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차동엽 신부의 새시대 교회가 나아갈 길 (10) 종합을 대신하여

차동엽 신부(인천교구 사목연구소 소장)
입력일 2011-11-09 수정일 2011-11-09 발행일 2002-02-10 제 2286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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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깨우는 교회가 되어야
지금까지 우리는 21세기 초입이라는 시대 상황을 전제로 하여 한국천주교회가 나아갈 길을 가늠해 봤다. 풀어놓은 말이 수두룩하다. 짚어보면 못한 말이 많다. 이제 그동안의 논의를 추슬러 정리를 해보자.

이렇게 저렇게 참 많은 것을 얘기했다. 바닥부터 다시, 뉴 리더십, 인간성 구현을 지향하는 복음화, 토털서비스, 생명운동, 대안영성, 전신자 은사계발, 여성 입지의 현실화 등 여덟 가지 갈래로 교회가 갈 길을 제시하면서 낯설은 용어와 내용으로 점철하다시피 하였다. 다루어진 분야도 다양하거니와 접근경로가 방만하여 독자들께서는 이쯤에서 뷔페 요리를 잔뜩 먹고 난 다음의 포만감으로 숨이 가쁠지도 모를 터이다.

그러고 보니 조금밖에 얘기하지 못했다. 먼저 문제영역의 사태와 정황을 간략하게 설명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생경한 개념들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일일이 소상하게 풀어주지 못했다. 다음으로 교회가 가야할 길이나 대안제시의 부분에서 큰 윤곽만 그렸을 뿐 지면의 제한으로 인하여 좀 더 구체적인 언급을 할 수가 없었다. 이 아쉬움을 메우는 것은 그동안 관심 있게 읽어주신 독자 제현의 몫이겠다.

여덟 가지 제안은 한국 천주교회 전체를 대상으로 하여 제시된 것이므로 개별 교회의 사정과 특성에 따라서 각 교회는 고유의 입장에서 실감나는 정도를 따라 우선순위를 두어 그 중 몇 가지만을 집중적으로 구현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흔히 쓰는 표현을 빌어서 그동안 제안된 내용을 우리는 「비전」이라고 이름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비전은 아직 한 개인의 안목이나 전망에 지나지 않는다. 이 비전이 교회 공동체에게 새로운 활력과 영감을 주기 위해서는 「공유비전」이 될 필요가 있다. 어떤 비전이 되었건 그 것이 「공유비전」이 되려면 사람들에게 공개되고 확산의 과정을 밟으면서 대중의 공감대라는 시금석을 통하여 검증되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이렇게 봤을 때 그동안의 제안은 어떤 형태이든 새로운 「공유비전」의 생성을 위한 하나의 작은 계기로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된다. 이 글을 접한 독자들의 반향(反響)이 파장(波長)을 이뤄 교회 내에서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종합을 대신하여 논하거니와 공유비전 창출을 위한 가장 적합한 과정은 시노드이다. 왜냐하면 시노드는 교구민 각자의 비전, 즉 민의를 합리적으로 수렴하는 과정을 밟기 때문이다. 시노드하면 교구 시노드를 연상하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는 시노드를 접근법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꼭 교구차원이 아니라도, 본당 또는 하위 단위 차원에서도 공동의 목표 설정을 위해서는 이러한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떤 비전이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공유비전이 되면 그 비전은 이미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은 것과 다름이 없다.

공유비전이 형성되고 나면 그 다음에 바로 따라와야 하는 것이 「구조의 변경」곧 「조직의 쇄신」이다. 비전만 바뀌고 구조의 변경이 뒤따르지 못한다면 기존의 구조가 타성과 관성에 뒤엉켜서 변화의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전에 상응하여 구조의 일관되고 통일성 있는 쇄신이 요청되는 것이다.

교회 구조의 쇄신은 종래의 교계제도를 배척하거나 거부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사회를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교회 공동체 자체의 구조를 먼저 개선하여 그리스도화 하는 일』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평신도 그리스도인」34항 참조). 이 말에서 우리는 지금의 교회공동체가 새롭게 변혁되어야 한다는 교황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종교적 조직은 속성상 「목표지향」(goal orientation)에서 시작하여 「업무지향」(task orientation)으로 변질되고 끝에 가서는 「통제지향」(control orientation)으로 전락하고 만다고 한다. 목표 곧 비전을 성취하는데 필요해서 생겨난 제도와 조직이 시간이 흐르면 본해의 목표에서 눈을 놓치고 「얼」이 빠진 업무에만 골몰하게 되고 , 더 시간이 흐르면 그 업무마저도 소홀히 여겨서 경직되고 고착된 조직으로 변질되어 억지 권위로써 관리와 통제를 일삼게 될 위험에 빠진다는 것이다.

요컨대, 참신한 비전을 얻기 위해서, 그리고 교회 구조가 경색되어 비전 성취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경계하기 위해서는 늘 「새벽을 깨우는」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전통」속에 묻혀 있는 보물, 「지역」속에서 움튼 이름 없는 이들의 기대, 「시대」속에서 소리치고 있는 하느님의 음성을 귀하게 여길 줄 안다면 교회는 21세기 시류(時流) 속에서 불리운 바 존재방식과 사명에 충실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새시대 교회가 나아갈 길을 집필해주신 차동엽 신부님과 큰 관심과 성원 보내주신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차동엽 신부(인천교구 사목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