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특집] FABC 50주년 총회 「방콕 문서」 무엇을 담았나(중)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23-05-09 수정일 2023-05-09 발행일 2023-05-14 제 3343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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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 겪는 여성 지위 향상·청소년 중심 ‘디지털 사목’에 중점
젠더·청년·경제·기후 위기 등
9가지 우선적 관심사 선정
여성과 청소년 주체성 강조
지역 선교 덕목으로 ‘식별’ 제시

지난해 10월 태국 방콕대교구에서 열린 FABC 50주년 총회 중 정신철 주교(왼쪽에서 네 번째)와 문창우 주교(정 주교 오른쪽)가 본당 방문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문창우 주교 제공

“「방콕 문서」는 완성된 결과물이라기보다 아시아교회가 걸어갈 여정의 시작입니다.”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전 의장이자 인도 봄베이대교구장 오스왈드 그라시아스 추기경이 FABC 50주년 총회 논의 결과를 모은 「방콕 문서」의 성격을 표현한 말이다. 그라시아스 추기경 평가대로 「방콕 문서」는 아시아교회의 과거와 현재를 회고하거나 진단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교회가 처해 있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함께 나아갈 미래를 제시하는 문서다.

「방콕 문서」 제2장 바라보기(Looking)와 제3장 식별하기(Discerning)에는 아시아교회가 새롭게 직면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수행해야 할 과제들과 그 과제들을 식별하기 위해 아시아교회가 귀 기울여야 할 성령의 요청이 무엇인지 다루고 있다.

■ 아시아교회가 직면한 도전들

「방콕 문서」 제2장의 부제 ‘아시아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도전들 인식하기’(Recognizing the challenges confronting the Church in Asia)는 아시아교회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과제를 안고 있음을 암시한다. 새로이 부상하는 현실에 대응한다는 것은 곧 새로운 과제가 주어진다는 의미와 연결된다.

「방콕 문서」는 아기 예수님을 찾아 나선 동방박사들이 지혜로웠던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하면서 아시아교회 역시 동방박사들의 지혜를 배울 때, 아시아교회 앞에 놓인 미래에 지혜롭게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동방박사들은 하늘의 인도를 받은 것뿐만 아니라 자기 주변도 주의 깊게 살폈다는 면에서 지혜로웠다. FABC 50주년 총회도 하늘의 것을 바라보면서도 주변의 현실을 살피고자 했다. FABC 50주년 총회 참석자들은 성경을 묵상하고 영성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아시아교회가 놓여 있는 현실을 바라볼 수 있는 균형 잡힌 시각을 기대했다.

FABC 50주년 총회에서 영상을 통해 아시아교회 모든 나라를 가상(비대면) 방문(virtual visits)한 이유도 평소 목소리를 듣기 어려웠던 아시아 각국 신자들과 만나 각 지역교회에서 등장하고 있는 희망적인 현실은 물론 고통스런 현실에까지 우리의 눈을 열기 위한 것이었다. 아시아라는 거대한 대륙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다양한 이슈들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FABC는 「방콕 문서」를 작성하면서 아시아 지역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실에 초점을 맞춰 9가지 우선적 관심사로 ▲고향으로부터 쫓겨나는 이주민, 난민과 토착민 ▲사회의 근간이 되는 가정 ▲빠르게 변화하는 아시아 사회에서 커지는 여성의 역할 ▲사회와 교회가 마주하고 있는 젠더 문제 ▲새 세상과 직면하는 청년 ▲디지털 기술의 효과 ▲도시화와 세계화 속에서 공정한 경제의 증진 ▲우리 공동의 집을 위협하는 기후 위기 ▲아시아 대륙에 조화와 평화를 가져다주는 종교간 대화를 선정했다.

이 가운데 아시아 대륙에서 전통적으로 남성에 비해 차별대우를 받아 온 여성 지위와 관련해 「방콕 문서」는 “우리는 여전히 아시아 많은 지역에서 여성들에 대한 차별과 폭력, 억압이 가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밝혀 여성들이 제 위치를 찾지 못하고 있는 아시아의 현실을 짚었다. 보다 세부적으로, 여성 리더십과 기여도가 저평가돼 왔고 몇몇 지역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임금과 소유권, 상속권, 교육 기회에서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또한 태아가 여아일 경우 낙태하는 문화가 존속되는 지역도 있고 젠더에 기반한 폭력도 여전히 존재한다.

「방콕 문서」는 “아시아는 변하고 있다”면서 아시아의 여성들이 전통적인 가부장적 사회에서 점차 목소리를 높이면서 남성들과 대등한 위치를 찾아가고 있고 교회 역시 이런 흐름을 이끌고 동참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디지털 기술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에 아시아교회의 사목 방향도 「방콕 문서」에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방콕 문서」는 2000년대 들어 시작된 디지털 소통과 상호작용은 거의 모든 삶의 영역에 영향을 미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의 효용성과 더불어 몰개성화, 증오 범죄, 가짜 뉴스, 사회 내 단절, 따돌림, 중독 등의 문제가 등장했다. 아울러 디지털 대중매체의 소유자가 정보를 독점하고 소비자 위에 군림하면서 금전적 이익을 추구하는 현상도 부각되고 있다.

「방콕 문서」는 가톨릭교회 지도자들이 교회 고유의 안전한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마련하고 지역 교회마다 디지털 소통을 담당하는 팀을 만들 것을 촉구하고 있다. 관심을 끄는 부분은 청소년들을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s)이라고 부르면서 청소년들이 아시아교회의 디지털 사목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대목이다.

지난해 10월 23일 서울 가회동성당에서 FABC 50주년 총회 프로그램 중 하나로 가상(비대면) 방문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주교회의 미디어부 제공

■ 아시아 선교에 요구되는 식별

「방콕 문서」는 아시아 지역에서 선교를 해야 하는 아시아교회의 상황이 아기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 유다 지역 통치자였던 헤로데가 자신의 권력에 위협이 된다고 느꼈던 것과 유사하다고 말하고 있다. 정치, 종교적으로 기득권을 지니고 있는 이들은 새로운 종교의 접근에 경계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아시아에서 가톨릭은 소수 종교라는 점에서 타 종교와 다문화 속에서 선교를 하는 데는 필연적으로 어려움이 따르게 된다.

「방콕 문서」는 아시아 지역 초창기 선교사들이 통치 집단과 기존 종교 세력으로부터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졌듯이 오늘날 아시아 지역 선교 역시 간혹 협력이 이뤄지기도 하지만 선교 초창기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지역에 따라 협력을 얻기도 하고 경계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상이한 선교 환경에서 필요한 덕목이 식별이라고 제시한다.

식별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지를 들으려는 지속적인 과정이지 한 순간에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해 살고 성령의 인도를 따르면서 예수 그리스도에 터를 잡는 생활양식이다.

FABC 50주년 총회 참석자들은 스스로에게 ‘현대를 사는 아시아교회에 성령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물었고 특히, 아시아교회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9가지 우선적 과제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식별했다. 「방콕 문서」는 9가지 우선적 과제에 대한 식별의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이주민, 난민, 토착민과 동반 ▲가정에 대한 각별한 관심 ▲아시아교회 여성들에게 새로운 리더십 부여 ▲젠더 이슈 해결 ▲청년 사목 배려 ▲디지털 기술의 효율적 사용 증진 ▲도시화와 세계화 맥락에서 포용적 성장에 기반한 경제 증진 ▲공동의 집 돌보기 ▲아시아의 화해와 대화를 위한 다리 건설자와 악기 되기가 그것이다.

「방콕 문서」는 온전히 식별의 과정을 거치면 성령께서 함께하는 결정을 도출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