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구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강좌 지상 중계-‘시노달리타스와 한국천주교회’] (7)‘함께 걷는 교회의 길’과 평신도

정리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22-12-06 수정일 2022-12-06 발행일 2022-12-11 제 3322호 4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모든 그리스도인은 복음화의 능동적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평신도는 사제직·예언자직·왕직 수행
진리 인식할 수 있는 ‘신앙 감각’ 중요 
현대 세계의 고통과 문제 감각해내고
세상에 복음적 응답 전하는 역할해야
■ 이미영(발비나)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소장 최영균 시몬 신부)는 지난 10월 11일부터 10회 과정으로 ‘시노달리타스와 한국천주교회’ 강좌를 열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우리신학연구소 이미영(발비나) 소장이 ‘함께 걷는 교회의 길과 평신도’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재조명한 ‘평신도’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세례받은 모든 이들이 교회의 ‘사도직’에 참여해야 하는 보편적인 소명이 있음을 강조한다. 특히 평신도의 사도직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실현되도록 참여하는 것이며, 세상 안에 하느님 사랑을 전하고 세상의 소금이 되는 교회의 사명을 수행한다. 아울러 ‘세례’로 하느님 백성이 된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사제직과 예언자직과 왕직’이라는 삼중직무를 수행하는 ‘보편사제직’에 동참한다. 평신도 사도직 삼중직무의 특성을 종합해 보면, 이 세상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예배요, 증언이며, 봉사인 ‘세상의 복음화’ 사명이라 할 수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하느님 백성의 ‘예언자직’과 관련해 ‘신앙 감각’을 강조한다. 신앙 감각(Sensus fidei)은 신자들이 지닌 복음의 진리에 대한 초자연적 본능으로서, 신자 개인이 신앙의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개인적 능력이기도 하지만, 교회 공동체가 함께 식별하여 ‘신자들의 합의’(consensus fidelium)로 신앙 교리와 실천을 판단하는 공동체적인 ‘믿는 이들(신자들)의 신앙 감각’으로도 드러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는 이 공동체적인 ‘믿는 이들(신자들)의 신앙 감각’을 통해 “능동적 교계 제도와 수동적 평신도라는 잘못된 생각, 특별히 ‘가르치는 교회’와 ‘배우는 교회’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잘못된 생각”을 배척하고, 세례받은 모든 이가 예언자직에 참여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 급속도로 변화하는 현대 세계의 여러 복음화 과제를 식별하고 그 안에서 복음화의 사명을 실천하는 데 있어, 평신도의 신앙 감각은 공동체의 신앙 감각에서 특히 중요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하느님 백성’인 교회의 생활 방식과 활동 방식의 고유한 특성인 ‘함께 걷는 교회의 길’(시노달리타스)에는 ‘신자들의 신앙 감각’을 바탕으로 교회의 모든 구성원이 복음화의 능동적 주체가 되어 참여하는 것이 강조된다. “모든 사람이 관련되는 것은 모든 사람이 검토하고 승인해야만 한다”라는 로마법 원리는 이미 중세교회에서부터 사용되기 시작했고, 특히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교회 안에서 생각과 의견이 공개적으로 교환되기 시작하면서 신자들에게 좀 더 공식적으로 의견과 자문을 구하는 다양한 제도적 장치들이 마련됐다. 특히 ‘함께 걷는 교회’가 되도록 본당에 교회 구성원들이 두루 참여하는 교구 사목평의회를 구성토록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마련한 ‘함께 걷는 교회의 길’을 위한 평신도 위상과 역할이 교회 현장에서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거나, 신자들의 신앙 감각을 나눌 수 있는 구조적 장치가 잘 작동하지 않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지적한다. 교황이 밝힌 평신도들이 ‘함께 걷는 교회의 길’(시노달리타스)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못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측면이다. 하나는 평신도들이 제대로 교육받지 않거나 지나친 성직주의로 인해 교회 안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참여’와 관련한 문제점이고, 다른 하나는 평신도의 사도직이 세상을 복음화하는 사명으로 확장되지 못하고 교회 내의 봉사에만 머무르는 ‘사명’과 관련한 문제점이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이 실행하는 교회 구조의 쇄신 방향을 보면, 교회의 ‘다양한 직무’에 평신도 참여를 확대하여 지나친 성직주의를 개선하고, 하느님 백성인 모든 그리스도인이 세례와 견진에서 비롯되는 보편 사제직의 사명을 기억하며 세상을 복음화하는 ‘일꾼’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교회 쇄신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지향점은 세상의 복음화를 위한 선교적 사명에 방점이 찍힌다. 그는 “복음화 노력을 저해할 수 있는 교회 구조들”을 쇄신하여, “모든 교회 구조가 자기 보전보다는 오늘날 세계의 복음화를 위한 적절한 경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복음의 기쁨」 26~27항)

지난 10월 의정부교구 평협이 개최한 ‘평신도 사도직과 시노달리타스’ 주제 세미나 모습.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한국천주교회 평신도 사도직 운동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한국천주교회의 평신도 사도직 운동을 1987년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중심으로 구분할 때,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부터 전개된 1970~1980년대 평신도 운동과 민주화 이후 1990년부터 현재까지의 운동으로 볼 수 있다.

1970~1980년대 평신도 운동은 평신도 사도직 단체들이 다양해져 많은 단체가 사도직 운동을 전개한다. 1968년 전국 평협이 결성됐고, 1970년 한국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가 결성됐다. 1974년 지학순 주교 구속사건 이후 활발한 진보적 사회운동이 펼쳐졌다.

‘한국 평협’으로 이름을 변경한 평협은 1980년대 초반 계몽 운동 성격 캠페인을 진행했고,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행사(1981년)와 한국교회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 및 103위 순교자 시성식(1984년) 등 대규모 행사에 협조했다. 1980년대 후반에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성명서 발표’, ‘KBS 시청료 납부 거부 운동’ 등 대사회 활동을 활발하게 펼쳤고, 1987년 주교회의는 ‘한국평협·가톨릭농민회·가톨릭학생회’ 등 3개 전국 단체의 활동 중지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1987년 이후 평신도 사도직 활동은 교회의 인가를 받고 지도 사제를 두고 활동하는 평신도 사도직 단체 중심의 활동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1988) 조직 등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형태로 시민사회와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전개되는 가톨릭 사회운동 형태로 나뉘어 전개됐다.

2000년대 이후 한국천주교회 평신도 사도직 운동의 이 두 가지 흐름 모두 계속 위축되고 있다는 현실은 좀 더 근본적이고 새로운 모색이 필요해 보인다.

‘함께 걷는 교회의 길’의 목적과 그 과정은 세상의 구원을 위한 복음화의 ‘사명’에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때, 평신도가 그 길에서 할 수 있는 역할과 방법이 더 구체적으로 논의될 수 있다. 여기서 강조되는 평신도의 ‘신앙 감각’은 세상의 고통과 문제를 먼저 감각하고 교회 공동체가 그 문제를 경청해 자신의 고통과 문제로 끌어안고 고민할 수 있도록 이끌 수 있다. 그리고 교회 공동체가 함께 기도하며 식별한 복음적 응답을 세상에 전하고 실천하는 주체 역시 평신도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평신도가 가톨릭 시민으로서 지녀야 할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강조하는데, ‘함께 걷는 교회의 길’에서 평신도에게 주어진 사명이 바로 그것일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 운영에서도 평신도들의 참여가 늘어나기를 기대한다. 직무 사제직이 신앙 공동체를 위한 봉사이듯, 평신도들이 참여하는 교회 안의 다양한 직무도 역시 공동체를 위한 봉사이기 때문이다.

탈종교 탈교회 현상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인류 공존과 공동선을 위해 ‘생태적 회심’과 ‘평화의 연대’를 지향하며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가톨릭 시민들의 ‘사회적 애덕’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커지고 있다. 이런 과제를 우리 교회가 끌어안고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세상 안에서 그 목소리를 경청하는 평신도의 역할, 또 교회 공동체가 식별하는 과정에 함께하는 평신도의 참여, 하느님 말씀에 비추어 판단한 복음적 삶을 세상 안에 선포하고 실천하는 평신도의 사명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

정리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