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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토착화를 향해] (20) 한국교회 전망과 과제 (하)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03-12-21 수정일 2003-12-21 발행일 2003-12-21 제 2378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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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인 신앙 수용’ 토착화 잠재력 커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 의안 토착화 방향 제시
‘전통적 축제의   그리스도교화’가능성 연구 긴요
영성적 전통과 순교신심 활성화돼야
기관간 연계…신학과 사목 경험 접목 절실
한국교회의 노력

자발적인 신앙의 수용이라는 전통을 지닌 한국교회는 초창기부터 서구교회에서 정립된 신앙의 진리를 한국의 전통 문화와 사상에 적응시켜 한국인에 적합하게 이해된 메시지로 수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진실되고 정통적인 그리스도교 신앙인 동시에 완전히 한국적인 그리스도교를 이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를 토착화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이러한 전통은 한국교회가 훌륭하게 토착화를 이룰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으며 한국 민족과 사회 안에서 그리스도교가 깊이 뿌리를 내리고 참된 한국인의 종교가 될 수 있는 훌륭한 전통을 형성한다.

하지만 서양 선교사들의 입국과 함께 이러한 독창적인 면모가 사라지게 됐고 이후 한국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개최되고 나서야 본격적인 토착화의 노력을 다시금 시도하게 된다. 이후 교회 일각에서는 나름대로 꾸준한 토착화 작업을 위한 연구가 진행돼 왔다.

한국교회가 토착화에 대한 공식적인 관심을 표명한 것은 한국 천주교회 창립 200주년을 준비하면서 부터라고 할 수 있다.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 의안은 전체에 걸쳐 토착화의 방향을 바탕에 깔고 있었다. 그후 1987년 한국사목연구소가 설립돼 그 산하에 토착화연구특별위원회를 두고 연구활동을 시작해 무려 16년 동안 연구 발표회를 진행해옴으로써 적지 않은 연구 성과를 축적했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토착화 작업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략 4가지 방향으로 분류하고 있다. 첫째는 전통 신학의 보편화 작업으로, 서구 신학사상을 그대로 이식하는 것으로 한국 신학의 역사와 연륜이 짧으므로 토착화 문제를 성급하게 다루지 말고 그리스도교의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내용을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문화신학의 보편화 작업이다. 이는 현재 한국 교회 안에서 주로 이뤄지는 토착화 연구의 영역으로 신앙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국의 문화 전통과 대화해 문화신학의 기초를 다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한국교회가 오늘날까지도 서구 교회의 아류 내지 모방 교회의 모습을 지니고 있으며 모든 영역에서 서구교회에 의존하고 있다는 반성을 바탕으로 한국교회의 토착화를 위해서는 한국의 종교 문화 전통을 더욱 많이 고려애햐 할 필요성을 지적한다.

셋째는, 서구의 정치신학, 남미 해방신학의 영향을 받아 발전한 동북아 민중 신학의 노선이나 한국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가톨릭농민회의 활동 등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으로서 사회 및 교회 현실에 있어서 불의한 요소들과 대결을 시도하는 정치신학의 맥락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는, 종교신학의 비옥화 작업으로써 하느님을 인간이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궁극적이고 보편적 실재로 이해한다. 그럼으로써 그러한 하느님의 다양한 현현인 이웃 종교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서로에게 배우고 함께 성숙해나가기를 기대한다.

자발적인 신앙의 수용이라는 전통을 지닌 한국교회는 초창기부터 서구교회에서 정립된 신앙의 진리를 한국의 전통문화와 사상에 적응시켜 한국인에 적합하게 이해된 메시지로 수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역과 과제들

토착화는 모든 영역에 걸쳐 광범위한 작업이 요구되지만 특별히 중심이 되는 것들을 영역별로 살펴볼 수 있겠다. 우선 전례의 토착화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 중의 하나이다. 주교회의 전례위원회를 중심으로 작업을 진행해온 한국교회의 전례 토착화 노력은 많은 성과를 내기는 했으나 여전히 적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특별히 전례와 관련해 성미술, 성음악의 발전과 토착화의 노력이 요구되며 아울러 한국고유의 제사나 명절 등 전통적인 축제들을 그리스도교의 축제로 토착화하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가 요구된다.

영성의 토착화도 중요한 것으로 지적된다. 한국교회의 영성적 빈곤 현상이 자주 지적되고 있다. 특히 그리스도교의 풍부한 영성적 재화들을 바탕으로 한국의 고유한 영성적 전통과 순교 신심 등을 활성화할 필요성이 지적된다. 특히 한국교회가 교구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고려해 이제는 수도회가 한국교회 영성의 토착화에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교회 구조의 토착화에 대해서도 진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실제로 여러 차례의 교구 시노드 등에서도 교회 구조와 운영에 있어서 복음적인 정신,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교회론, 오늘날에 있어서 평신도가 지닌 위상과 역할에 대한 지속적인 재인식 등에 바탕을 두고 쇄신돼야 한다는 논의들이 있었다.

이러한 논의들은 교회 지도자들이 더 이상 행정가나 관리자로서의 역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성적 사목적 과업의 수행에 전념하는 틀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미래 한국교회의 전망을 좌우할 것이라는 의견들을 제시하고 있다.

복음선교의 토착화는 교회의 본질인 선교의 소명과 관련해 토착화의 긴급성이 제기되어왔다. 교회의 선교는 세상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에 세상과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 외에 토착화 신학의 연구, 교리교육의 토착화, 타종교와의 만남, 아시아 각국 교회의 토착화 노력에 대한 연구, 신심 단체의 토착화 등 토착화의 연구와 작업의 영역은 우리 교회와 신앙 생활 전반에 걸쳐 이뤄져야 할 것이다.

제언들

오랫 동안 토착화를 위한 연구에 매진해온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소장 심상태신부는 무엇보다 200주년 사목회의 의안의 내용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이 사목회의는 교회의 당면 문제들에 대해서 현실적인 제안들을 담고 있으며 특히 모든 의안들이 거의 예외 없이 한국교회의 토착화 작업의 절실함을 당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목회의를 마친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토착화 작업이 미진한 현실을 지적하면서 한국교회 토착화 작업을 사목회의 의안에 따라 적극 추진해나갈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먼저 토착화를 위한 다각적이고 심도 깊은 연구의 필요성에 따라 전문적 연구 기관의 설립 필요성을 지적한다.

이와 함께 다양한 연구기구와 학회들이 연계해 사목과 신학, 전례 등의 분야에서 토착화 연구 작업을 진행해나가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즉 최근 들어 신학, 윤리신학, 영성신학, 성서학, 교부학 등 다양한 종류의 학회들이 설립되고 있는데 이러한 다양한 기구들에서 토착화 연구가 이뤄지고 상호 연계를 갖고 작업을 진행한다면 적지 않은 성과가 있을 것이라는 제안이다.

나아가 이같은 연구 성과들이 사목 일선에서 시도되고 검증되는 장치가 요구된다. 지금까지의 토착화 연구와 추진은 이론에 치우치거나 일부 학자와 전문가들의 작업에 그치는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토착화와 관련해 연구되고 개발된 것들이 일선 사목현장에서 실제로 실험되고 그 성과를 검증하는 장치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신학과 사목이 연결되고 이처럼 사목적으로 시도된 경험들을 다시금 이론적이거나 신학적인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 추구된다면 토착화 작업의 성과는 좀더 생생하게 한국교회 전반에 파급될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사목자와 수도자, 교회내 지도급 평신도들의 토착화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한 「토착화 학교」의 설립이 제안되기도 한다. 일개 연구 기관 단독으로 어렵다면 몇 개 기관의 연대를 통해 토착화를 위한 교과과정을 마련하고 실시함으로써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지도자 양성을 위한 교육 과정을 준비해 체계적인 토착화 연구, 실험, 양성 교육의 전문 토착화 학교를 설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의 복음화라는 측면에서 전통 문화에 대한 토착화의 노력과 함께 현대 문화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토착화의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도 중요한 지적이다. 전통 문화에 대한 토착화 노력과 관련해서는 특히 최근 들어 활발한 종교간 대화나 상제례 문화를 통한 토착화 노력을 예로 들 수 있다.

현대 문화에 대한 토착화 노력은 그동안 이론은 많지만 실제로는 거의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그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대중문화에 대한 복음화이다.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 총무 김민수 신부는 오늘날 지배적인 문화를 이루고 있는 대중문화에 대한 토착화 작업을 「새 토착화」라고 부르며 『대중 문화를 복음화시켜 교회 문화화시키는 과정』이라고 규정한다.

한국교회가 직면한 다양한 위기와 도전들은 본격적인 새 토착화 노력을 시대적인 요청으로 드러나게 한다. 즉 영세자 감소, 냉담 및 행불자 증가, 청소년들의 교회 이탈, 세속주의, 생명 경시와 죽음의 문화, 황금 만능주의, 정신의 황폐화 등은 교회와 사회의 피할 수 없는 도전으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새 토착화는 필수적 과제이다.

새로운 복음화의 전망

오늘날 한국교회는 발전과 쇠퇴의 기로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세기에 엄청난 성장을 구가한 한국교회는 이제 쇠퇴하는 서구 교회의 전철을 밟을 것인지, 아니면 새롭게 변화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 민족 복음화, 아시아 복음화, 나아가 세상의 복음화를 위해 기여할 수 있을 것인지의 갈림길에 서 있다.

새로운 복음화를 향한 한국교회의 여정에서 토착화는 그 성패를 가늠할 수 있는 매우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토착화에 성공하느냐 못하느냐에 어쩌면 한국교회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