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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와 있나? - 해외 교포 사목 시찰기] 5. 마지막 순방길 - 오지리

박정일 주교ㆍ제주교구장ㆍ한국 주교회의 해외교포 사목부담당
입력일 2011-04-18 수정일 2011-04-18 발행일 1979-06-17 제 1159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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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밤」으로 친목 도모
오지리 교포「빈」에 집중 거주
◇오지리

나는 독일순방을 11월 22일로 끝내고 23일에는 오지리로 향하였다. 오지리에는 교포 사목순시 외에도 다른 목적이 있었다. 그것은 인스부룩크에서 공부하고 있는 제주교구와 광주교구 신학생 2명에게 부제품을 주는 일이었다. 그들은 나의 옛 제자였기에 나에게는 큰 만족감을 주는 일이 기도했다. 23일 저녁은 인스부룩크 신학교에 유하면서 그곳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국 신부 4명과 신학생 8명을 만나 환담하였다.

서품식은「브레겐쯔」라는 스위스와 인접한 한소도시의 성 콜롬바노 성당에서 거행되었다. 그 성당의 주임신부는 전교지방 후원으로 널리 알려진 열심한 신부님이다. 얼마나 많은 전교지방의 주교님과 신부님들이 이 본당을 다녀갔고 도움을 받았는지 모른다. 25일 (토요일) 저녁에 서품식이 거행되었는데 성당 안은 그야말로 일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만원이었다. 서품식이 끝난 후 본당신자들의 성의로 성대한 축하연이 벌어졌다. 부제서품 축하를 위하여 많은 한국인이 모여들어 장내는 온통 한국일색이었다.

멀리 로마에서부터 신부님이 4명이나 참석하셨고 독일「쾰른」에서는 교포들이 그 다음날 있을「한국의밤」을 위하여 무려 30명이나 버스를 대절하여 원정을 왔기 때문이다. 다음날인 26일 (주일) 저녁에는「한국의 밤」행사가 동 성당 강당에서 벌어졌다. 한국에 관한 슬라이드 상영에 이어 노래와 춤 등으로 관중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다.

다음날 나는 기차로「짤쯔부르크」에 가서 이창배 신부님을 만났다. 이 신부님은 대구교구를 대표하여 자매교구인「짤쯔부르크」에 계시면서 자진해서 틈틈이 교포사목도 돌보고 계셨는데 나는 이번에 정식으로 오지리 內 모든 교포사목을 임시로 맡아줄 것을 부탁하고 돌아왔다. 현재 오지리 내에는 교포수가 약 3백50명된다. 신자 수는 대개 90명으로 추산 된다. 교포들은 주로 수도인「빈」에 모여 있는 셈이다.

나는 이 신부님이 계시는 본당에서 하루저녁을 지내고 다음날 신부님의 안내로「빈」을 방문하였다.「빈」교구에도 역시 전교지방에서 온 사람들을 위하여 아시아ㆍ아프리카 회관이라는 건물이 있어 미사와 회합을 할 수 있는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그 날 저녁도 우리 교포들이 거기에 모여서 미사를 봉헌하였는데 약 30명이 출석하였다 미사 후에 모든 신자들과 간단한 다과회를 가지면서 나는 이번 구라파 교포 사목 시찰여행의 마지막 저녁을 마무리했다. (계속)

박정일 주교ㆍ제주교구장ㆍ한국 주교회의 해외교포 사목부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