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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토착화를 향해] (14) 신학 토착화의 전개와 과제 (4) 타종교와의 만남과 대화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03-08-31 수정일 2003-08-31 발행일 2003-08-31 제 2363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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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정서.심성.사상과의 만남
자기 종교의 진리를 더 풍요롭게 하는 일
혼합주의와 상대주의 위험성은 경계해야
토착화의 필수 과제

그리스도교의 토착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그 지역 안에 전통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타종교들과 만나고 대화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교황 바오로 6세는 교황권고 「현대의 복음 선교」에서 『복음이 가르치고 있는 하느님 나라는 자기 고유의 문화에 깊이 젖어 있는 사람들이 생활화하고 있는 나라』이며 따라서 『하느님 나라 건설에 있어서 인류의 모든 문화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물론 타종교와의 만남과 대화의 과정에서 혼합주의나 상대주의의 위험성에 대해서 충분히 경계해야 할 것임은 분명하다. 교황청은 종종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보여지는, 종교다원주의 상황 안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이 고유의 정체성을 잃을 우려에 대해서 주의할 것을 표명한 바 있다.

하지만 그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 지역에서 오랫 동안 민족의 정서와 심성, 사상 안에 전해져 내려오는 타종교 전통과 민족 종교와의 대화는 토착화에 있어서 필연적이고 필수적인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아시아 교회에 더욱 절실

가톨릭 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기점으로 타종교와의 만남과 대화에 대한 과거의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태도를 획기적으로 전환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는 편협하고 배타주의적인 세계관을 제시하지 않았다. 예수는 사마리아와 로마의 관리들에게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러한 예수의 행적과 가르침은 타종교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개방적 태도의 기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교회는 오랫 동안 타종교 전통에 대해 편협하고 배타적인 자세를 견지했고 타종교인들을 회개와 개종의 대상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역사상 처음으로 타종교 전통의 존재 의미와 가치를 깊게 성찰,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은 『가톨릭 교회는 이들 종교에서 발견되는 옳고 성스러운 것은 아무것도 배척하지 않는다』며 『그들 안에서 발견되는 정신적 혹은 윤리적 선과 사회적 내지 문화적 가치를 긍정하고 지키며 발전시키기를』 권고했다.

이후 가톨릭 교회는 타종교와의 대화를 위한 기구들을 설립해 종교간 대화를 실천하고 각종 관련 문헌들을 통해 교회의 입장을 표명해왔다.

특별히 위대한 종교 전통을 보유한 아시아 대륙에서는 타종교들과의 만남과 대화의 중요성이 각별히 강조됐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00년 대희년을 준비하면서 개최된 주교대의원회의 아시아 특별총회 폐막 후 발표한 권고 「아시아 교회」에서 아시아 대륙에서 종교간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에서의 종교간 대화

한국에서 종교간 대화가 본격화된 것은 60년대이다. 이후 70년대와 80년대 각종 사회 운동과 민주화 현장에서 종교인들은 자연스럽게 만나고 연대했으며 90년대 들어와서는 종교간 대화 모임이 더욱 정례화되고 청년, 평신도 등으로 참여 계층이 확장됐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에서는 타종교에 대한 몰이해와 적대감이 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개종을 직접적인 목표로 삼아 종교간 대화 자체를 불필요하거나 나아가 사악한 것으로까지 여기는 자세가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 나름대로 꾸준하게 진행되어온 토착화 작업에 있어서 동아시아와 한국의 전통 종교들에 대한 연구와 이해, 만남과 대화는 그 기반을 이룬다. 불교와 유교, 무속과 도교, 동학 등 거대 종교들을 포함한 민족 종교 전통들과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서 한국적 정서와 사상, 현실에 바탕을 둔 참된 복음화를 이루기 위한 노력들이 그 동안 교회 일각에서 꾸준하게 진행되어왔고 나름대로의 성과를 축적했다.

무한히 열려 있는 만남의 장

가톨릭 교회가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전통 종교 중 하나인 불교와 만난 것은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교사들이 아시아에 복음을 전하던 시기이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일본에 머물며 선불교를 접했고 마태오 리치 등 예수회 선교사들은 불교식 복장을 하고 서방의 승려로 행동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아시아 교회는 불교에 대한 이해와 대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74년 아시아주교회의연합(FABC)은 제1차 총회에서 성명서를 통해 불교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고 이후 아시아 가톨릭 교회는 불교 신자들과의 대화는 물론 불교 사상과 전통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를 시작했고 이와 함께 사회, 경제적인 문제를 둘러싼 연대도 활발해졌다.

하지만 불교에 대한 가톨릭의 견해를 아직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가톨릭과 불교의 대화가 시작된 것도 오랜 것이 아닐뿐더러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돼 부분적인 성과를 얻고 있지만 여전히 충분한 연구 결과가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대화 자체를 주저하는 주장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는 또한 타당한 이유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갈수록 빈번해지는 타종교들과 이들의 상이한 기도 유형, 방법들과의 접촉으로 잘못된 기도 방식이나 오류에 대해 우려하는 문헌을 발표했다. 한국 주교회의 역시 이러한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실제로 그리스도교와 불교는 사유와 논리의 틀이나 세계관, 우주관, 인생관, 구원론 등 모든 면에서 상이하고 심지어 상호 대치되거나 배타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어려움과 장애에도 불구하고 불교와 그리스도교와의 대화의 장은 무한하게 열려 있다. 그리고 이렇게 열려 있는 대화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교리에 대한 좀더 깊은 연구가 선행돼야 할 것이다.

유교에 대한 이해

초기 교회공동체의 박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유교와의 관계 역시 복음화와 토착화의 노력에서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천주교를 민족 구원의 복음으로 수용한 신앙 선조들은 불교와 민간 신앙에 대해서는 배척했으나 유교 사상에 대해서는 조화를 이루려는 보유론적 자세를 취했다.

초창기 신자들의 신앙 성격은 천주 공경, 영혼 불멸, 사후 내세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으면서도 부모에 대한 효도와 천주공경, 인륜도덕과 신앙 생활, 현세와 내세, 성과 속을 이원론적으로 보지 않았으며 인륜을 중시하는 유교와 신앙을 중시하는 천주교를 조화시키려고 했다. 또 신앙의 의의를 개인 영혼 구원과 내세 천당보다는 사회 개혁과 민중 구원에 두었다.

이러한 보유론적 자세는 선교에 크게 기여했고 천주교의 토착화와 민족 문화의 창조적 발전을 위해서도 올바른 방향이었다. 하지만 1790년 교황청의 조상 제사 금령으로 인해 양자 택일을 강요 당한 조선 신자들은 큰 어려움에 봉착해야 했던 것이다.

유교와의 관계에서 가장 주목되는 이는 다산 정약용이다. 그는 사변에 흐른 성리학을 비판하면서 공맹의 근본유학으로 돌아가 유교 경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했다. 그는 예수회 선교사들과 마찬가지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올바른 궁극자관의 정립이라고 확신했다. 신론, 인간관 등 제반 영역에 있어서 예수회 선교사들의 보유론적 견해와 맥을 같이 하는 다산의 사상은 한국 교회의 신학 토착화에 있어서 적지 않은 기반을 만들어주고 있다.

전통 종교에 대한 시각

한국 사람들의 심성에 짙게 깔려 있는 무교적 경향을 고려할 때, 무교와의 관계로부터도 토착화 작업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1975년에 반포한 권고 「현대의 복음선교」에서 『민간 신앙은 순박하고 가난한 사람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하느님께 대한 갈망을 표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 교회 안에서 민간 신앙, 전통 종교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이다.

이러한 태도는 한국 종교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 불교와 무교를 배척했던 조선시대의 배타적 종교관의 영향, 서구 문화의 우월주의에 입각한 과거 서양 선교사들의 영향 등에 기인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들은 이러한 종교 전통을 현실도피, 기복신앙으로 여기면서 소멸돼야 할 대상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부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전통 종교가 한국 문화의 근저를 이루고 있으며 따라서 전통 종교에 대한 깊은 연구와 이해야말로 그리스도교가 한국에서 토착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의 그리스도교는 전통 종교를 보는 시각을 교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들이 제기된다. 무교를 위시한 전통 종교를 미신이나 우상숭배로만 간주하는 것은 잘못이다. 반면 막연한 호감에 기초해 전통 종교야말로 한국 종교의 모태라든지, 종교 심성의 기반이라는 등 찬양 일변도의 자세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타종교와의 만남과 대화의 역사는 교회의 장구한 역사를 생각해볼 때 그리 오래지 않다. 그리고 여전히 종교간의 대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많다. 그 중 가장 큰 장애는 자신의 신조 안에 완전히 폐쇄된 자세이다. 이런 입장은 대화에 대한 다양한 오해로 더욱 강화된다.

이 오해 중의 하나는 종교간 대화는 불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자기 종교 안에 모든 진리가 담겨 있고 따라서 다른 것은 모두 우상숭배라는 생각이다. 종교간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것도 장애 중의 하나이다. 신앙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과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자기 신앙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위험은 있을 수 있다. 상대주의나 혼합주의에 빠질 우려 역시 이러한 위험성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타종교와의 만남이 피할 수 없는 사건이고 이를 통해서 자신의 종교 진리가 더욱 풍요로워진다는 점에서, 그리고 참된 한국의 종교가 되기 위해서 타종교 전통들과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