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명의 조합원들이 허름한 창고에서 시작한 영국 ‘로치데일 공정 개척자 조합’의 성공 소식은 순식간에 전 유럽으로 퍼져나기에 충분했습니다. 산업혁명이 전 세계로 파급되면서 그만큼 비슷한 아픔과 고민 속에 놓여있던 이들이 많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국을 방문해 로치데일의 성공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유럽 각국의 선구자들은 자신들이 처한 여건에 맞춰 협동조합을 발전시켜나가게 됩니다. 상대적으로 농업이 발달한 프랑스에서는 농촌지역 농민이 주도한 생산협동조합 형태로 협동조합운동이 시작됩니다. 독일도 가축을 공동으로 구입하기로 한 농민들이 ‘프람멜스펠트 빈농구제조합’을 설립하면서 협동조합이 빛을 보게 됩니다.
이처럼 국가별로 자생해 성장하던 협동조합은 1884년 영국과 프랑스의 협동조합 운동가들이 국제적 협동조합 교류를 제안하면서 전 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은 현재 96개국 267개 회원 단체가 가입하고 회원 수만 10억 명에 달하는 유엔 산하 최대 비정부 기구로 성장했습니다.
협동조합의 왕국 ‘스위스’
스위스에는 유럽에서 두 번째,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큰 협동조합인 ‘미그로’(MIGROS)가 있어 스위스 다운 협동조합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스위스 사람들의 협동조합 사랑은 유별납니다. 스위스에서는 어딜 가나 우리나라만큼 대형소매점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만 스위스의 대형소매점들은 우리나라처럼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가 아니라 협동조합 매장이라는 점이 다릅니다.
스위스 최대 소매유통기업인 ‘미그로’와 유통업계 2위인 ‘코프’가 보유하고 있는 조합원 수는 인구의 70%가 넘는 500만 명, 식품시장 소비점유율은 40%가 넘습니다. 700만 명 인구 중 500만 명이 협동조합 조합원이다 보니 스위스 사람들은 장을 보러 갈 때 “미그로(코프) 간다”는 말이 자연스럽습니다.
미그로는 스위스 곳곳에 600개 매장, 직원 8만3000여 명을 두고, 2010년 기준으로 32조원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코프도 직원 5만3000명, 2010년 매출 29조원을 기록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미그로는 스위스 전역에 있지만 중앙집권적이라기보다는 지역협동조합을 지향합니다. 지역본부가 자체 결정 권한을 갖고, 여러 위원회를 두어 공동으로 의사 결정을 합니다. 지역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1년에 1억 프랑(약 1286억 원) 이상을 교육과 문화에 투자합니다. 그 중 하나가 ‘미그로클럽 스쿨’입니다.
지역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교육기관으로 1년에 45만 명이 이용한다고 합니다. 좀 더 저렴하게 교육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수강료 일부를 미그로에서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미그로는 이렇듯 협동조합 정신을 바탕으로 유통업계 1위 자리를 유지해오고 있지만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해외시장 진출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오래도록 경제제일주의적 관점에 젖어 살아온 이들에게는 이상하게까지 보일 일이지만 이윤 추구보다 조합원의 복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협동조합 정신이 뿌리내리고 있는 스위스에서는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집니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를 조사하면 늘 수위권에 꼽히는 스위스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의 바탕에 깔린 그리스도교의 나눔 정신을 늘 일상에서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나눔과 사랑이 일상이 된 사회이기에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