에서 진정 필요한 것은, 현재의 생태 위기로 인한 창조 세계의 아픔에 대한 우주적 공감과 세계적 연대, 그리고 전 인류적인 회심이다. 그리고 아시아 문화가 전통적으로 간직해온 공존과 상생(相生)의 공동체적 가치와 연대적 삶의 자세는 이 같은 신학적 성찰에 큰 도움을 줄 수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성령의 보편적 현존과 활동’이라는 전통적인 신학적 명제를 다시 생각해본다. 이는 하느님 사랑으로 인간에게 전달되며 온 세상에 충만한 하느님 영의 현존을 가리킨다(지혜 1,7 참조). 하느님의 영은 오늘 고통 속에 있는 모든 피조물과 함께 현존하고 계신다. 사도 바오로는 온 세상 피조물이 함께 겪는 고통에 대하여 말한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로마 8,22-23)

우리가 바오로 사도의 이 말씀을 가장 깊이 온몸으로 공감하게 되는 때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오늘의 시대이다. 지금 우리는 인류를 포함한 모든 피조물이, 즉 인간과 자연이 다 함께 상처받고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체험한다. 지구온난화와 이상기후로 인해 괴물처럼 커져 버린 슈퍼 태풍, 슈퍼 사이클론, 슈퍼 허리케인의 무서운 바람은 사실 제 본래의 모습을 잃고 비참하게 변해버린 대자연의 괴로운 신음 소리이며 깊은 탄식의 소리이다. 나아가, 우리는 이 ‘비자연적인’ 자연재해의 결과로 인해 가속적인 고통을 겪게 되는 가난한 사람들의 탄식 소리를 또 듣게 된다. 한편, 오늘날 우리를 덮치고 있는 동물 관련의 신종 질병들은, 곧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비틀어지고 뒤틀려진 자연 생명의 피 끓는 신음 소리이며 애타는 탄식의 소리이다. 우리는 이 결과로 인해 병들고 고통받는 가난한 사람들의 탄식 소리를 또 계속해서 듣게 된다. 이처럼 인간의 탐욕과 교만이라는 근본적 죄악은 자연과 인간을,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를 분열시켜 상호 적대적 관계로 만들어버렸으며, 이러한 갈등과 대립 속에 결국 인간과 자연 모두 피해자가 되어 상처 입고 깊이 탄식하며 진통을 겪는 슬픈 현실이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의 전 지구적 생태위기 앞에서, 아시아적 감각을 바탕으로 공동체적 책임의식을 느끼며 인류의 연대성 안에서 깊이 회심하고자 한다. 그래서 참으로 온 세상에 충만하신 하느님 영의 현존을 믿으며 모두가 함께 기도드려야 함을 역설한다. 성령께서는 고통 받는 우리와 함께 계시며 같이 아파하시는 하느님이심을 고백하면서, 우리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묵상하고자 한다. “성령께서는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로마 8,26) 성령께서는 오늘의 전 지구적 생태위기와 환경 문제를 자동적으로 혹은 기계적으로 해결해주시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분은 진통을 겪으며 탄식하는 우리를 위해, 그리고 우리를 대신해서 깊이 탄식해 주시는 하느님이시다.

이제 우리는 온 누리에 충만한 하느님의 숨결인 성령께서 그 신비로운 작용을 통해 그리스도의 현존을 우리에게 체험케 해주시며, 지금 깨어져 금가고 비틀어져 버린 우리 모두의 모습을 참으로 새롭게 해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이제는 인간과 자연이 상호 파괴적인 적대관계에서 벗어나, 창조주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태초의 조화로운 상생 관계, 즉 ‘깨어짐 없는 충만한 평화’(shalom)를 다시 찾을 수 있도록 온 인류가 함께 노력하며 회심의 기도를 바쳐야 할 때이다. 하느님의 숨결을 통해 이 땅의 일그러진 얼굴을 새롭게 해주십사 우리는 간절히 기도한다.

“당신의 얼굴을 감추시면 그들은 소스라치고 당신께서 그들의 숨을 거두시면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갑니다. 당신의 숨을 내보내시면 그들은 창조되고 당신께서는 땅의 얼굴을 새롭게 하십니다.”(시편 104,29-30)

박준양 신부는 1992년 사제로 서품, 로마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교의신학 전공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신학과 사상학회 편집위원장 및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위원, FABC 신학위원회 전문신학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효율성과 경제성을 앞세운 극단적 이윤추구는 끊임없는 지구의 생태적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사진은 11월 15일 필리핀을 강타한 초대형 태풍 하이옌에 의해 천장이 파괴된 성당 앞에 서 있는 한 사제의 모습.

박준양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의신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