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작년과 올해 백수(白壽) 맞은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조영순·박재순 수녀

박주헌 기자
입력일 2023-10-18 수정일 2023-10-18 발행일 2023-10-22 제 3364호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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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시대 힘들었지만 남 위해 사는 기쁨은 충만”
70여 년 수도생활 소회 밝혀
삶 이끄는 동력은 헌신과 기도

2022년 11월 16일 충남 논산 쌘뽈요양원 다목적실에서 진행된 백수 잔치에서 조영순 수녀(오른쪽)가 원장 박지숙 수녀와 손을 잡고 있다.

“오갈 데 없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섬기는 70여 년 수도생활, 모두가 가난한 시대라 힘들기도 했지만 예수님처럼 남을 위해 사는 기쁨은 충만했답니다.”

지난해와 올해 백수(白壽)를 맞은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조영순(안셀모·100) 수녀와 박재순(안드레아·99) 수녀. 그들은 가난한 한국교회와 그 안의 가난한 이들을 70년 넘도록 섬겨온 수도생활 초심이 “스스로 돕지 못하는 사람들을 돕는 기쁨에서 나온 것”이라고 밝혔다.

두 수녀의 헌신은 사회복지 사도직, 교육 사도직 실천에서 두드러졌다. 조 수녀는 성우회 양로원을 세워 무의탁 할머니들을 섬긴 20여 년 세월을 “수도 여정 최고의 기쁨”으로, 박 수녀는 충남 논산 쌘뽈여자고등학교(이하 쌘뽈여고) 교장으로서 가난한 여학생들에게 바친 10년 세월을 “지금도 웃음이 나는 원천”으로 꼽았다.

“기댈 곳 없는 할머니들, 꿈을 꿀 수 없는 여자애들을 돕는 일이잖아요.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라는 예수님 말씀 따라 사니 절로 웃음이 나지요.”

2023년 10월 7일 충남 논산 쌘뽈요양원 야외정원에서 진행된 백수 잔치에서 박재순 수녀가 휠체어를 타고 들어오고 있다.

성우회 양로원은 조 수녀 제안으로 결성된 신자 모임인 성우회가 무의탁 노인들에게 보금자리를 주고자 200원(1970년 당시 라면 10봉지 값)씩 회비를 모아 1976년 서울 불광동에 헌집을 마련한 데서 시작됐다.

거기서 노인들을 모시던 조 수녀는 1987년 양로원이 시설로 승인받자 1991년 시설장으로 정식 파견되면서 성모의 집을 개원해 할머니 10명을 분가시키는 등 양로원을 성장시켰다.

1969~1979년 쌘뽈여고 교장을 맡은 박 수녀는 당시 학교가 모자라 꿈을 이룰 수 없던 충남 논산 가난한 여학생들의 진학을 위해 헌신했다. ‘호랑이 수녀’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학생들에게 면학을 다그치는 한편 더 많은 학생의 진학을 위해 건물 증축, 생활 개선을 위한 시설을 마련했다.

고난과 헌신의 여정이었다. “지금과 달리 교회, 사회, 모두가 궁핍했기에 가난한 자를 섬기는 일은 배로 힘들었다”고 두 수녀는 입을 모았다. 정치적으로도 암울했고 교회도 가난해 후원도 변변찮았다.

그래도 조 수녀가 힘을 낸 건 “이제 외로워하지 않고 기뻐하는 할머니들에게서 예수님을 봤기 때문”이었다. 박 수녀가 지치지 않은 것도 “바르게 자라나는 아이들을 비추는 성령의 빛을 봤기 때문”이었다.

“남을 위해 내어놓을 때 인간의 내면은 오히려 가득 차오른다”는 조 수녀와 박 수녀. 99세를 넘어도 한결같이 기도 생활을 하는 그들은 특히 “남을 위한 기도만큼은 놓쳐서는 안 된다”며 “풍요에 익숙해져 예수님처럼 내어주는 삶의 기쁨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박주헌 기자 ogoy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