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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백주준비 어디까지 왔나] 5. 사목회의 1

이윤자 차장
입력일 2011-06-30 수정일 2011-06-30 발행일 1984-02-12 제 1392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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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주교회사상 첫시도
「민족 복음화」달성이 목적
2백주년기념 최대의 사업 
2차「바티깐」공의회 가르침 새롭게 정립
81년 9월 12개 의제 확정
제2차「바티깐」공의회의 기본정신가운데 「쇄신」과「참여」는 그 줄기를 이루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교회 스스로는 굳게 닫힌 문을 열어 자신을 개방, 변화하고자 하며 참여와 대화의 자세로 현대세계를 향해 그손을 펼쳤기 때문이었다.

한국 천주교회 사상 처음으로 실시하는 사목회의는 바로 제2차「바티깐」공의회 정신에 충실한다는 기본적 자세 아래 이 땅의 복음화, 즉 「선교」를 핵심적인 과제로 놓고 있다. 다시 말해「바티깐」공의회 이후 교회가 쇄신의 모습으로 인류의 구원을 위해 더 많이 봉사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춘 것 처럼 한국천주교회 2백주년을 기해 준비되고 있는 사목회의도 교회의 쇄신을 바탕으로 보다 큰 봉사의 정신을 갖추어 이 민족의 복음화를 이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2차「바티깐」공의회의 가르침을 한국적인 상황 속에서 새롭게 정립, 이 시대 이사회가 요구하는 교회로 그 모습을 쇄신하고자 하는 사목회의는 2백주년에 있어 결코 뒷편으로 쳐질만큼 한가로운 분야는 아닌 것으로 평가해 볼 수 있다.

한국천주교회 2백주년을 기념, 한국교회가 준비하고 있는 각종 기념행사 가운데 사목회의는 2백주년 준비 초반부터 거론돼 가장 강력한 뒷받침을 받으며 추진 진행되어 왔다.

80년 7월 18일 2백주년을 준비하는 첫 모임인 제1차 2백주년 전국 준비위원회가 한국공의회 개최를 5개 기념사업 안에 포함시키면서 싹튼 사목회의는 8월 25일 2백주년 기념 제1차 상임위원회가「한국공의회」를 2백주년 기념 최대 사업임을 재확인, 기념회의의 명칭·성격·방향·주제 등 일체의 기초준비 작업을 정하권 신부에게 위촉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이에 앞서 1차 전국준비위원회가 채택한 5개 기념 사항은 전국의 주교들에게 설문지를 통해 배부됐고 이를 종합한 결과 10명의 주교 가운데 9명이 공의회 개최의 필요성을 인정함으로써 사목회의는 2백주년의 확고한 기념사업으로 부각됐다.

그해 12월 기념회의를 준비하기 위한 준비작업으로 관계전문가를 초빙, 의견을 청취했고 해를 넘겨 81년 1월 2백주년 주교준비위는 기념회의의 성격을 사목적인 회의, 즉 전국사목회의로 규명하기에 이르렀다.

2월 기념회의 제1차 준비위원회는 전체 한국교회를 대상으로 2백주년 기념회의에서 다룰 의제선정을 의뢰키로 확정, 의제선정 협조공문을 전국 각수도회·신학교·교구단위 단체·기관 등에 발송했다. 이 과정을 거쳐 전국에서 수집된 안건은 28개 단체 3백13건이었다.

계속적이고 단계적인 준비회합을 통해 수집된 안건 중에서 의제를 검토하고 보완작업을 실시한 기념회의 준비위원회는 81년 9월 17일「한국교회의 참된 성숙에 이바지할 수 있는 회의가 되어야 한다」「한국민족의 고유한 문화유산을 계시의 빛으로 조명하여 교회토착화의 가능성을 모색한다」「3백년대의 민족복음화를 목표로 하여 한국사회 및 교회의 모든 현상을 분석 검토한다」는 입장을 바탕으로 12개의 의제(시안)를 확정했다.

12개의 종목의 의제는 10월 14일 추계주교회의에서 인준됐고 주교우원회는 12월 1일 (1)성직자=최창무 신부 (2)수도자=이한택 신부 (3)평신자=정의채 신부 (4)전례=최윤환 신부 (5)신심운동=이덕근 신부 (6)지역사목=박석희 신부 (7)교리교육=이상훈 신부 (8)가정사목=방영구 신부 (9)특수사목=이영수 신부 (10)교회운영=김몽은 신부 (11)선교=강우일 신부 (12)사회참여=함세웅 신부를 각 의제별 연구담당신부로 인선위촉했다.

82년 1월 7일 2백주년기념회의 의제담당자 제1차 간담회는 회의명칭을 「2백주년사목회의 의안준비위원회」로 개칭하고 이어 2차준비회의에서는 사목회의의 중요성을 감안. 12명의 의제연구담당자외에 한홍순 교수(외대)·김정회 교수(전남대)·황우경 수녀(복자수녀회)·배세영 신부(빠리외전)를 추가의제연구담당자로 위촉했으며 아울러 사목회의 의안담당수석위원으로 정의채 신부를 선임, 위촉했다.

이처럼 1년6개월 이상씩 다각적인 방법으로 진행되어온 사목회의 준비과정은 2백주년을 맞는 한국교회 안에서 사목회의가 얼마나 큰 비중과 중요한 몴을 차지하고 있는지 여실히 입증해 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2백주년 사목회의의 의의와 목적을 다시 한번 지적해 본다면 사목회의는 먼저 2백주년을 맞이하는 한국교회가 사상처음으로 하는님 백성 전체, 즉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다 같이 참여, 이 땅의 모든 이들에게 하느님의 나라를 도래케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풀이해 볼 수 있다.

또한 사목회의는 제2차「바티깐」공의회가 온 교회와 전 세계에 대해 쇄신된 모습으로 참여의 자세를 취했듯이 안으로는 성령으로 충만한 교희의 새로와진 모습을 지향하고 밖으로는 겨레에게 그리스도의 빛과 생명을 유감없이 전하여 가톨릭교회의 역사적인 사명을 완수하려는데 그 개최의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의제가 선정되고 의안준비가 시작되면서 수석위원의 대임을 맡은 정의채신부도 사목회의는 한국교회의 참된 성숙과 이 땅의 모든 이들이 그리스도의 진리의 빛 속에 인간다운 삶을 누리도록 이바지하고 아울러 민족복음화라는 원대한 목표를 위해 오늘의 현상을 분석 검토하고 미래지향적인 선교대책을 수립하고자 한다는 점을 특별히 지적했다.

이 같은 목적과 목표를 기본으로 의제선정의 원칙적인 기준도 모든 문제를 「내성」과「대화」의 원칙으로 대별하도록 했으며, 교회를 내성하되 그 구성원과 영성생활과 사목활동과 교회운영이라는 네 가지 분야로 세분하고 세상과의 대화는 선교와 사회참여라는 두 가지 분야로 세분하도록 했다.

83년2월 위원장 박정일주교를 중심으로 수석위원 정의채신부와 17명의 위원, 그리고 각계의 인사로 구성된 전분위원 1백여명은 12개의 의제별로 방대한 양의 의안시안을 마련해냈다. 1년전인 82년3월 의안준비를 위한 전체회의를 개최한 이후 1년여에 걸쳐 흘린 땀과 정성의 결정이었다.

그러나 의안준비위가 작성, 제시한 의안시안들이 2백주년 사목회의 중심내용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되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었다. 준비위가 제시한 의안시안들은 다음 단계로 이어질 각 교구사목회의, 그리고 전국 사목회의라는 단계적인 과정을 통해 이 민족 전체가 나가야할 바를 보다 분명히 제시해줄 수 있는 내용으로 충실히 보완보충해야 할 시안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이윤자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