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사목체험기] 나리의 초대

조해인 신부·의정부 녹양동 이주노동자상담소장
입력일 2009-06-09 수정일 2009-06-09 발행일 2009-06-14 제 2652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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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이었다. 캄보디아 노동자 ‘나리’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구에서 일하는 누나가 아파서 연락을 받고 대구로 가고 있다고 했다. 그가 저녁에 대구에 도착해서 누나를 만나 다시 전화를 해 어떻게 할 것인지 의논했다.

하지만 공장의 책임자가 없어서 수소문을 했고, 다음날 아침 어렵게 사장과 통화를 하게 되었다. ‘나리’가 누나를 의정부 쪽에 있는 병원에 입원시키면 가까워서 돌보기가 쉽다고 하여 사장과 합의를 해 의정부로 데려오는 것으로 했다.

저녁을 먹고 있는데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고 역에 가서 그들을 만나 병원으로 데려가면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한국에 온 지는 여섯 달 정도 되었는데 얼마 전부터 가슴과 식도 주변이 뜨겁고 몸에 힘이 하나도 없이 빠졌다는 것이다. 상황으로 보아 한국음식에 적응하지도 못한 것 같았다. 입맛도 없고 해서 주로 밥을 물에 말아 먹었다고 했다.

나이는 38살이었지만 쉰 살은 넘어 보였다. 5명의 아이를 두었으며 첫째가 17살이고 막내가 3살짜리로 이제 말을 한다고 했다. 애기 아빠가 아이들을 잘 돌볼지도 걱정이 되며 막내아이가 눈에 밟힌다는 것이다.

어찌 그렇지 아니하겠는가. 아이들을 두고 온 엄마의 마음이 편할 리 없었을 것이며 그럼에도 올 수밖에 없는 가난이 원망스러울 뿐이었을 것이다.

응급실에 가서 수속을 밟고 진료를 시작했다. 몇 시간을 기다리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오고 갔다.

복음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모습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리고 내가 이들에게 무엇인가? 그러면서 내가 친형제들에게도 이렇게 하지 않았는데(다행히도 아픈 사람이 없어서) 이것은 또 무엇인가?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들이 나를 이렇게 초대했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내가 무엇을 줄 수 있는가의 문제보다는, 그들의 초대에 내가 그들에게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더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이 가난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의 삶에 나를 초대했고 함께 하자고 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가난하기 때문에 더 자신을 잘 여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되었다.

진료를 끝내고 밤 1시가 다 되어 의사를 만나 결과를 보게 되었고 의사 소견으로는 위내시경과 위산 검사를 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들었다. 우선 약을 처방받고 나중에 결과를 보자고 했다.

‘나리’ 친구가 사는 집에 데려다 주고 돌아오니 새벽 2시가 다 되어 있었다. 늦긴 했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삶 속으로 나를 초대한 것을 다시 한 번 고마워하면서 잠이 들었다.

조해인 신부·의정부 녹양동 이주노동자상담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