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 쉼터] 안양엠마우스 선데이 아카데미

오혜민 기자
입력일 2012-07-24 수정일 2012-07-24 발행일 2012-07-29 제 2806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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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가정 어린이들에 꿈·희망 전하고 싶어요”
대학생·회사원 등이 자원봉사자로 활동
바이올린·미술 등 다양한 프로그램 개설
주일 오후, 베드로는 자기 덩치보다 큰 바이올린을 등에 메고 수원교구 안양 엠마우스(안양시 만안구 안양4동, 이하 엠마우스)를 찾는다. 수녀님이 집에서도 연습하라고 빌려주신 소중한 바이올린이다. 수녀님은 3년만 열심히 연습하면 이 바이올린을 베드로에게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베드로는 주일마다 바이올린을 메고 엠마우스로 간다. 무더운 여름, 바이올린과 씨름하며 엠마우스에 도착하면 옷은 어느새 땀으로 흠뻑 젖는다. 그래도 베드로는 행복하다. 꿈이 있기 때문이다.

■ 선데이 아카데미의 하루

엠마우스가 위치한 가톨릭복지회관의 주일 풍경은 부산하다. 각각의 개성을 자랑하는 다문화가정과 이주노동자가정의 아이들이 교실을 채우고, 그 안에서 자유로운 프로그램들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다문화아이들의 학교이자 놀이터, 엠마우스 ‘선데이 아카데미’는 지난 5월부터 이러한 목적을 갖고 시작됐다. 엠마우스 사무국장 이경애(젬마) 수녀가 말했다.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방과 후 교실처럼 생겨난 것이 선데이 아카데미예요. 한국어수업을 받는 이주민 엄마들이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이곳에 데려오는데, 그 아이들을 돌봐주면서 그들에게도 다채로운 교육을 시켜주기 위해 마련된 곳이랍니다.”

엠마우스를 도와 인근 안양예술고등학교(교장 최은희), (주)코오롱글로텍(대표이사 최석순)도 힘을 보탰다. 아이들에게 예체능교육을 지원하고 재능기부 문화를 확산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손가락을 건 것이다. 코오롱글로텍의 재정적 지원 아래, 선데이 아카데미는 기존 봉사자들과 안양예술고등학교 학생들의 자원봉사로 이뤄지고 있다.

오후 1시부터 시작되는 수업시간은 한글반으로 불리는 유아반과 1~2학년, 3학년, 4~6학년으로 나뉜다. 먼저 학교수업을 보충할 수 있는 국어, 영어, 수학 강의가 2시간 동안 이어진다. 교사는 대학생, 회사원, 군인, 학원·학교선생님 등 다양한 직업군이 속한 순수 자원봉사자들이다.

간식시간 후 오후 3시20분부터 4시40분까지 아이들이 기다리는 예능반 수업이 이뤄진다. 바이올린, 통기타, 문예창작, 미술, 무용, 참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이다. 평소 예능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 이 예능 프로그램은 엠마우스가 마련한 선물이나 다름없다. 코오롱글로텍의 협조로 아이들이 연주할 악기도 구비했고, 체육 관련도구와 유니폼 등도 마련했다. 엄마들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예능수업을 할 수 있어 기쁘다. 베트남에서 온 여옥수(36)씨가 말했다.

“미술반에 8살과 10살 아이를 보내고 있어요. 집에서 가르쳐주면 아이들이 배우려고 하지 않는데 여기에 오면 선생님들이 잘 가르쳐주셔서 많이 배워요. 한국어 실력도 많이 늘었어요. 수녀님께 아이들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었는데, 마침 선데이 아카데미가 생겨서 기쁩니다. 항상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안양예고 학생 봉사자가 다문화가정 아동에게 기타를 가르쳐주고 있다.
어린아이와 필리핀 성가대. 필리핀 성가대가 힘찬 합창으로 활기찬 미사를 돕는다.
미술반.
바이올린반.
유아반.

■ 아이들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워요

안양예술고등학교 유병현(가브리엘ㆍ19)ㆍ유다인(에리카ㆍ19) 학생은 ‘아이들을 가르치며 아이들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운다’고 말한다. 문예창작을 가르치고 있는 이들은 대입을 준비해야하는 고3임에도 불구하고, 매주 아이들을 만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긴다.

“봉사활동도 하나의 공부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배운 지식을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재능기부를 하면서 스스로 공부하는 거죠. 다문화가정과 이주노동자들의 자녀들이지만 저희에게는 옆집 꼬마와 같은 느낌이에요. 오히려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배워요.”

안양예술고등학교 학생들 가운데 2명은 선데이 아카데미에서 봉사하며 그동안 여러 핑계로 쌓아왔던 냉담을 풀고 다시 성당에 나가기도 했다. 맑은 눈망울을 가진 아이들을 통해 봉사자들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동심으로 마음을 치유했다. 바이올린을 배우는 김문선(11) 학생이 말했다.

“바이올린을 배우면 어깨가 아프지만 재미있어요. 11월에는 공연도 해요. 선생님들이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으니까 좋아요. 엠마우스 선데이 아카데미는 재미있어요.”

이경애 수녀는 “아이들이 어른이 돼 추억을 돌이켜볼 때 좋은 이웃이 있었고 자신들에게 관심을 보냈던 어른들이 있었음을 기억해주길 바란다”며 “가난한 모습으로 오시는 예수님처럼 그를 닮은 사람들을 따뜻하게 끌어안고 환영하는 교회의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

각 교실에서 고즈넉이 울려 퍼지던 바이올린과 기타줄을 퉁기며 내던 통기타 연주소리가 멎었다. 아이들의 수다만큼 쉼 없이 노래했던 악기들은 이제 아이들의 등에 업혀 집으로 가며 엠마우스와 다음 주에 만날 것을 기약한다. 엄마의 손을 잡고 일부 아이들은 집으로, 또 다른 아이들은 영어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강당으로 뛰어갔다.

엠마우스 전담 김종용 신부(수원교구 이주사목위원회 부위원장)가 주례하는 영어미사 시간이 이어진다. 선데이 아카데미에서 교사와 학생, 학부모, 신부, 수녀로 맡은 바 일을 담당했던 이들은 다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한데 모였다. 필리핀 성가대가 힘찬 합창으로 활기찬 미사를 돕는다.

모두가 참례하는 미사, 이민자의 기도를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아이들도 엄마와 아빠를 따라 고사리 같은 두 손을 곱게 모았다. 예수가 약속했듯, 이들이 바치는 이민자의 기도는 머지않아 꼭 이뤄질 것이다.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뤄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19-20)

오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