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우리는 공포사회에 살고 있다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23-08-14 수정일 2023-08-14 발행일 2023-08-20 제 3356호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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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고립 양산하는 ‘병든 사회’ 치유하려는 노력부터 
놀이처럼 번지는 살인 예고
승자독식이 키운 사회적 고립
양극화 심화와 연대성 상실 등
병리적인 사회 구조 성찰 시급

최근 우리 사회의 일상이 공포로 물들고 있다. 안전지대로 여겼던 일상의 시간과 공간들이 이른바 ‘묻지마 칼부림’ 예고로 덮였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이 확보돼 있다고 생각했던 공간들이 위협받게 됨에 따라 우리는 불안에 떨고 있다. 장갑차와 무장경찰이 공포로부터 해방시켜줄 수 있을까? 공포의 더 근본적인 원인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일상으로 파고든 공포의 원인과 해법을 생각해본다.

“나도 당할 수 있다”

지도 위에 점점이 표시된 핀 모양의 아이콘들. 주로 대도시 지역에 집중됐는데, 서울과 수도권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빼곡하다. 맛집 표시가 아니다. ‘칼부림’과 집단 살해가 예고된 섬뜩한 장소들이다. 해당 핀을 누르면 테러 예고를 한 피의자 검거 여부와 살인 예고 진위 여부 등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웹서비스 업체 ‘공일랩(01ab)’이 8월 6일 서비스를 시작한 ‘테러레스’(terrorless) 사이트. 사이트를 개설한 공일랩측은 자신들의 목표는 “테러레스 서비스가 종료되는 것”이라며 “하루빨리 대한민국이 안전한 사회로 되돌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고 말했다. 개설 이틀만에 10만여 명이 접속했고, 8월 13일 현재 122건의 살인 예고 정보가 담겨있다.

지난 7월 21일 신림역 4번 출구 인근에서 벌어진 30대 남성의 흉기난동으로 1명이 숨지고 3명이 부상했다. 8월 3일에는 분당 서현역에 접한 한 백화점에서 20대 남성이 차량으로 행인들을 덮친 뒤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러 14명을 해쳤다. 그 중 1명은 끝내 숨을 거뒀다.

이후 온라인상에서는 칼부림 살인 예고가 놀이처럼 번졌다. 경찰의 엄정 대응 경고에도 불구하고 살인 예고는 계속 늘었다. 8월 12일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11일 오전 9시까지 전국의 살인 예고 게시물은 모두 315건, 119명이 검거됐고 절반가량은 미성년자였다.

서현역 인근에 거주하는 김명숙(35·안젤라)씨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들르는 곳이었는데 이제 근처도 가지 못하겠다”며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되도록 가지 않고 퇴근하면 그냥 집으로 간다”고 말했다. 대학생 박수진(23·율리안나)씨도 “언제 어디서든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한 마음”이라며 “당분간은 집과 학교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상을 덮은 공포

선량한 시민들의 모든 일상을 공포가 덮어가고 있다. 안전하다고 여겼던 낯익은 시간과 공간이 사라졌다. 거리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은 모두 경계의 대상이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받았던 택배도, 아파트 단지 안에서 만나는 이웃들도 모두 두려움의 대상이다.

일상이 공포다. 코로나19가 일상화시킨 ‘거리두기’와는 차원이 다른, 두려움과 공포의 ‘사주경계’와 호신용품을 갖추고 시민들은 다시금 ‘각자도생’의 길을 찾고 있다. 거리에 장갑차와 무장경찰이 보여도 안도감보다는 오히려 불안함이 더한다. 애당초 일부 정신질환자들의 극단적인 반사회적 일탈 행위로만 여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상의 안전에 대한 불안은 빈발한 사회적 재난들, 특히 국가와 사회가 제 책임을 다하지 않아 발생한 참혹한 인재의 체험 때문에 더 커진다. 세월호 참사를 목격한 청소년들은 친구 수백 명이 바다로 사라진 충격을 잊지 못한다. 10·29 참사는 세월호 참사의 육지판이다. 친구들과 자주 찾던 낯익은 장소가 공포의 공간으로 변했다.

게다가 참사 후 추모와 수습의 과정에서 국가나 사회가 자기 책임을 다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책임을 회피하는데 급급한 모습을 보면서, 안전은 결국 ‘각자도생’일 뿐이라는 인식을 하게 된다. 오송 지하차도의 참사나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자살, 직장에서 재해로 인해 목숨을 잃는 노동자들…. 일상 삶에서 안전한 곳은 없어 보인다.

흉악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관용구로 등장하는 ‘묻지마 범죄’라는 용어는 범죄 행위의 원인을 개인적 사안으로 치부하거나 범행 동기의 규명과 재발 방지에 소홀하게 만든다는 의미에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많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문화일보 <“묻지마 범죄 자체가 잘못된 개념… 범행 동기 체계적인 연구 나서야”>(8월 7일)에서, “범죄의 동기는 반드시 있다”며 범죄자들의 “경험이나 생각 속에 있는 교집합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뿌리깊은 병리현상, 무한경쟁과 승자독식

한국사회가 혐오사회, 공포사회화되고 있는 이면에는 현대 사회의 병리현상이 도사리고 있다. 오세일 신부(대건 안드레아, 예수회, 서강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모든 형제들」의 화두는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노동시장 안에서의 승자 독식의 정당화, 인간 노동력이 일회용 소모품으로 버려지는 문화 속에서 어떻게 인간 존엄성을 지지할 것인가”라고 요약했다.

이어 10여년 전 한국 사회가 ‘피로사회’로 불리웠음을 상기시키며, “자기 착취를 정당화하고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고자 전력투구하며 루저가 되면 사회에서 도태될 것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건강한 공동체 문화와 이웃에 대한 연민과 동반의 정신이 있던 과거와는 달리, IMF 이후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이 정당화되고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오늘날 한국 사회에는 공존과 상생을 거부하고 타인의 존재 자체를 경계하고 대적하는 태도가 광범위하게 퍼졌다는 지적이다.

황순찬 교수(베드로, 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초빙교수)는 최근 이른바 묻지마 범죄에 대해 “사회 안전망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 것으로, 모든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모는 것은 사회적 책임을 간과하는 것”이라며 “복지국가 체계에 대한 고민 없이 형벌을 강화하는 것은 올바른 해법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김선류 신부(타대오, 춘천교구 가정생명환경위원회 위원장 겸 샘밭본당 주임)도 “폭력으로 폭력을 막을 수는 없다”며 강력한 처벌에만 의지하는 태도를 경계했다. 이어 “교회 안팎에서 인권과 생명 존중에 대한 광범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주형 신부(요한 세례자, 서울대교구 사목국 성서못자리)는 소득 양극화, 자본에 의한 계층 분리, 사회적 고립의 심화, 사회 구성원간 연대성 상실과 계층간 갈등의 심화 등을 한국 사회의 불안정 요소로 지적하고, 극도의 물신주의와 금권주의에 압도된 사회 분위기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에 따라 개인의 일탈과 범죄 행위에 대해 개인의 책임과 함께 사회적 고립을 야기하는 병리적인 사회 구조의 성찰이 시급하다고 제안했다.

결국 ‘묻지마’ 범죄라는 부적절한 용어가 지칭하는 사회 현상의 근본 대책은, 사회 구성원의 좌절과 사회적 고립을 찾아내 치유하려는 노력에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여기에는 국가와 사회의 국민과 시민들에 대한 책임과 함께, 무엇보다도 인간 존엄성과 초월적 가치, 가난한 이들에 대한 배려를 우선적 소명으로 삼는 종교의 역할에 대해 큰 기대가 주어질 수밖에 없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