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다문화 시대, 교회는 지금] (7) 감옥에 갇힌 외국인 재소자

임양미 기자
입력일 2010-05-12 수정일 2010-05-12 발행일 2010-05-16 제 2697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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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회의 국내이주사목위 - 가톨릭신문사 공동기획
‘철창’에 갇혀버린 꿈과 희망
열악한 작업 환경·고용주 임금체불에 불만
한순간 실수로 범죄 … 꿈도 희망도 사라져
“죄는 미워도 사람까지…” 사목적 지원 절실
이렇게 앞이 안 보일 수가 있을까? 천안 외국인 전담 교도소와 대전교도소에 갇혀있는 36개국 1079명(2010년 4월 9일 현재)의 외국인 재소자들이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사면초가의 사각지대에서 통곡하고 있다.

이중 중국, 대만 등 보이스피싱 등 악의를 갖고 저지른 범행자들을 제외한 네팔, 필리핀, 베트남, 방글라데시 등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은 짧게는 3년에서 길게는 무기징역, 사형선고까지 받고 수감 중이다. 그들은 사람을 죽이거나 폭행했고, 넘어선 안 될 선을 넘어 죄를 지었다.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받고 있다고 여기는 이도 많다. 그러나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처럼, 삶의 목적을 잃고 아무 희망도 없이 그저 ‘생존’하고 있을 뿐인 이들의 가여운 영혼을 돌볼 착한 사마리아인이 필요하다. 이 시대 약자 중의 약자, 대전교도소에 머물고 있는 외국인 재소자들의 소식을 대전교구 이주사목부의 도움으로 전한다.

■ 갇힌 몸 갇힌 꿈

5월의 어느 오후, 대전교도소 모퉁이 작은 방에 푸른 수의를 입은 여섯 명의 외국인 재소자가 두 손을 모은 채 대전교구 이주사목부 맹상학 신부와 대전 이주사목부 ‘모이세’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유일하게 허락된 영혼의 자유시간이다. 조선족 3명과 베트남에서 온 이주노동자 2명, 그리고 필리핀 이주노동자 1명이 오늘의 초대손님이다.

한국어가 자유로운 조선족 노동자 경민(가명·48)씨는 12년차 베테랑 일용직 노동자다. 수원, 안양, 서울 등지에 수많은 아파트를 지었다. 12년간 착실하게 돈을 모았다. 흥청망청 돈을 쓰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 성실하고 떳떳하게 일했다고 한다. 하지만 경민씨는 2009년 10년형을 선고 받았다.

베트남에서 온 리펑쇼(가명)와 만탐(가명)씨도 각각 12년형과 10년형을 선고받았다. 한국에 온 지 10년이 다 돼가지만, 한국어를 배울 시간이 없어 아직도 손짓 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해야 할 만큼 열심히 일했다. 필리핀에서 온 피터(가명)씨는 무기수다. 고향에 여섯 명의 자녀들이 기다리고 있다며 눈시울을 붉힌다.

이들은 죄를 지었다. 1000여 명의 재소자 중 보이스피싱 등을 한 경제사범과 마약 관련 범죄를 저지른 고의적 범법 행위를 제외한 나머지 재소자들 중 대부분은 열악한 조업환경에 대한 불만이나 고용주의 임금체불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이들은 꿈을 위해 한국 땅을 밟았지만, 순간의 실수로 갇힌 몸이 됐고, 몸과 함께 꿈도 갇혔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짧게는 3년에서 길게는 무기징역, 사형선고까지 받고 수감 중이다.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받고 있다고 여기는 이도 많다. 그러나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처럼, 삶의 목적을 잃고 아무 희망도 없이 그저 ‘생존’하고 있을 뿐인 이들의 가여운 영혼을 돌볼 착한 사마리아인이 필요하다.

■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왜 죄를 지었냐고 묻자, 경민씨는 벌게진 눈으로 되물었다.

“사장이 돈을 안 주는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돈을 벌기 위해 가족, 고향, 따듯한 보금자리…. 모든 것을 버리고 한국 땅을 찾은 이들에게 월급은 ‘목숨줄’이다. 고용주가 임금을 체불할 때의 허탈감과 분노는 상상을 초월한다. 비인간적 대우나 차별은 감당할 수 있지만 ‘임금체불’만은 견디기 어렵다는 것이다.

무기수 피터씨도 마찬가지다. 안주머니에 품고 있는 기도문이 꼬깃꼬깃해질 정도로 매일 기도를 바치고, 손에서 묵주를 놓지 않을 정도로 신심이 깊은 순박한 사람이라고 주변사람들은 전한다. 하지만 그 역시 ‘임금체불’ 앞에 무너졌고, 돌이킬 수 없는 과오로 평생 철창신세를 져야 할 운명에 처했다.

만탐씨에게 어떻게 해서 감옥에 오게 되었냐고 묻자, 한국어가 서툰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주머니 속에서 부러진 돋보기를 꺼내보였다. 그나마 한국어를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인 리펑쇼씨가 안경다리가 부러졌으니, 좀 고쳐줄 수 있겠냐는 뜻이라며 통역하고 나섰다. 자신의 죄명을 묻는 질문에 대답을 하지도 못하는 자가 재판정에서 자신을 옹호했을 리가 만무하며, 알아듣기만 할 뿐 말할 줄 모르는 리펑쇼씨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6년간 복역하다 출소를 앞 둔 왕경씨는 “이제 나가면 바로 고국으로 추방된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돈 벌러 왔는데 아무것도 못하고 갇혀 있다가 추방될 신세니…. 이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겠어요.”

왕경씨는 “한국에 남을 수 있는 방법이 없겠냐”면서 맹 신부를 붙잡았다.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미련과 회한이 손 끝에 묻어났다.

■ 희망을 위한 한 걸음

법무부는 늘어나는 외국인 재소자들의 인권 개선과 교화를 위해 지난 2월 23일 천안에 외국인 전담 교정시설을 설립한 바 있다. 영어와 중국어, 러시아, 아랍어 등 4개 국어 방송 시청이 가능하며 한식과 외국인식 등 2개의 식단이 제공되고, 몽골어·베트남어·러시아어 등 6개 국어를 구사하는 외국어 능력 교도관도 배치했다.

맹상학 신부는 “갇혀있는 외국인 재소자야말로 이 시대의 약자 중의 약자이며, 이들에 대한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다”고 호소하며, “국가 차원에서도 외국인 재소자에 대한 배려가 이뤄지고 있는 만큼, 교회 역시 이들에 대한 사목적 배려를 통해 진정한 사랑의 정신을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에 1000여 명의 외국인 재소자가 있지만, 이들을 위한 사목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대전·천안 교도소를 관할하고 있는 대전교구 이주사목부에서 서울 한마음한몸운동본부(본부장 김용태 신부)와 대전교구 교정사목부의 도움을 받아 이들에게 영치금을 조금씩 지원하고 있는 수준이지요. 한 달에 한 번 집단 상담을 하거나, 서신교환을 통한 정서적 안정을 돕고 있기도 하고요. 그러나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인 이들을 위해선 더 많은 지원과 배려가 필요합니다. 가장 어려운 이들에게 순차적으로 지급하고 있는 영치금도 한 달에 1~2만 원 수준에 불과합니다.”

맹 신부는 “어떤 이유에서건 죄를 지은 것은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죄인으로 내몰아 단죄하려고만 하는 것은 그리스도 정신이 아니다”라면서 “죄로 물든 그들의 영혼을 신앙으로 이끄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대전과 천안 교도소에 수감 중인 외국인 재소자 중 일부가 세례를 받는 등 신앙의 길로 접어들고 있으며, 편지에 성경책을 보내달라고 부탁하는 재소자도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눈에 보이는 곳뿐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들에 대한 사목적 배려야말로 진정한 그리스도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외국인재소자를 돌보는 ‘희망을 위한 한 걸음’에 관심을 기울여 함께 동참해주시길 기도합니다.”

임양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