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성가정을 찾아서] 청주 유병선-강경옥씨네

서상덕 기자
입력일 2003-03-16 수정일 2003-03-16 발행일 2003-03-16 제 2339호 12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결혼후 하루도 빠짐없이 ‘가족기도’
여섯 아이 입 떼는 첫 말은 “아멘”
사랑이 넘치는 가족. 어떤 가족보다도 따뜻한 사랑이 넘치는 유병선-강경옥씨네 가족. 이런 삶의 비결은 기도하는 삶이 밑바탕이 되고 있다.
『딩∼동』

초인종소리가 나자 아이들은 『와! 아빠다』라는 탄성과 함께 현관이 바라다 보이는 거실 한쪽에 한 줄로 늘어선다. 아빠 유병선(도미니코 사비오.44.청주 사천동본당)씨가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들어서자 아이들은 차례로 아빠 품으로 달려가 정겨운 입맞춤을 나눈다.

아빠에게로 뛰어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길이 길게 이어진다. 첫째 재현(세례자 요한.13)이부터 대건(대건 안드레아.11), 지혜(소화 데레사.10), 지은(마리아.8), 재범(임마누엘.6)이까지 다섯 명이 인사를 나누고 이제 막 돌을 지난 재희(아녜스.2)가 큰오빠의 손길에 이끌려 뒤뚱대며 아빠에게로 다가가 마지막 퇴근 인사를 마칠 때까지는 여느 가정보다 많은 시간이 들기 때문이다.

아빠가 씻는 사이 다섯 아이들은 엄마 강경옥(안나.41)씨를 도와 저녁 차리는 일을 거들고 나선다. 밥상에 수저를 놓는 재현이, 밥그릇을 나르는 재범이, 국을 떠나르는 대건이, 반찬을 챙기는 지은이, 막내를 달래는 지혜, 모두들 익숙한 모양새가 오래 전부터 몸에 밴 듯하다.

식탁에 둘러앉고서야 8명 한 가족이 겨우 눈에 다 들어온다. 유씨네 가족의 하루가 마무리돼 가고 있는 모습이다.

성소의 길

『이렇게 사는 것도 성소가 아니겠어요?』

이렇게 말하는 유씨 부부의 말에서는 묘한 여운이 전해져 왔다. 오랫동안 키워오던 성소의 꿈을 위해 각각 신학교와 수녀원에 들어갔다가 건강상의 문제로 성소의 길을 접어야 했던 유씨 부부. 이들에게 지금의 삶은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것 이상도 이하의 의미도 아닐 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 동네에서 자라며 같은 본당에서 교리교사도 함께 하면서 서로의 성소를 지켜봐 온 이들 부부는 이제 또 다른 성소의 길을 다져 나가고 있는 셈이다.

『하느님께 가는 길도 여러 가지가 있단다. 엄마 아빠는 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거야』

부모의 내력을 주위로부터 들어 알고 있던 아이들도 엄마의 설명에 이해가 가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주시니까 낳지요”

『계획은 무슨 계획이요. 주시니까 낳은 거지요』

이렇게 말하는 강씨는 그러나 아이를 낳을 때마다 고민이 적지 않았음을 털어놓는다. 아울러 그 때마다 「하느님께서 주셨으니 하느님께 맡기자」는 결론에 이르렀음을 상기하고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숨기지 않는다.

올해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은이까지 4명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아이들이 매일 벗어내는 옷가지며 청소거리로 엄마 강씨는 대부분의 시간을 서서 하루를 보낸다. 매괴고등학교 행정실장인 아빠의 벌이만으로는 그리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다 아이가 많아 강씨가 신경 써야 할 일은 여느 가정에 비해 몇 배나 된다. 첫째가 쓰던 학습지를 셋째에게 물려주기까지 지우개를 얼마나 썼는지 모른다. 과외를 시키기도 녹록치 않아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과외교사 몫도 해내야 한다.

또 외식은 엄두도 내기 힘들어 웬만한 음식은 강씨가 직접 해온 탓에 아이들은 엄마의 자랑거리를 꼽으라면 「요리사」라고 말할 정도다.

도움의 손길

이런 가운데서도 주일이면 어김없이 성당을 향해 대이동(?)을 하는 유씨 가족을 향하는 사랑의 손길도 적지 않다. 미술학원을 연 주일학교 제자가 공짜로 아이들을 가르치길 자청하는가 하면, 아이들 옷가지를 보내주는 이도 적지 않고 멀리 서울에서는 얼굴도 모르는 후원자들이 벌써 몇 년 째 꼬박꼬박 아이들을 위한 후원금을 보내주기도 한다.

이런 주위의 사랑을 몸으로 느끼는 것일까, 아이들도 나누는데 인색함이 없다. 용돈이라도 생기면 먼저 누구누구를 위해 쓰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대견하기까지 하다. 이런 까닭에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군종후원회를 비롯해 복지관 등 유씨 가족이 후원하는 곳도 적지 않다.

기도 생활

어떤 가족보다도 따뜻한 사랑이 넘치는 유씨 가족의 이런 삶의 비결은 기도하는 삶이 밑바탕이 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깨닫게 된다. 아침 7시면 전 가족이 모여 앉아 삼종기도를 시작으로 묵주기도, 아침기도에 이어 그 날의 복음을 읽는 「가족기도」로 하루를 여는 것이다. 지난 90년 두 부부가 결혼을 한 이후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어오고 있는 까닭에 아이들이 태어나 강보에서부터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아멘」일 수밖에 없는 지도 모른다. 이런 이유로 첫째 재현이는 물론 다섯째 재범이에게도 성서 구절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 된 지 오래다.

매년 대림절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집안에 구유를 꾸미는 것도 유씨 가족의 오랜 전통이다. 또 거의 매달 전 가족이 떠나는 성지순례 덕에 아이들도 어려서부터 거의 안 가본 성지가 없을 정도다. 일상의 삶 속에서 일찌감치 교회 정신에 젖게 하려는 두 부부의 생각에서다.

작은 나눔도

일주일 중 금요일 저녁은 꼭 라면으로 때우고 함께 평일미사를 봉헌하는 삶을 10년 넘게 이어온 것도 유씨 가족만의 이웃사랑 방법이다. 이를 통해 절약한 돈은 아이들과 의논을 거쳐 가족이 돕고 싶은 곳에 보내지게 된다. 이런 생활에 익숙해져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남을 위해 선뜻 내놓을 줄 아는 삶에 젖어가고 있었다.

『매순간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 때도 하느님을 먼저 생각하는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에게 두는 희망을 묻는 물음에 「하느님의 사람」을 강조하는 부부에게서 평신도가 걸을 수 있는 성소의 길이 싱그러움 그 자체로 다가왔다.

서상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