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취재 현장속으로] 미리내 천주성삼 성직 수도회 운영 부자(父子)공동체 ‘사베리오의 집’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11-07-27 수정일 2011-07-27 발행일 2011-07-31 제 2757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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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립으로 가족·이웃 기쁘게 합니다”
사회서 받은 상처 극복하려는 아버지-아들 보금자리
수도자들의 각별한 애정·신앙 안에서 희망 되찾아가
김용점 원장 수사가 입주자 아버지들에게 건물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사베리오의 집’(원장 김용점 수사)은 우리나라 최초의 ‘부자(父子) 가정공동체’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그룹 홈(Group Home)’ 형태로 생활한다. 3년 전 개신교회 장로에 의해 설립된 부자 공동체가 약 30가정 모여 생활하고 있지만 가정공동체가 아닌 보호시설로 운영되고 있다. 가정공동체인 사베리오의 집은 외관상으로는 여느 가정과 차이가 없다.

지난 20일 김용점 원장 수사의 안내로 사베리오의 집을 찾았다. 인천시 남구 주안동 주택가에 위치한 연립주택이라 초행길에 찾기가 쉽지 않았다. 김 수사가 사베리오의 집 앞에 미리 나와 기다리고 있었지만 평상복 차림이고 서로 얼굴을 알지 못해 그냥 지나친 후 다시 돌아오고 나서야 인사를 나눴다. “수도복을 입고 있을 걸 그랬나요?” 김 수사가 말했지만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 시간에는 일이 많아 편안한 차림을 하고 있을 때가 많다고 전했다. 사베리오의 집은 깔끔한 5층 빌라였다. 연면적 655.8㎡(약 198평) 규모다. 1층을 제외하고 층별로 평균 130㎡ 정도 되는 공간이다.

김 수사는 사베리오의 집 탄생 배경에 대해 먼저 설명하며 “전국에 모자 가정 시설이 수백군데인 점을 생각하면 부자 가정공동체가 한 곳도 없었다는 것은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말했다. 부자 가정공동체에 대한 구상은 인천시에서 시작됐다. 인천시는 예산을 확보하고 시설을 운영할 기관을 찾았지만 선뜻 나서는 데가 없었다. 남성에 대한 편견 때문이었다. 부자 가정은 이혼 후 아버지가 자식과 함께 사는 형태다 보니 ‘다루기가 힘들다’, ‘남자라 거칠다’, ‘사고가 나기 쉽다’ 등 선입견의 높은 벽에 부닥치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미리내 천주성삼 성직 수도회가 지난해 12월 31일 인천시 남구청으로부터 사회복지시설로 인가를 받았다. 인천교구장 최기산 주교 주례로 축복식이 열린 것은 지난 5월 20일로 사베리오의 집은 개원한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았다. 김 수사는 “이제 막 시작해서 홍보자료 하나 제대로 만들어 놓지 못 했다”고 말했다.

‘사베리오의 집’ 원훈. 노동, 자립, 삶의 기쁨을 가르친다.
‘사베리오’라는 명칭은 천주성삼 성직 수도회를 창설한 고 정행만(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의 수도명에서 따왔다. ‘노동과 자립은 가족과 이웃을 기쁘게 한다’는 설립자 신부의 가르침이 사베리오의 집을 설립한 기초이기도 하다. 사베리오의 집 한쪽 벽에 걸려 있는 액자에는 반듯한 글자체로 ‘타인에게 믿음을 주는 내가 되자’, ‘항상 모든 일에 감사하자’라는 원훈이 적혀 있다. 노동과 자립과 기쁨의 가르침을 녹여낸 듯했다.

김 수사는 “이곳 공동체 구성원들은 사회에서 겪은 실패와 상처로 타인에 대해서는 물론 자신에 대해서도 신뢰를 잃은 채 살아 왔기에 ‘신뢰 회복’을 원훈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다보면 타인에게 인정받게 되고 요구하지 않아도 물질적·정신적 후원을 얻게 돼 자립에 이르게 된다는 것도 원훈의 한 축이다.

오전 이른 시간에도 사베리오의 집은 매우 조용했다. 김 수사와 생활복지사, 생활지도사는 천주성삼 성직 수도회 수사이며 같은 수도회 김선명 신부도 상주한다. 이들에게 사베리오의 집은 소임지인 동시에 수도회이기도 하다. 실제 김 수사의 안내로 사베리오의 집을 둘러보다 더 이상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 있었다. 수도원 봉쇄구역이었다. 성(聖)과 속(俗) 두 영역에 한 발씩 디디고 서 있는 이들처럼 느껴졌다.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김 신부 역시 보통의 젊은이와 다를 바 없는 캐주얼 차림이어서 사제라는 소개를 듣기 전에는 행정업무를 보는 직원으로 보였다.

사베리오의 집에서 일하는 수사와 사제의 일상은 기본적으로 수도원과 큰 차이가 없다. 오전 5시 기상, 5시10분 성무일도, 6시~6시30분 묵상, 6시30분 미사로 하루를 시작한다. 고시원보다 약간 큰 방이 성당이다. 너무나 작은 성당이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미사가 있다.

하루에 네 차례 기도를 드리는 것도 원칙으로 지킨다. 시작기도, 낮기도, 저녁기도, 끝기도다. 오후 6시에 업무가 마감되면 성무일도를 바치고 7시까지 끝기도를 마치면 저녁 식사를 한다. 취침시간은 밤 10시다.

하지만 수도원과 다른 점은 평일에는 시작기도와 낮기도, 저녁기도와 끝기도를 묶어서 하루에 두 번 기도시간을 갖는다는 점이다. 업무를 쉬는 주일에는 네 번 모두 기도를 드리는 것은 물론이다. “사회복지 분야가 서류작성이 워낙 많고 법령도 다양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업무 시간에는 일이 많아 두 번의 기도를 한 번에 드린다”는 것이 김 수사의 설명이다. 하루하루 밀려드는 업무와 시시때때로 걸려오는 전화로 분주한 일상을 보내지만 수사와 신부는 매일은 아니더라도 나눔을 갖고 한 달에 한 번은 피정을 한다. 사베리오의 집 안 봉쇄구역이 피정 장소도 겸한다.

국내 최초의 부자 가정공동체에 사는 이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 수사는 정확한 신원을 얘기하는 것은 어렵다고 했다. 정원은 10가정으로 현재 4가정이 입주해 있다. 지역이나 종교 제한 없이 전국의 지자체와 종교단체 공지를 통해 입소심사와 상담을 거쳐 선발됐다. 지금도 입소상담이 진행 중인 가정도 있다.

아버지의 연령대는 30대에서 60대까지 각 한 가정씩이고 직업은 퀵서비스, 택배기사, 택시운전사, 화물차 기사 등 주로 운수 쪽이다. 수입은 전부 월 100만 원 미만이다. 아들과 딸을 데리고 사는 아버지도 있다.

자녀들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5살 꼬마에서 초등학생, 중고등학생까지 모두 미성년자다. 자녀 중에는 사회부적응이 심해 김 수사가 각별히 챙기는 아이도 있다. 김 수사는 잠겨 있는 문을 열어 가정의 모습을 공개했다. 아버지들은 일하러 나가고 자녀들도 어린이집과 학교에 가 있어서 집은 비어 있었다. 한 아버지만이 지난 밤 늦은 근무로 잠이 들어 있었다. 살림이 다소 단출하다 뿐이지 일반 가정집과 큰 차이가 없었다.

김 수사에게 “감독하기가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분들은 내가 상상하지도 못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수사지 그분들은 수사가 아니죠. 그분들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사랑이겠죠. 하느님의 뜻이 있다면 그분들이 우리 모습을 보고 신앙도 받아들일 것입니다.”

사베리오의 집에서 언제 김 수사가 기쁨을 느낄까도 궁금했다. “기쁜 일은 아직 없습니다.”

김 수사는 이전에 정신지체장애인 시설에서 일했던 4년7개월의 시간을 회고했다. “가고 싶지 않았지만 장상의 명령에 순명하는 정신으로 일단은 갔다가 못하겠다 말하고 나올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4년7개월이나 일을 하게 됐죠. 일을 하면서는 참 힘들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때가 행복했고 매력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마 사베리오의 집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베리오의 집’에 거주하는 아버지와 아들이 과일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박지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