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성경 연구의 최고봉, 로마 교황청 성서연구소의 명예교수 알베르 반호예 추기경이 6월 1~9일까지 열린 2009 세계성령대회 강연을 위해 내한했다.
예수회 소속으로 1954년 사제 서품을 받은 이후 평생 동안 성경 연구에 몰두해 온 반호예 추기경은 2006년에 사제에서 주교직을 거치지 않고 바로 추기경에 선임된 인물로도 유명하다. 탁월한 학문적 업적과 성덕을 인정받은 것이다.
반호예 추기경의 이번 성령대회 강연 주제는 ‘행동하는 사랑’이었다. 그는 무엇을 말하기 위해 한국에 왔을까.
믿음과 활동의 중요도에 따른 선후는 과연 있는가. 석학 반호예 추기경을 만난 이유다.
편안한 분위기다. 눈에는 인자함이 가득하다. 가지고 있는 것은 뭐든지 주머니를 톡톡 털어 나눠줄 것 같은 인상이다.
역시나, 반호예 추기경의 첫 마디도 ‘나눔’이다.
“우리가 성령대회를 통해 받은 은사들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눠야 합니다.”
어떤 은사를 받고, 어떤 것을 나누어야 한다는 말인가.
반호예 추기경은 ‘보편적 사랑’의 은사를 말했다.
“성령께서는 당연히 우리에게 사랑하도록 격려하시고 이끌어주십니다. 가장 먼저 우리들 마음에 사랑을 담아 주시고 나서 사랑을 실천하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깊은 사랑의 정신을 가지고 따뜻한 형제애로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점입니다.”
반호예 추기경은 “마음과 영혼을 활짝 열고 사람들을 향해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번 대회 주제인 ‘행동하는 사랑’(LOVE IN ACTION)을 실천하라는 것이다.
여기서의 실천은 우리가 생각하는 실천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성령께서는 우리들을 봉사가 그냥 봉사가 아니라 사랑으로 봉사하도록 이끄십니다. 사실 사랑없는 봉사는 노예가 될 수 있고, 그리고 봉사없는 사랑은 착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가톨릭 신앙인의 사랑은 박애정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영적인 삶으로 이끌어주며, 구원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바오로 사도는 분명히 말한다. “사람은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갈라 2,16) 여기에는 반호예 추기경도 전적으로 동의했다.
“따라서 우리의 활동을 우리 생활과 우리 개인 가치의 기초로 삼지 말고, 믿음과 사랑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일치하는 것만이 유일한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 그리스도인 삶의 유일한 기초는 다름 아닌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와의 일치라는 사실을 자주 재인식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행위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사실 그렇다고 해서 바오로 성인 말씀을 잘못 해석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믿음이 진실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믿음의 활동 차원에서 결과들이 드러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야고보 성인의 말처럼 ‘죽은’(야고보 2,17.26) 믿음이 되어 버립니다. 바오로 성인은 이 말에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실제로 갈라티아인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낙심하지 말고 계속 좋은 일을 합시다. 포기하지 않으면 제 때에 수확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회가 있는 동안 모든 사람에게, 특히 믿음의 가족들에게 좋은 일을 합시다.’(갈라 6,9-10)”
반호예 추기경은 성서대학 명예교수답게 성경을 인용했다. 바오로 사도는 신자들의 활동이 단순히 인간적인 활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활동’이 되어야 한다고 정확히 언급하면서 그리스도와 일치를 가능케 하는 활동이어야 하며(갈라 2,20), 성령의 인도를 따른 것이어야 한다(갈라 5,16.25)는 것이다.
“코린토인들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보다 은사에 매달려 아우성을 치고 있었습니다. 은사는 사랑이 없으면 가치가 없습니다. 은사는 사람들에게 흥미를 요구하고 사람들을 매료시킵니다. 하지만 은사에만 매달리다 보면 실제로 가장 중요한 사랑은 실천할 수가 없고 그 열매도 맺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이 사랑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반호예 추기경은 그 모델로서 꽃동네는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꽃동네에서 지내면서 많은 체험을 했습니다. 장애인과 어린 아이들, 노인 등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행동하는 사랑’이 그냥 빈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꽃동네를 통해 실현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인터뷰를 마칠 즈음 반호예 추기경은 ‘놀라움’ 그리고 ‘경이로움’이라는 단어로 이번 한국 방문 소감을 정리했다.
“아름답고 깨끗한 나라입니다. 친절한 사람들에게도 반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반호예 추기경은 또 “한국 가톨릭교회의 원동력을 이미 알고 있다”며 “한국 가톨릭교회가 가진 원동력이 지속될 수 있도록 기도할 것이고 또 그 원동력을 통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기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호예 추기경은 이렇게 저력이 있는 민족이라면 남북한의 화해와 일치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한국 사회의 어려움을 풀어나가기 위해선 성령의 활동이 결정적이라고 말했다.
“성령의 활동 중 하나는 증오, 분열을 막아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나라를 이끌어 가는 정치 지도자들이 이러한 투쟁이나 국가적 난국이 일어나지 않도록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성령께서는 사람들을 존경하도록 이끄시고 사람들을 또 격려하고 사랑하시도록 이끄십니다. 그래서 어떤 투쟁이 일어났을 때 그것이 심각하지 않도록, 그래서 아주 쉽게 평화로 이끌어갈 수 있도록 성령께서 격려하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감싸합니다”라며 한국어로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반호예 추기경을 붙잡았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석학의 기도를 부탁했다.
“모든 한국인들에게 성령의 감미로움이 함께 하시길 기도드립니다. 그 성령의 감미로움을 통해 평화와 기쁨과 사랑, 특별히 강인함과 용덕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이것은 정확하게 말하면 어려움 속에서의 용덕과 강인함입니다. 그리고 사랑을 실천하는 용기를 기원합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데 뒤로 물러서지 않는 용덕을 기원하겠습니다. 이 감미로운 성령은 바로 예수님께서 부활의 선물로 우리에게 주신 것이고 실제로 부활 이후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 바로 성령임을 고백합니다. 또 예수님의 마음과 일치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이 바로 보호자 성령입니다. 그러한 감미로운 성령이 한국인들과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약 력
예수회 소속 사제로 로마 교황청 성서연구소 명예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1923년 프랑스에서 출생한 알베르 반호예 추기경은 31살 때인 1954년 7월 사제로 서품됐다. 이후 2006년 3월 24일 주교직을 거치지 않고 바로 추기경으로 임명됐으며, 같은 달 28일 추기경에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