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김수환 추기경 강론초 - “민족사에 빛과 누룩이 되자”

입력일 2011-05-09 수정일 2011-05-09 발행일 1981-10-25 제 1277호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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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선열정신 본받아 겨레 구원 위한 십자가 져야
국민적 단결ㆍ믿음과 사랑이 일치로 현실극복토록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오늘 조선교구설정 150주년을 맞이하여 이를 기념하는 信仰大會를 가지게 되었읍니다.

먼저 150년간 아니 전교 200년간 한없이 큰 은총을 베풀어 주신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드리며 아울러 이땅에 하느님 나라의 터전을 마련하고. 독립교구를 이룩한 蘇 주교님을 비롯한 목자들과 선조들의 위업을 기리며. 그 높은 뜻을 가슴 깊이 되새기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읍니다.

그때문에 우리는 단지 과거를 회상하고 그것을 추념하기 위해서만 이 자리에 온것은 아닙니다. 우리 겨레의 미래를 위해 구원과 평화의 역군이 되고자. 그리스도의 평화가 우리와 우리 겨레. 또한 온 누리와 함께 하심을 간절히 기도 드리고자 이 자리에 모였읍니다.

오늘날 우리 겨레가 처한 현실은 안팎으로 결코 밝다고는 할 수 없읍니다.

오늘의 국제정세는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매우 침울합니다. 평화보다는 전쟁의 위험이 매우 큽니다. 국내적으로는 조국분단의 영속화. 남북관계의 초긴장 상태가 우리의 장래를 매우 어둡게 하고 있읍니다. 여기에다가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등 모든 현실 역시 결코 밝지는 못합니다.

이 모든것을 감안할 때에 우리의 미래는 어디로 향해있는지 모를 만큼 불투명합니다.

우리는 모두 오늘과 같은 현실에서 이 나라가 참으로 번영하고 참으로 힘찬 전진을 하기위해서는 또한 남북관계에서도 優位에 서며 평화적 통일까지도 이룩하는 무엇보다도 국민적 단결. 믿음과 사랑의 일치가 요망됨을 절실히 느끼고 있읍니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로 都農과 貧富의 격차를 비롯하여. 계층과 계층사이에. 지역과 지역 사이에 違和感만을 심각히 드러내고 있읍니다. 인간관계가 크게는 社會全般에서부터 작게는 家庭에 이르기까지 자칫하면 믿음보다는 불신이. 협력보다는 다룸에 지배되기 쉽습니다.

현실이 이러할 때 우리는 문제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겠읍니다.

결국 문제는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 價値觀의 타락이 근본문제입니다. 金力과 權力의偶像化, 物神主義가 膨脹하고 있으며. 이런 가운데 인간존엄성이 유린되고 인간성이 상실되어감이 근본문제입니다.

인간의 인간다움은 결코 물질의 풍요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에겐 빵도 필요하지만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진리ㆍ정의ㆍ사랑과 자유 등 정신적 가치가 더욱 필요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진리의 말을 듣기 힘들고 정의의 구현을 보기 힘듭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그 본연의 자유를 박탈당하고. 금력과 권력의 노예로까지 전락해가고 있읍니다. 利己主義로 물든 인간은 사랑의 능력까지 잃어가고 있읍니다.

이것이 物質主義로 병든 국제사회 속에서 같은 병에 걸린 우리 사회와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이는 곧 우리들 자신의 현실이요. 또한 우리가 오늘 교구설정 150주년을 기리는 한국교회가 몸담고 있는 풍토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사회와 나라의 현실 속에서, 敎會史의 과거를 기릴 뿐 아니라 민족의 현재를 변혁시키는 누룩이 되고. 민족의 미래를 밝히는 빛이 되고자 합니다. 그것은 곧 초대교구장이셨던 蘇주교님을 비롯한 목자들과 우리의 순교선열들이 그 혹독한 박해와 시련 속에서도 목숨을 바치며 치켜들었던 그 믿음의 등불 그 희망과 사랑의 등불을 다시 밝히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등불을 밝힐 수 있읍니까? 우리는 과연 사회를 변혁시키는 누룩의 구실을 할 수 있읍니까? 오늘의 이 신앙대회가 이런 구실을 할 수 있읍니까?

오늘날 한국교회는 분명히 數的增加를 모든 면에서 이룩하고 있읍니다. 그런데 이 사회를 밝히는 빛과 이 사회를 변혁하는 누룩의 구실을 하고 있는지는 대단히 의심스럽습니다.

얼마 전 어떤 여성근로자가 저에게 이렇게 말했읍니다.

『추기경님, 한국교회는 지금 소금의 구실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방부제 구실을 하고 있읍니다』

방부제란 부패는 막되, 생명을 죽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말이 뜻하는 것은 교회는 그만큼 僞善的이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들이 사랑을 말하면서도 사랑하지 않고. 가난한자와 약한 자들 억눌린 자들을 외면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회 역시 다른 이익단체와 마찬가지로 자기팽창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이 사회 속에서 소금의 구실보다는 방부제의 구실을 하고 있다』이 말은 너무나 지나친 편견일지 모르겠읍니다. 그러나 저는 솔직히 이 말은 우리에게 깊은 반성을 촉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바로 이 같은 반성如何에 오늘날 우리가 民族史안에 누룩과 빛이 될 수 있는지. 또는 없는지 달려있다고 믿습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세상을 참으로 구원하고 밝히는 빛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실로 우리인간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주님의 자비의 징표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당신 자신까지도 아낌없이 바치시는 주님의 사랑의 증거입니다. 그 때문에 이는 모든 이의 마음을 위로하고 밝혀주는 빛입니다.

韓國敎會史上. 그 수많은 순교자들이 背敎한다는 말 한마디만 하면 살 수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고 끝까지 목숨 바쳐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그리스도의 이 십자가에 힘입어서였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이분들은 성령의 감도아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신비를 깊이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기서 멀지않은 저 새남터에서. 저 절두산에서. 그리고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우리의 순교선열들은 기쁘게 죽음을 맞이하였고 가난과 추위와 굶주림 등. 온갖 고통을 박해 속에서도 이겨낼 수 있었읍니다.

십자가는 참으로 세상을 밝히고 구원하는 빛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도 겨레의 구원을 위해서 이 역사의 한밤에 십자가를 질 수 있다면. 겨레의 오늘과 내일을 밝히고 구하는 빛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겨레의 역사를 변혁시키는 누룩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진정 이 땅에 그리스도의 평화가 이룩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그런데 누가 십자가를 질 수 있읍니까? 누가 진리를 위해. 정의를 위해. 그리고 겨레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질수 있읍니까?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그 사명의 본질에서 이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사랑을 지닌 자만이 질수 있읍니다. 그리스도께서 혼신으로 사셨던 그 사랑. 모든 인간에게 향한 그 사랑을 우리가 지닐 때 그중에서도 가난한 이, 약한 이 억눌린 사람 등 고통 중에 있는 모든 이들을 진정으로 위하고 그들의 고통에 동참하는 사랑을 지녔을 때. 비로소 우리는 이 십자가를 질 수 있읍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진정 이 사랑을 지녔읍니까?

우리는 과연 벗을 위하여 자기목숨을 바치는 그 사랑을 지녔읍니까? 우리는 어떻게 참으로 사랑할줄 아는 사람들이 될 수 있읍니까? 이는 진정한 믿음에서 입니다. 우리의 순교선열이 피 흘리고 목숨을 바치면서 증거 한 그 믿음을 우리가 참으로 깊이 살피어 우리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읍니다. 오늘 우리는 이 모임에서 이점을 가장본질적인 문제로 생각해 보아야 하겠읍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오늘 이모임을 信仰大會라고 합니다. 믿는 이들이 믿음에서 모인 믿음의 큰잔치라는 뜻이겠읍니다.

그런데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믿는다는 것입니까? 이 물음에 어떤이는 즉시 교리지식을 연상하실지 모르겠읍니다. 그러나 믿음은 교리 지식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살아계신 하느님이시요. 그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인간을. 우리 모두를 지극히 사랑하시며 심지어 이미 말씀드린 십자가에서 보았듯이 당신의 외아들까지 우리를 위해 희생의 제물로 삼으실 만큼 인간을 극진히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하느님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 것이 믿음이요, 이 사랑을 사는 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참으로 성령에 힘입어 이 사랑을 믿고 이 사랑을 사는 사람들이 된다면 우리도 하느님처럼 그리스도처럼 인간을 이렇게 모든 것 위에 가장 존귀하게 여기고 세상 무엇보다도 더 소중히 여긴다면. 또한 이웃을 위해 그중에서도 가난한 이웃을 위해 우리자신을 진정으로 몸 바친다면 우리는 정녕 단지 자기구원만을 도모하는 신자일 뿐 아니라 이 겨레 앞에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등불을 밝히는 교회. 세상의 빛이요 땅의 소금인 교회가 될 수 있을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드디어 우리의 순교선열들이 목숨 바쳐 개척한 이 겨레의 구원의 역사 이 겨레의 빠스카의 역사. 즉 復活과 解放의 역사를 이어받고 이 겨레를 약속된 땅에까지 계속 인도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바칩시다. 사랑을 위해서 평화를 위해서 우리자신을 그리스도와 함께 선열들과 함께 사랑의 제단. 십자가에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